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톡뉴스 최서윤 기자] 며칠 전 도산대로 인근 남양유업(대표 이원구) 빌딩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건물 앞에는 “남양유업 갑질에 40년 속았다”는 현수막을 든 1인 집회자가 있고 그 옆에는 “악의적인 시위꾼”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길을 다니다 보면 기업의 ‘갑질’에 항의하는 현수막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바로 옆에 대놓고 ‘악질 시위꾼’이라는 반박 푯말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무슨 일 때문일까 궁금해졌습니다.

▲ "남양유업에 40년을 속았다"며 항의 하고 있는 집회자. 전기안전시설 천막 옆쪽으로 "악의적인 시위꾼"이라고 적힌 푯말이 세워져 있다(사진=이코노미톡뉴스).

남양유업은 1964년 설립된 국내 유제품 전문가공업체입니다. 김태희를 모델로 내세운 프렌치카페 커피믹스로 잘 알려져 있으며 서울우유, 매일유업과 함께 우유 유통업계 빅3에 속합니다.

승승장구하던 남양유업은 2013년 5월 남양유업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하는 녹음파일이 공개되고, ‘물량 밀어내기 갑질’ 논란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관련법인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이른바 ‘남양유업방지법’이 2015년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가 남양유업의 과징금을 대신 내주고, 이자까지 내준 꼴”이라고 비판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여러 지적이 제기된 바 있는 남양유업이기에 이 같은 팻말은 더욱 이목을 끌었습니다. 먼저 양측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남양유업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전 대리점주는 “남양유업이 미수금 7500만 원과 이자 3000여만 원을 받으려고 수십 억짜리 농장을 경매에 넘기고, 이자가 200만 원이 부족하다면서 몇 억 원짜리 집 담보를 풀어 주지 않고 있다. 남양의 밀어내기 갑질로 인해 40년을 속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남양유업 본사 전경.

그러나 남양유업 측의 입장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분은 밀어내기 논란과 상관이 없다. 미수금이 있어서 소송을 한 것이고 회사 측이 승소했다. 자꾸 근저당을 안 풀어준다고 하는데, 회사에서 미수금 문제 해결하고 근저당 해지 서류에 도장까지 찍어서 발송했다. 저 분이 일부러 수신을 거부하고 있는 거다. 2015년부터 3년째다. 우리도 너무 힘들다.”

남양유업 측은 전 대리점주의 계속된 시위에 어쩔 수 없이 맞불을 놓았다고 합니다. 사측은 전 대리점주의 집회 현장 옆에 “근거 없는 억지 주장으로 수억 원을 요구하는 악의적인 시위꾼”이라고 내걸었습니다. 사측이 명예훼손 소송도 걸고, 시위금지가처분 신청을 내서 법원이 모두 받아들였는데도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면 공방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남양유업의 대응방법입니다. 전 대리점주가 3년째 1인 시위를 한다고 해서 똑같이 푯말을 세우고 ‘악질 시위꾼’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또 다른 명예훼손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소비자들은 오히려 옆에 세워둔 남양유업의 푯말을 보고 더 집중해서 본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 남양유업 건물 앞 대로변에 걸린 현수막.

남양유업은 ‘물량 밀어내기 갑질’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아직 신뢰가 다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삼성전자 상무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이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을 지원한 ‘반올림’ 활동가들을 “전문시위꾼”으로 폄훼했다가 국회 정론관을 찾아 사과한 바 있습니다. 물론, 남양유업이 정말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현명하게 대처하기보다 감정 섞인 반박으로 맞서는 것이 기업 이미지에 어떤 득이 될 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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