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5당의 대선후보들이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등록 첫날인 15일 일제히 등록 절차를 마치고 본선에 뛰어들었다.

* 기사 최초작성일 : 2017년 4월 17일

[이코노미톡뉴스=이진곤 칼럼] 열다섯 명이 대선 후보로 등록했다. 제17대 대선 때의 역대 최고 경쟁률(12명 등록)을 갈아치웠다. 정당 공천 후보만 열네 명이다. 다들 나름대로는 계산을 하고 출마를 결심했을 것이지만 당장 비용이 만만찮다. 모두 3억 원씩의 기탁금을 중앙선관위에 납부해야 했다. 물론 경쟁력이 있는 주요정당 후보들의 경우는 이 정도는 부담으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는 기탁금도 선거비용도 거의 전적으로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투어 등록을 한데는 나름대로의 까닭이나 배경이 있을 것이다. 상식선에서 짐작해 보자면 ①소속 정당의 존재 의의를 확인시키기 위한 출마, ②정치적 세력 결집과 확대를 위한 출마, ③제20대 이후의 대선을 겨냥한 이름 알리기 출마, ④사회적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출마, ⑤대통령 선거에 나갔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출마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역대의 대선을 돌아보자면 이런 경우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위상을 확보한 예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중은 건망증이 심하다. 당선자와 차점자, 그리고 2. 4위까지는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아래로는 금방 잊히고 만다. 이렇든 저렇든 어쩌겠는가. 각자의 사정이고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인데.

이런 대선 불가피했을까

이번 대선은 희귀한 경우다.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에 탄핵이라는 방법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급급히 치러지는 대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과거에 정변이나 변고로 인해 치러진 대선도 여러 차례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특별하다는 점에서는 이번 대선이 맨 앞에 놓이지 않을까 한다.
유별나게 정국이 혼란하거나 국정이 파행을 치달은 게 아니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세월호참사, 통진당 해산,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개성공단 중단 등 대형 사건·사고들이 사회적 충격을 안겼지만 그렇다고 합법정부를 무너뜨릴 정도였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론과 군중, 그리고 야당들의 격렬한 사퇴 및 탄핵 압박에 직면해야 했다. 박 대통령은 제대로 방어태세를 갖추지도 못한 상태에서 거의 속수무책으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검찰의 구치소를 거쳐 법정에로 내몰리는 처지로 추락해 버렸다. 말 그대로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합법의 외형을 갖춘 정치적 반대세력에 밀려나고 말았다. 대통령이 헌정을 중단시키거나 헌정질서를 파괴한 것도, 폭정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와 반대로 박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역대 최약체였다. 힘을 지나치게 행사해서 축출된 게 아니라 힘이 너무 없어서 밀려난 것이다. 말하자면 왕조시대의 반정(反正)과 같은 것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중종반정보다는 인조반정의 배경과 양상을 닮은 정치적 공격에 무너져야 했다.
광해군은 살제폐모(殺弟廢母)의 패륜을 저지르고 명(明)을 배반하고 후금(後金: 청)에 기울어졌다 해서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 길에 올라야 했었다. 그러니까 동복형 임해군,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계모 인목대비를 유치했다는 죄명이었다. 그렇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와 배경은 달리 있었다. 북인과 서인간의 치열한 당쟁이었다. 광해군은 당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특히 시대착오적인 친명반금(親明反金)론자들의 정치적 공세에 당했다고 할 수 있다.
광해군이 억울하게 폐위됐다고 할 수는 있지만 반정파에 명분을 제공한 책임까지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탄핵’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박 전 대통령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여당을 파탄의 책임은 져야

