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톡뉴스=김숙 칼럼] 며칠 전, 오랫동안 연락되지 않았던 친구를 만났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는 몰라도 그냥저냥 세월을 흘려보내며 친구를 잊고 살았었다.

그날, 친구의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만나자마자 그동안 소홀했었다는 미안함과 반가움이 섞여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람은 옛사람’ 이라고 하더니 굳이 이성이 아니라도 무심했던 세월만큼의 애틋함이 금세 되살아났다. 공동의 추억거리들도 삐죽이 고개를 들었고 아련했던 옛날도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었다.

필자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커피를 즐겨 마시며, 어떤 음식을 자주 먹었는지... 사소한 취향이나 기호까지 다 기억해주는 친구가 고마워 내심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마치 남녀 간에 처음 연애하던 시절처럼 조금은 낯선 설레임, 어설프고 덜 세련되고 그러나 모든 것이 달짝지근했던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들뜬 심정이 되었다.

친구는 하나하나 차분하게 그동안의 세월을 풀어놓았다. 듣는 내내 흐뭇했고 안도했다. 호들갑스럽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친구가 세월의 때를 묻혀오지 않아 우선 고마웠다. 적당히 수줍어할 줄 아는 모습이라든가 순수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음도 무척 좋았다.

막무가내로 사나워(?)져 제 3의 성(性)이라 부르는 아줌마들... 적어도 친구는, 목소리는 크고 신경은 둔하고 감정은 메마르고 얼굴표정은 뻔뻔스러운 모습의 아줌마는 아니었다.
그동안 아팠었다고 했다. 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앰블런스 차 안에 누운 채 응급실에 실려 간 것만 해도 세 차례나 된다고 했다. 그 대목에서 필자의 목젖이 또 한 번 따끔거렸다.

사는 동안에 제 나름대로의 현실에 맞게 세상을 보는 관점이라든가 시각이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다. 필자도 경험해 보아서 알고 있다. 가치관이나 행동이 서서히 변하는가 하면 일순간에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어려운 지경일 때는 백팔십도 달라질 수도 있다.
어려움이라 함은 금전적인 상황이라든가, 뭐 그런 시시껄렁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자본의 체제에 살면서 경제를 나 몰라라 하고 살아도 된다는 무책임한 말과는 다르나 경제가 우선순위일 수는 없다.

그동안 필자도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겪었다면 겪은 측에 속한다. 벌써 4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느닷없는 헌재(?)의 판결... 다름 아닌 cencer라는 날벼락을 땅땅땅!! 맞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어찌나 놀랐든지 병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로 무릎에 힘이 풀려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말이 좋아 초기이고 듣기 좋아 치료가능하다는 거지, 암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입장에서는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아무 것도 없었다. 저승의 문턱까지 갔다가 한 발짝 디뎌보고 간신히 발을 뽑아온 아슬아슬한 형국, 한 마디로 죽음이었다.

1초, 2초... 시간의 흐름이 그렇게도 더딜 수 있다는 사실을 난생 처음 알았다.
입원해서 수술 날짜와 시간이 정해지자 시간의 흐름은 곧 죽음과의 맞대면이었다. 수술하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누워 마취주사를 맞았을 때,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 순간에 할 수 있었던 일이란 힘없는 눈으로 벗어놓았던 신발을 내려다보는 것뿐이었다.
(아~ 앞서 한 말처럼 다행히 의료기술도 훌륭해졌고 초기의 발견이어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지금은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그때, 인생은 “空手來空手去”라는 교훈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제 아무리 황금으로 성을 쌓고 그 안에서 왕처럼 군림해도 사람이 하루 세 끼니면 족하고 명예나 권세도 종국에 가서는 그 앞에서 깨끗하게 손을 털고 일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원히 제 것인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 김숙 편집위원(자유기고가)

그럼에도 왜 그렇게 바빠야 하는지, 무엇이 우리를 밖으로 내모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밖에는 비가 내린다. 빗방울이 제법 굵다. 보고 싶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향기 짙은 커피를 마신다. 엊그제 만났던 친구의 여운이 아직 잔잔하게 남아있다. 덩달아 다른 친구들도 보고 싶고 수수하고 털털한 웃음소리도 다시 듣고 싶다.
학교정문 앞 그 거리에는 여전히 우리의 웃음소리가 배어 있을까, 우리는 옛날처럼 그 길을 걸어볼 수 있을까...
친구야! 우리, 아프지 말고 늘 청춘으로 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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