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침탈시 소련이주 학대받은 사람들

▲ 고려인은 1937년 소련의 고려인 민족 이주 정책으로 열차를 타고서 러시아를 비롯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고려인 4세인 이들은 19살이 넘으면 80년 전 증조부모가 강제 이주 당한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 탓에 러시아어도 함께 배운다.<사진=사단법인 '고려인마을'>

[이코노미톡뉴스=장홍열 논객] 경기도 안산 시내에 가면 겉모양(模樣)새는 우리와 똑같은데 우리말을 못하거나 한두 마디로 더듬거리는 사람들을 손쉽게 보고 만날 수 있다. 단원구, 상록구 등에는 집성촌(集姓村)이 형성되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러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 국가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그루지야) 등지에 흩어져 살았거나, 살았던 우리 한민족(韓民族) 동포들의 후손들이다. 한국말을 못하면서 러시아말을 모국어로 사용한다. 우리는 고려인(高麗人)이라 통칭(通稱)하고 있다.

고려인은 왜 생겼나?

일제 침략이 시작되던 19세기 말 일본의 침탈(侵奪)행위를 피해 등에 봇(褓)짐을 메고 고국을 떠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연해주) 지방으로 한 많은 사연들을 안고 모여든 조선사람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조선인 학교를 세우고, 조선 군사학교도 건립한다. 그리고 청산리 전투를 비롯해 수많은 전투를 통해 조국해방의 길을 위해 헌신했다고 한다.
그 와중(渦中)에 1920년 일본군이 연해주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집단학살하는 4월 대참변(大慘變)이 있었다. 이때부터 고려인 수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연해주 조선독립군은 괴멸됐고, 처참하게 살육되는 정황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37년 9월 연해주에서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에 의해 6000km 이상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3일치 음식만 갖게 하고 조선인들을 강제 유폐시키는 불상사가 뒤따랐다고 한다.
이때 강제 이주과정에서 주로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기차 안에서 굶주려 죽었다고 한다. 죽은 시체는 달리는 기차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고 한다. 그 후 그 살인기차가 간 길을 뼈 가루가 날리는 하얀 길이라고 명명됐다고 전하고 있다.
황무지(荒蕪地) 중의 황무지인 중앙아시아에 유폐(幽閉)된 조선인들은 온갖 수난과 괄시(恝視) 속에서도 땅을 일궈 농사를 지으면서 배달민족의 우수성과 강인한 생명력으로 끈질기게 살았고 또 살아남은 사람들이 바로 고려인 후손들이다.
불과 80년 전의 일이다. 강제이주 대상이던 조선인 고려인 1세대, 이들이 낳은 후손들이 고려인 2~3세로 소련 땅에 정착한 것이다.

고려인 후손들의 영고성쇠(榮枯盛衰)

1991년 소련 붕괴 이전까지 고려인들의 근면성과 성실성을 높게 인정받아 소련정부로부터 노력상과 영웅상을 많이 받았다.
명석한 두뇌가 뒷받침 되어 학식도 쌓이면서 어렵사리 정착 단계에 들어가는 과정에 소련의 붕괴라는 수난이 그들의 운명을 또 바꾸어 놓았다. 소련의 붕괴는 이들의 삶을 또 다시 시련 속으로 빠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저 소련에서 ‘카레예츠’ 혹은 ‘카레이스키’라고 천대 아니면 천시를 받으며 살았다. 그 후 다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으로 새로운 살길을 찾아 쫓겨나다시피 강제이동을 당하는 두 번째 집단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소련 붕괴 후 고려인 2~3세들은 새로운 노동시장을 찾다 보니 경제가 발전되고 잘 사는 나라로 자신들의 선조인 옛날 고려인 1세대들의 고향 땅인 한국으로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비공식 집계에 의하면 현재 국내 체류 고려인은 약 4만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1만 2천여명이 반월, 사회공단 등 중소형 공장 등이 집중되어 있는 안산지역으로 모이게 된 것이다.
이유는 우선 말이 통하지 않는 언어장벽과 당장 하루 세끼 끼니라도 해결해야 하는 급한 문제에 부닥치게 되면서 손쉽게 찾아가는 곳이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 중소기업의 날품을 찾게 되는 것이다.

고려인 후손들이 당면(當面)한 문제

고려인 후손들도 체질적으로 한민족의 우수한 유전자(DNA)를 갖고 태어났다. 그들도 인종학상으로 보더라도 한국인이다.
다만 80년 동안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본의 아닌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살아온 죄밖에 없다. 이제 그 후손들이 잘 사는 할아버지 나라로 다시 찾아와서 사람대접 좀 받아 보면서 살고 싶다고 하지만 할아버지 나라의 재외동포법(在外同胞法)이라는 마법(魔法)에 저촉(抵觸)되어 본의 아니게 19세가 되면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할아버지 나라를 떠나야 하는 신세로 전락(轉落)한다.
1992년 제정 공포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약칭 재외동포법)의 개정 보완이 시급한 당면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 법은 고려인 가운데 1~3세 까지는 재외동포의 지위를 부여한다. 이들에게 방문 취업 비자인 H-2(에이치투) 비자와 재외동포로서 일정기간 한국체류가 가능한 F-4(에프포) 비자를 발급해 주어 입국해 살도록 해주고 있다.
문제는 19세 미만인 고려인 4세부터 2~3세 부모를 따라 동반비자로 입국해서 함께 살다가 19세가 되는 날부터는 동반비자 기간이 만료되어 한국을 떠나야 한다. 이때부터 이들은 동포가 아니라 한국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외국인으로 취급된다.

▲ 장홍열 한국기업평가원 회장

때마침 새로운 정부도 들어섰다. 고려인 4세에게도 동포의 지위를 부여하는 문제도 전향적으로 생각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그들은 지구 밖의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다. 재외동포법에 따라 동포 자격이 인정된 3세대 동포의 직계 비속(直系卑屬)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를 인간이 편의상 만들어 놓은 법이라는 잣대로 인위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천륜(天倫)을 짓밟은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필설(筆舌)로 다할 수 없는 모진 고생(苦生)과 싸우면서 고려인의 정체성(正體性)을 잃지 않고 면면(綿綿)히 이어온 그들 선조들 그리고 그 후손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도 이제 따뜻한 동포로 감싸주면서 대우해줄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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