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s Leben der Anderen)

▲ 영화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 The Lives Of Others, 2006)' 포스터.

[이코노미톡뉴스] 제목에서부터 왠지 문학적이고 무언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을 듯한 무거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게다가 독일영화! 영화는 러닝타임 140분이나 되고, ‘자유’가 없던 동독시절의 도청사건을 다뤘다는 점에서 볼까말까 망설였다.

비밀경찰 도청속의 예술가들 삶

고전적이면서도 윤택하고 풍성한 느낌의 영국영화에 비해 독일영화는 그들의 언어처럼 조금은 딱딱하고 굳어있는 듯하면서도 인생의 ‘기본법칙’에 대해 정직하게 말하는 아주 독특한 연출력을 보여주곤 한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제목답게 ‘타인의 삶’은 인간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동독의 유능한 비밀경찰 비즐러가 도청을 맡게 된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인 크리스타의 삶을 축으로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 게다가 ‘도청’까지 당해가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동독 예술가들은 기본적 자유마저 억압당한 채 은유적인 저항을 무대에 올리면서 간신히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지켜나가려 한다. 하지만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들은 그들의 그런 작은 저항의 몸짓마저 용서하려 들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도 참아내기 어려운 ‘자유 없는 세상’은 사회의 ‘공기 청정기’라고도 할 수 있는 예술가들에겐 말할 수 없이 참아내기 어려운 시련일 것이다.
동독 정권은 도청을 통한 철저한 감시 속에 조금이라도 정부에 반항하는 예술가들을 그들의 설 자리인 ‘무대’, 곧 일터에서 무자비하게 제외시켜버린다. 요근래 한창 회자됐던 ‘블랙리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정부 당국자에게 협력하는 것은 영혼을 팔아버리는 것 같아 예술가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저항했다가는 생존 자체가 위협 당하게 되는 극한 상황이어서 그들은 비밀스럽게 서로의 고통을 얘기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역대 정권의 도청사건 릴레이

도청!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고약한 단어다.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던 고위관료출신들이 ‘도청지시’라는 죄목으로 푸른 수의를 입고 영어의 몸이 되는 걸 우리는 목격해왔다. DJ정부시절 국정원장과 함께 구속된 국정원 2차장은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된 딸이 자살한 비극도 있었다. 당시 중앙일보 회장하다가 주미대사로 발령받았던 홍석현 씨는 ‘도청의 피해자’였지만 그의 ‘언행’이 공개돼 결국은 그 좋다는 주미대사직을 내놓아야 했다. 홍씨는 주미대사를 시작할 무렵 “장차 유엔총장에 도전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지만 세월이 이만큼 흐른 오늘 보면 그야말로 ‘역사적 발언’이 되고 말았다. ‘내일 일을 말하면 귀신이 웃는다’는 일본 속담이 떠오른다. 아무튼 도청의 불똥은 이곳저곳으로 튀어 그때 스타일 구긴 분들이 꽤 있었던 걸 기억한다.
‘도청’은 늘상 있어온 ‘정치적 행위’라고도 할 수 있겠다. YS때는 무슨 ‘미림사건’인가하는 제목부터 요상한 도청사건이 터졌었다. 그 이전엔 지금 수감 중인 김기춘씨가 부산 초원복집에서 “우리가 남이가, 장관이 얼매나 좋은 자리인데...”라는 말들을 한 것이 도청돼 세상을 뒤집어 놓기도 했다. 그 밖에 박정희정부시절이나 기타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야 말할 것도 없이 수많은 도청이 있었다. 물론 세월과 함께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사라졌지만 지금이라도 인터넷 검색창에 ‘도청’을 쳐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수많은 사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만큼 흔하디흔한 ‘정치사건 용어’이다. 도청, 투옥, 고문 이런 단어들은 한때 대한민국에서 굉장히 횡행했었다. 특히나 ‘박정희유신시대’엔 극에 달했었다. 국민의 피해도 그만큼 컸었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엄혹한 정치상황이었다. 말 한마디 삐끗 잘못해도 잡혀가는 세월이었다. 그래도 그런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르신들’이 꽤 있는 게 한국현실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흘러간 청춘시절’을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으로 대통령이 ‘거짓말’했다는 ‘죄 하나’로 물러났다. 세계 어느 나라나 이 ‘도청’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을 정도다. 범세계적인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도청문제’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체제유지를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 악용되기도 했었다. 심지어 최근엔 독일 총리 메르켈을 미국 정보국에서 도청했다는 어이없는 보도마저 나올 정도로 ‘도청’은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독재국이나 예술국이나 예술인·지식인들은…

