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진성, 당 조직지도부 해체분석

[이코노미톡뉴스=배병휴 회장] 북한의 김씨 왕조 권력의 실체가 당 조직지도부이고 3대 세습권력 김정은은 ‘수령(首領) 연기자’라는 주장이 우리에게는 매우 뜻밖으로 인식된다. 북한 중앙당 통일전선부 출신의 탈북자가 쓴 ‘수령 연기자 김정은’이 북한 왕조체제 자체를 ‘연극정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탈북 후 국가안보 전력연구원 선임 연구원을 거쳐 뉴포커스 대표로 활동하는 장진성씨의 글이다. (2017.4.28. 비봉 출판사)

‘수령주의’ 기획, 연출자 당 조직지도부

저자는 책 머리글을 통해 “북한은 수령 한 사람만이 주인공이고 특권층 몇 사람이 충신의 조연으로 출연하는 무대 공화국”이라고 말하고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잇는 ‘수령주의’ 기획자는 당 조직지도부”라고 규정했다.
당 조직지도부의 극소수 기획자들은 조직생활에 대한 지도권한으로 주민들을 객석에 집합시키고 무대를 향해 박수와 흥분, 환희와 슬픔이 모아지도록 강요해 왔다. 이에 따라 지금의 김정은이 당장 급사하더라도 김여정을 내세운 수령주의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게끔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김정일도 처음부터 후계자였던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가 전대미문의 수령 독재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당 조직생활 시스템을 만든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처음부터 순탄하게 걸어온 세습이 아니라 이복동생 김평일에게 밀려나 계모 김성애와 그 지지 세력인 권력층들을 하나하나 제거했던 내부 숙청의 결과였다는 해석이다.

김일성 흉내도 ‘유훈정치’ 구속과정

이 책은 북한을 연극정권으로 보고 그동안의 총감독은 김정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 조직지도부는 김정일이 어떻게 김일성을 신격화하고 절대화 하는지를 곁에서 함께 기획하고 실행한 충분한 경험을 쌓았다고 해석한다.
지금은 북한 연극의 주인공이 김정은이다. 저자는 그가 김정일과 같은 아무런 과정 없이 그냥 절대 권력자가 된 것처럼 단언하는 것은 “식탁 위의 치킨이 태어날 때부터 구워져 있었다는 주장과 다를 것이 없는 황당한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저자는 김정은 세습권력의 보호막이라면 김일성, 김정일 등 죽은 수령의 유훈뿐이며 체제통제의 독점권은 당 조직지도부가 갖는다고 해석한다. 또 당 조직지도부의 만능은 수령의 친인척을 다스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지적이다.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하고 당 조직지도부를 물갈이 한 것도 바로 그들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북의 ‘수령주의’ 자체가 김정은의 독점권이 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김일성, 김정일의 미라가 금수산기념궁전에 전시되면서 수령 공동이념 내에 김정은 자신도 위치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김정은이 옷차림에서 헤어스타일, 손동작 등 김일성을 흉내 내는 것도 단순한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유훈정치 속으로 구속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외화바꾼 돈표’로부터 ‘자본특권층’

▲ 북한 외화바꾼돈표 1원의 앞 뒤 사진.

이 책 속에서 김일성, 김정일 비자금 부서의 역사에 관해 많은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38호실은 김정일, 39호실은 김일성의 외화금고로 출발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경협자금 등도 김정일의 38호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지금은 38호, 39호실의 무역권한이 ‘자본특권층’과 그 자녀에게로 많이 분산되어 있다.
‘자본특권층’은 1970년대 재일교포기업들을 합작형태로 끌어들이면서 형성되어 그들의 친인척과 후손들에게 각종 특혜를 제공함으로써 형성됐다. 그들에게는 자가용을 소유하고 외화를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했으니 사회주의 내부에 합법적인 자본주의 공간을 허용한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외제 선물정치’와 내각경제의 붕괴로 이들 극소수 자본특권층의 합법 영역은 계속 확대됐다. 그 결정적인 동기가 ‘외화바꾼 돈표’의 발행이다. 이 돈표는 88서울올림픽에 대응하여 꾸민 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용 외화 대용 화폐이다.
‘외화바꾼 돈표’는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가 운영한 ‘통일발전은행’이 독점했다. 이 은행은 조총련 산하 조선신용조합으로부터 6억 달러 상당의 엔화 신용담보를 잡아 사상 처음으로 해외은행 거래와 신용거래를 시행했다. 그러나 세계청년학생축전은 적자투성이로 끝나고 모든 손실은 조선신용조합이 덮어써 붕괴하고 말았다. 나중에 조총련 본부 건물이 압류되고 경매처분 된 것이 이 때문이었다.
축제가 적자로 끝난 뒤에도 ‘외화바꾼 돈표’는 계속 허용되어 오래지 않아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1달러에 2원의 환율로 출발했지만 1997년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고 식량 배급제가 붕괴된 이후에는 무려 7000대 1로 돈표가치가 떨어져 휴지가 되고 만 것이다.

