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그 시절 울분의 도전

▲ 황색눈물(黄色い涙, Yellow Tears, 2007) 포스터.

[이코노미톡뉴스=박미정 논객칼럼] 일본의 재능 있는 영화감독 이누도 잇신이 만든 ‘황색눈물’은 1963년 늦은 봄에서 여름이 지나기까지 예술가를 꿈꾸는 청춘백수 4인과 그들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스폰서해주는 근로청년 한 명 등 다섯 젊은이들의 눈부시게 시린 청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60년 도쿄 출생, 1997년 감독 데뷔, 그 후 10년 만에 일본에서는 손꼽히는 ‘문제적 감독’의 자리를 굳힌 이누도 잇신 감독이 ‘아버지 세대의 꿈’을 그린 수작이다.
그의 화면은 늘 섬세하고 감수성이 촉촉이 배어 있다. 따스하고 서정적이면서 눈물을 자아내게 만드는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을 자연스레 화면에 배치해내는 재간 있는 감독이다. 감독이름 하나 보고 본 영화였지만 역시 그 이름값에 상응하는 감동을 선사받고 나왔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둔 꿈의 세월

1960년대 일본은 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온 나라가 들썩거리면서 경제대국에의 초석을 다지는 열기로 가득한 그런 분위기였다. 단지 어느 시대나 그러하듯 ‘가난’을 무슨 백그라운드로 여기는 듯한 ‘예술가 지망생’들은 그런 ‘국가적 분위기’는 아랑곳없이 삐걱거리는 낡은 목조 건물 2층 3평짜리 월세방을 ‘꿈을 꾸는 무대’로 삼고 혈기방장한 젊은 날의 울분을 토로한다.
끼니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빈곤한 상태지만 ‘가난은 예술가를 키우는 자양분’이라는 사자후를 토하며 4인의 ‘예비 예술가’들은 각자가 원하는 분야를 향한 ‘습작시대’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묻고 답한다. ‘자유’란 무엇인지 아느냐고? 자유에의 정답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해나가는 것’이라는데 그들은 의견을 일치한다. 그러고는 자기들이 세워놓은 ‘예술의 길’을 향해 전진한다. ‘황색눈물’의 그런 가난한 예술지망생 청년들의 고뇌가 아름다워 보인다.
영화 속 주 무대인 ‘월세 방’은 주인공격인 무라오카 에이스케가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사각사각 펜을 놀려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둘도 없는 예술의 공간이다. 거기에 소설가를 꿈꾸는 류조와 화가 지망생인 케이, 가수 지망생 쇼이치가 눈치 없이 얹혀 살아간다.
요즘 같아선 어림반푼 없는 이야기다. 지금이야 대중식당도 1인용 칸막이를 설치해 ‘개인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그런 시대 아닌가. 요샌 어린아이들마저도 예전처럼 길바닥에서 무리지어 노는 건 거의 볼 수 없고 다들 집에서 게임기와 친구하면서 노는 시대다.
하지만 ‘저 빛나는 1960년대의 일본’에선 아직 ‘더불어 사는 삶’이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그런 시대였다. 게다가 뜻 맞는 친구들과 서로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함께 얼려 술도 마시고 함께 새우잠 자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정서적 행태였다. 이런 상황은 그 시절 대한민국 예술 지망 청년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마니아층 관객이 바로 비빌 언덕