‘타인의 삶’은 바로 이런 낯익은 정치 용어인 ‘도청’을 주제로 14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내내 관객에게 잠시의 ‘자유’도 허락하지 않고 굉장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영화를 보시는 분들은 ‘동시대를 살아온 인간’으로서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삶에서 아련한 정서적 공감대를 공유할 수 있을 정도다. 한 나라의 정신적 파수꾼인 예술인들이나 지식인들의 생존방식은 독재국가나 자유국가나 비슷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감수성과 자존심이 침해당하는 걸 제일 괴로워하는 예술가들의 세세한 삶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한편 그들을 ‘도청’하는 냉혹한 비밀경찰의 의식변화도 아주 예리하게 보여주는 감독의 연출 솜씨가 빛난다. 1973년생인 플로리안 헨켈 본 도너스마르크 감독은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2007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선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과 그들의 역할에 걸맞은 외모가 눈길을 잡는다. ‘현실’에서 튀어나와 ‘스크린’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두 명의 남자 주인공 비밀경찰 비즐러 역의 울리쉬 뮤흐와 극작가 역을 맡은 세바스티안 코치, 그리고 영화 초반부에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자살한 연극연출가 알버트 역의 폴크마르 클라이네르트라는 배우의 생김새는 실존인물들보다 훨씬 더 그럴듯해 보였다. 몇 년 전 작고한 울리쉬 뮤흐는 ‘독일의 안성기’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비밀경찰로서 당대 최고의 극작가를 도청하면서 극작가의 삶에 동화되어가는 과정을 차분하고 태연한 눈빛으로 연기하는 모습이 일품이다.
그가 극작가의 집에서 브레히트의 시집을 훔쳐와 소파에 누워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장면과 극작가가 자신의 집에서 애인에게 들려주는 열정의 소나타를 도청관리실에서 ‘함께 들으면서’ 주르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으로 꼽을 만하다. 세바스티안 코치는 뮤흐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연기파배우로 지성미로 잘 포장된 외모는 역시 ‘유럽 출신 배우’답게 당당하고 훤칠하다. 웬만한 유럽출신 배우들에게서는 남녀 모두 자존감으로 충만한 기품과 자신감이 배어있다. 유럽의 오랜 문화예술적인 전통이 백그라운드로 작용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피아노 치는 솜씨가 일품인 세바스티안 코치의 표정연기는 어쩌면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법도 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공산정권시절 예술가들을 괴롭혔던 문화부 장관을 만나자 극작가는 이렇게 묻는다. “왜 나는 도청을 안했지요?” 그러자 능글맞은 표정으로 장관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 관련한 도청자료가 제일 많을 걸, 당신 집안의 벽면을 자세히 살펴보게” 그런 말을 듣고 극작가는 장관에게 “당신 같은 쓰레기가 어떻게 장관을 했지”라고 소리친다. 한국정치인들이 새겨들을 대목이다.

▲ 朴美靜 편집위원(박미정 스카이뷰커뮤니케이션즈 대표)

‘타인의 삶’은 인간은 누구나 공기와도 같은 자유를 누리고 살 천부적 권리를 타고났다는 당연한 명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영화다. 오랜만에 문화적 충족감을 선사받은 기분이 들었다. DVD로 감상하시길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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