마카오 공작 아들 손건화의 특례

‘외화바꾼 돈표’ 이후 특권층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엔화 중심의 조총련 친인척들이 몰락하고 달러화를 축적한 신 자본권력층이 생겨났다. 해외파견 대남 공작원 자녀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손건화(평양, 1953. 10월생), 이해순(무용배우, 1957. 6월생) 부부를 꼽을 수 있다.
손건화의 아버지는 6.25 직후 김일성이 24만 달러를 주어 마카오로 파견한 해외공작원으로 카지노와 호텔사업 등으로 돈을 벌어 해외기업을 일으켰다. 김정일이 권력을 잡으면서 해외기업들도 ‘개인상속’ 하지 말고 ‘명령 상속’하라고 통고했다. 이에 해외공작원들이 김일성에게 하소연 하는 편지를 발송했다가 암살되는 사례가 생겨났다. 그러나 손건화 부친은 김정일에게 거액을 헌금하고 ‘명령 상속’을 실천했다. 아들이 아니라 당에서 정략결혼 시킨 대외연락부 소속 사위에게 마카오 기업을 물려주기로 선정했다. 그러나 얼마 뒤 사위가 마카오 조폭들에게 암살되고 말았다.
이때 그 배후로 의심된 장남 손경철이 평양으로 소환되어 해외공작 수십 년간 이룩한 해외기업을 동생 손건화에게 넘겨주고 그 대신 북한에서 사업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 받았다. 손경철은 만경대구역 고급 아파트 사업으로 돈을 벌고 그 자신도 아파트 8~9층 대저택을 소유하게 됐다.
동생 손건화는 마카오 사업을 김정일에게 바친 대신에 중앙당 부부장급인 대외연락부 77호 실장으로 임명됐다. 77호는 북한체제 유지를 위한 마약판매 전담조직으로 대외적인 명칭은 ‘류경회사’로 위장했다. 그의 부인 이해순은 남편이 간호사와 동거한 사실이 드러나자 외국인 숙소 거리에 가라오케를 시작으로 백화점 ‘서경상점’ 등을 연속 개업함으로써 남편은 마약, 아내는 백화점 사업으로 재벌식 문어발 경영에 나섰다.

청년학생축전 이권 독점 이병서의 특례

손건화의 동창 이병서(평양생, 1954. 12)는 프랑스 파견 해외공작원 아들로 김일성의 지시로 남산 고급중학, 평양 외국어대 프랑스어과를 졸업했고 부인 주순복은 1955년 10월 강원도 원산서 태어났다.
이병서는 최룡해 밑에서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 은별무역관리 국장으로 평양 세계 13차 청년학생축전 이권을 독점,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나 최룡해가 자강도 농장원으로 추방되자 청년동맹사건 주범으로 체포되고 가택수색을 통해 미화 2,000만 달러가 들통 나 처형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장성택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사회안전성 정치국 금별 99총회사 사장으로 근무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장성택 처형 후에도 계속 사장으로 근무하여 달러화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손건화, 이병서 등 ‘자본특권층’이 사실상 북한의 시장가격 결정을 주도했다고 설명한다. 이들 외에 자본특권층으로 이종옥 부주석 아들 이찬, 재일교포 큰손 이수남 등을 예시했다.
이수남(1971. 2월생, 평양음악무용대 피아노 전공)은 할아버지가 조총련 조선신용조합 최대주주 지배자로 그녀는 대학 등교시에 자가용 벤츠 500을 타고 연중 6개월은 일본 등지로 여행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고려호텔 지하에 ‘민족식당’을 개업하고 1996년 9월에는 재일교포로 평양보링관 사장 아들 신주원과 결혼했다.
이 밖에 장성택의 형 장성우 수도방어사령관의 딸 장미영, 오극렬 아들 오세욱, 북한 골프협회장 딸 정순영, 호위사령관 리을설 원수의 맏사위 박철, 당 조직부 군사담당 제1 부부장 리용철의 맏딸 리영란 등을 ‘자본특권층’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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