탄핵소추의 결정적 동인은 당시 집권당이던 새누리당의 비박계 의원들이 제공했다. 그런데 여당을 파국적 상황으로 몰아간 책임의 큰 부분은 박 전 대통령의 몫이다. 이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욕심이 화근이었다. 여당 원내지도부가 배신의 태도를 보였다고 해도 대통령으로서는 이를 감싸 안아 주는 포용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그런데 여당 원내대표에게 직접적으로, 대단히 격한 어조로 책임을 추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20대 국회의원 총선 공천을 전횡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여당은 적전 대분열을 일으켰고, 그 결과는 헌정사상 초유의 대참패였다. 보수여당이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야당에 넘겨주고 만 것이다.
이때쯤은 박 전 대통령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친박계의 2선 후퇴를 주도했어야 했다. 그리고는 스스로 당적을 정리하는 게 당원들에 대한 도리였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오히려 8·9전당대회를 통한 친박계의 당권 장악을 이끌 듯이 했다. 당 대표와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4명을 친박계가 휩쓸어버렸다.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그것이 사태수습책이라고 여겼겠지만 그 자체가 대파국의 시작이었다.
그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은 당적을 정리하고 당을 떠났어야 했는데도 끝까지 당에 대한 장악력을 놓지 않으려 했다. 당 유리위의 징계 방침을 최고위원회를 통해 좌절시키는가 하면 친박 비박 간의 경쟁구도로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친박 후보가 당선되도록 했다. 박 전 대표가 직접 지시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적극적으로 유화책을 쓰려 했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되레 친박계 강화를 택한 것이다.
바른정당이 분당해 나갔을 때는 이미 탄핵소추가 된 이후였지만 그 때라도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에 대해서라도 겸허히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일 일이었다. 적어도 민심의 악화의 속도와 정도를 낮출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새누리당에 재결속의 기회를 주었더라면 자신이 그처럼 철저히 궁지에 몰리는 상황을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도 화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과 사법처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긍이 안 된다. 헌정수호의 차원이라고들 주장했지만 우리나라 민주정치의 전도를 생각할 때 대단히 위험한 전례를 남겼다는 생각을 아직도 떨칠 수가 없다. 박 전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정치의 순조롭고 온건한 발전에 장애가 조성된 것 같아 불안하고 유감스럽다는 것이다.

정치의 생명 융통성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밀려나 비어버린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열다섯 사람이나 출마해서 각축전에 들어갔다. 당연히 이 가운데 누군가 차기 대통령직에 오른다. 모두가 정치 경제 안보 측면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5년 단임제 대통령, 여소야대 구도 하의 대통령직이 어떤 취약점을 갖는지 충분히 목격했을 뿐 아니라, 그 상황을 이끌기 까지 했던 사람들이 다시 제왕적 공약을 내놓고 있는 모습은 기이해 보이기까지 한다.
의욕적으로 공약을 지키려다보면 다시 법테두리를 넘어서는 경우가 발생할지 모른다. 한번 시도하기가 어렵지 되풀이하기는 쉽다. 대통령에 대한 집단적 공격, 탄핵소추, 탄핵결정도 처음이 어려울 뿐 한번 길이 나면 예사로 선택하려고 들 것이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게 하듯이 법의 잣대를 엄격히 들이댈 경우 대통령은 고사하고 읍·면장조차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정치를 법으로 해결하려고 할 경우 국정은 상시적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교주고슬(膠柱鼓瑟),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고정시켜 버리면 아름다운 곡을 연주할 수가 없게 된다. 융통성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정치의 생명은 융통성에 있고, 법의 생명은 엄격함에 있다. 이제 어느 대통령이든 융통성을 발휘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치는 상시적 교착상태에 빠지고 국정은 파행을 거듭할 게 뻔하다.
새로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거창하고 거룩한 일을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 당장 급한 것은 날카로워진 민심을 순화시키는 것이다. 보수 진보 해가면서 까닭 모르게 갈라선 국민은 서로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함께 풀어나가지 않을 수 없는 국가적 과제에 대해서까지 양측은 부딪치기만 한다.
이 시점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국가안보에 대해서조차 서로 상반되는 주장만 내놓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싸고 격렬히 부딪치기까지 한다. 민심이 이처럼 양분된 데는 정치인,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초래한 일인 만큼 수습책임도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라와 국민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 또 고민해서 국민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방책을 내놔야 한다.

▲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 주필, 전 논설고문)

그 중에서도, 주민 대다수를 극빈상태에 묶어 놓고, 동족을 대량 살상할 수 있는 핵 및 마사일 개발에 영일이 없는, 세계에서 가장 악랄하고 위험한 북한 김정은 집단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대책을 최우선적으로 제시할 일이다. ‘대화를 통한 해결’, ‘민족공조’, ‘포용과 지원을 통한 화해 협력’ 같은 것으로 그들의 검은 무력만 키워주고 만 그간의 경험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서!
후보들 모두가 나름대로 성공하는 대선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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