칩거, 은둔 뒤 글 쓰려는 고백

[이코노미톡뉴스=배병휴 회장]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3년간의 암담, 참혹했던 세월을 거쳐 기억의 보존성을 위해 글쓰기를 시작한다면서 ‘피정’(避靜)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2016.8 윤창중칼럼세상)

‘워싱턴의 악몽’이 1년이나 지났는데도 평상심으로 회복이 되지 않는다. 이대로 영영 폐인(廢人)이 되고 마는가. 오랜 칩거 후 아내와 산책도 하고 자전거 타기도 시작했다. 간혹 사람도 만나봤다.
어느 날 대장의 출혈, 입원, 수술의 형벌이 다가왔다.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생매장 시킨 언론과 음해세력의 실체를 파헤쳐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윤창중씨는 암수술을 극복하고 다시 삶을 시작했다.

‘워싱턴의 악몽’ 이후 자살뉴스나 마약사범을 예사롭지 않게 지켜본다. 아내가 미쳐버릴 것 같다면서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다. 2013년 12월 누군가의 권유로 카톡을 개통하니 맨 먼저 이철용 전 의원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철용씨는 사창가서 출생하여 구두닦이, 깡패노릇 하다가 글쓰기를 시작하여 ‘어둠의 자식들’, ‘꼬방동네 사람들’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되고 김대중 평민당의 국회의원까지 출세했었다. 그 뒤 경복궁역 인근에 역술원을 차려 10년째 활동 중이라는데 “시간이 다 해결해 줍니다. 용기 잃지 말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한번 봅시다”라고 전해왔다.

그가 계속 카톡을 통해 “시련을 기회의 밑거름으로 여기면 희망이 된다”고 했다. “상처 난 조개가 진주를 잉태한다”면서 역시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다시 말했다. 그가 글을 쓰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윤창중씨는 ‘워싱턴의 악몽’ 2013년 5월 7일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다. 가장 밑바닥 경험이 많은 이철용씨의 카톡 영향도 받았다. 피정(避靜)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저자는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좌파진영으로부터 물매를 맞고 추락할 때도 보수우파 언론이나 논객이 못 본 척 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좌파언론인이었다면 결코 그런 사태는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사태를 정돈하고 나니 좌절하지 말고 낙망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자는 각오가 생긴다. 과감하게 기록하고 주장하겠다는 용기가 솟아났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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