‘황색눈물’은 바로 그런 빛나던 ‘꿈의 60년대’를 그려내고 있어서 한국의 ‘올드 세대’들에게도 어필할 스토리 같다. 비록 ‘하얀 손(白手)’들이어서 어디 갈 데도 오라는데도 없지만 그냥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두려울 게 없는’ 그런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가슴 따뜻한 청춘백서’가 바로 이 ‘황색눈물’의 주요 줄거리다.
일본 영화감독들은 ‘일상성의 귀재’들이라는 점을 이 영화에서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없이’ 그날이 그날처럼 지나버리는 우리들 일상생활을 ‘영화’라는 화면위에 깔끔한 요리로 내놓는 저들의 빛나는 솜씨야말로 ‘일본적인 힘’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누도 잇신 감독은 영화 홍보차 한국에 왔을 때 그런 그네들의 ‘재능의 배경’을 인터뷰에서 밝혔다. “일본 영화들은 극히 일상적인, 별거 없는 것을 영화로 만드는 작가나 감독들이 꽤 있다. 그들은 그런 걸 만드는데 별 두려움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연출한 이번 영화 역시 극중에서 작은 사건 이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일상생활을 그대로 그렸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 좋았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이런 영화를 즐기는 마니아층이 있으니 투자자들이 투자를 한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했듯이 일본 감독들이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로 장사해먹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시시한 스토리를 즐기는 ‘마니아층 관객’이 언덕처럼 버텨주고 있는 덕분일 것이다.
이누도 잇신 감독은 자신이 중학생 때 열광하면서 봤던 NHK텔레비전 드라마 ‘황색눈물’을 영화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 드라마에서 도쿄에 사는 친구 너 댓 명이 몰려다니면서 생활하고 예술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자체가 너무 멋있게 보였기에 그 ‘감동’을 영화로 재현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에이스케가 ‘전쟁이 끝나던 해 나는 여덟 살이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믿을 것도 의지할 것도 없고 오로지 내겐 만화 밖에는 없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해서 예술가 친구들이 끝내 인생과 타협해 ‘생업’에 종사하면서 ‘건실한 생활인’으로 변모한 채 예술가로 남은 친구에게 전하는 ‘인생 편지’의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그 시절 60년대가 그리워서일까

‘생업의 현장’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어서 ‘8대 2’ 가르마를 탄 샐러리맨 혹은 밀짚모자 쓴 채 땀 뻘뻘 흘리는 성실한 농부로 변신했지만 ‘그래도 친구!’ 네가 있어서 우리 청춘은 아름다웠다 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는 러닝타임 128분으로 꽤나 길다. 그런데도 별 지루함 없이 그냥 그들 젊은이들의 ‘청춘의 나날’들 속에 함께 침잠해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냘퍼 보이는 섬세한 인상으로 ‘등에 애수가 묻어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 주인공 에이스케만이 ‘외롭게’ 서정만화가의 길을 고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시대는 이제 막 선정적인 S로 시작하는 메뉴를 요구하기 시작한 그런 시대였지만 그는 자신의 세계를 소중하게 키워나가고 싶다는 ‘독립선언’을 확실히 한다.
이 영화는 2007년 4월 도쿄 긴자에서 개봉하자마자 4분 만에 표가 매진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어쩌면 그 당시 일본 사람들은 ‘그 빛나던 60년대’의 일본적인 성실함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일본의 한 보수우익 쪽 대학교수는 ‘일본인으로서 이것만큼은 알아뒀으면 하는 것’이라는 책을 냈다. 지금 일본은 ‘예전 일본이 아니다’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는 내용이다.
일본의 많은 국민이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라고 말할 만큼 정신면에서 일본은 악화하고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었다.

▲ 朴美靜 편집위원(박미정 스카이뷰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예전 ‘일본적인 걸 회복해 나가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낡았지만 좋은 일본’ 모델에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정신이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필요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본판 친구’라고도 할 수 있는 ‘황색눈물’을 보면서 일본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정신적인 올바름’에 대한 갈망이야말로 한국에도 필수적으로 있어야할 것들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황색눈물’은 ‘그리운 시절’ ‘끈끈한 우정’ 뭐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그려냄으로써 낡았지만 좋은 일본적인 모델을 회복해내는데 일조를 했다고 본다.
‘꿈과 희망에 대한 잔잔하고 가슴 따뜻한 청춘백서’라는 ‘황색눈물’같은 소소하면서도 다정한 영화가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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