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사학자 김대령, 토론자료 발간
남민전 해방전사에게 바치는 노래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 국립5· 18민주묘지에서 열린 ‘ 제37주년 5· 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에 참석해 ‘ 임을 위한 행 진곡’ 을 제창하고 있다. 왼쪽부터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인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 문 대통령, 정세균 국회의장,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사진=청와대>

[이코노미톡뉴스=배병휴 회장]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화급한 국정과제들 속에서도 이념관련 갈등과 논란을 빚어온 사안들에 대해 가장 먼저 처리토록 지시함으로써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문 대통령은 보수정권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지시하고 국가보훈처가 시행을 거부해온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지시했다.

국가행사 기념곡 지정 논란배경

문 대통령은 이보다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 내정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개최되기도 전에 황교안 전 총리의 사표를 수리함으로써 새 정부 조각을 위한 장관 제청권의 공백을 자초했다. 황교안 전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혀온 구 통진당의 법적 해산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다.
또 ‘힘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 행사의 기념곡으로 지정, 참석자 모두가 제창토록 해야 한다는 당시 야당의 요구를 거부해온 박승춘 보훈처장의 사표를 즉각 수리했다.
그동안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행사의 기념곡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보수계의 반론이 강력했다. 재미(在美) 사학자 김대령 씨가 이와 관련한 찬반토론 참고자료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란 제목으로 저술, 비봉출판사에서 간행(2015.11)한바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운동권의 노래가 아니라 남조선 민족해방전사(남민전)의 전사(戰士)들에게 바치는 노래이다.
구체적으로 광주사태를 일으킨 남자 주인공 남민전 전사는 윤상원, 여자 주인공은 박기순으로 기술되어 있다.

광주사태 남녀주인공 윤상원, 박기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사, 작곡 과정을 보면 원작은 백기완, 가사를 고친 개사는 황석영, 작곡은 김종률로 ‘짜집기’식 운동권 노래이다.
1981년 5월 광주사태 1주년 때 전남대 김종률이 황석영의 자택에서 전진가를 모방한 시민군가를 작곡했다. 이듬해 2월 황석영이 이 곡에 맞는 가사를 찾다가 백기완의 ‘묏 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시를 찾아 개작한 것이다.
이 행진곡의 남자 주인공 윤상원은 남민전의 위장 취업자 제1호로 10.26사태 후인 1979년 11월 24일 서울 명동 YMCA 위장 결혼식을 통해 국가전복을 위한 총궐기를 시도한바 있다. 또 여자 주인공 박기순은 전남대 3학년 때 학업을 중단, 아세아자동차가 위치한 광천동 공단에 위장 취업하여 밤에는 야학을 운영하면서 운동권 전사들을 양성했다. 박기순은 나중에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의 주인공인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의 동생이다.
또 김남주는 전남대 후배인 윤상원, 박기순 등을 남민전 전사로 양성해 낸 광주사태의 설계사로 ‘나는 민중의 벗, 나는 행방전사’의 시를 쓴 작가이다. 그러니까 김남주의 설계에 따라 윤상원과 박기순은 그의 혁명의지를 살리고자 결과적으로 몸을 불살랐다. 박기순은 광주사태 1년 6개월 전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고, 윤상원은 5.18 때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그 뒤 1982년 2월 두 사람은 5.18 묘지에 합장되고 영혼결혼식을 올렸으며 이날 넋풀이 곡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바친 것이다.

‘남민전’, 북한군 불러 무장반란 계획

남조선 해방을 사명으로 삼은 ‘남민전’은 1977년 1월부터 북한군을 불러들여 무장반란을 일으키겠다고 계획했다. 남민전 총책 이재문은 무장투쟁의 목표가 정권타도, 남북연방제, 사회주의 통일이라고 말하고 이를 위해 북한군의 지원을 요청하여 내란사태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남민전은 북한과 연계를 위해 조직원 한명을 일본에 보내 조총련의 협조를 얻었다. 임준열(본명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교포시인에게 보내는 소개장을 써줘 안용웅이 조총련의 협조 하에 방북할 수 있었다. 이때 김일성에게 바치는 신년 인사문과 남민전의 사업보고서를 제시하고 공작금 3억원 지원을 요청했다.
방북 결과 1978년 1월 서울 시내에서 남민전 명의의 삐라가 살포되면 북측에서 남민전의 조직력을 인정해 주기로 약속했다. 실제로 남대문 도꾸호텔 앞과 세운상가에 정권타도 등의 내용을 담은 삐라가 살포됐다. 이때부터 남민전 전사들은 북한 방송을 청취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임헌영이 작성하고 남민전 총책 이재문이 서명한 ‘김일성에게 보내는 충성맹세 편지’가 북한 방송으로 흘러 나왔으니 남민전과 북한과 공조체제가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측 ‘임을 위한…’, 북측 ‘님을 위한…’

남민전은 베트콩을 모방한 도시게릴라 조직으로 볼 수 있다. 또 시민군이란 곧 남민전의 군대 조직이다. 광주사태시 시민군이란 표현은 인민해방군의 뜻이다. 북측이 특수부대 요원들을 시민군 형식으로 파견했다는 주장이 이 때문이다.
아세아자동차의 습격은 무장봉기 수단의 하나로 외부 불순세력이 주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장갑차를 몰고 기관총을 발사한 것이 일반 시위대일 수는 없고 도시게릴라 전문가들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측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있고 북측에는 ‘님을 위한 교향시’가 있다. 북에서 말하는 ‘님’은 오로지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뜻한다. 남측 대통령은 ‘님’이 아니라 ‘놈’이라고 호칭한다.
김일성이 황석영의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을 보고 국회 광주청문회가 끝나자 그를 평양으로 불러 환대했다. 이때 북한판 5.18 영화 시나리오 작성을 부탁하여 ‘님을 위한 교향시’를 작성했다. 황석영이 썼다는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이 실제로는 전남대 상대 출신인 이재의의 작품이다.
남측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북의 ‘님을 위한 교향시’나 다같이 광주 운동권에 바치는 노래이다.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는 남쪽의 ‘화려한 휴가’보다 16년이나 앞서 제작됐다. 북측 영화해설에는 시나리오 작가 황석영이 말했다는 “미국에 의한 남한통치를 끝장내고 북한식 인민민주주의의 통일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해설을 삽입시켰다.
다만 북한 영화는 주인공 윤상원을 전남대생 ‘박관현’으로 대체함으로써 북한 특수군을 학생혁명군으로 위장 파견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북한 영화에는 여대생의 젖가슴을 도려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끄집어내고… 등 새빨간 거짓말을 담았다. 남측 영화에서는 사실무근으로 확인됐기에 담지 않았다. 이들 악성 거짓 유언비어들은 남파 간첩들이 조작, 유포시켰던 것이다.

남민전 강도질과 부산저축비리 뿌리

이 책속에 임을 위한 행진곡과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와 깊은 뿌리 관계에 대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전남 민청협 출신인 해동건설 박형선 회장은 부산저축은행 2대 주주로서 박연호 저축은행 회장과는 광주일고 동문사이다. 광주사태 여주인공 박기순은 박형선 회장의 동생이다. 또 5.18 기념재단 설립자 윤한봉의 여동생 윤경자가 박형선 회장의 부인으로 처남 매부사이다.
1982년 김현장이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을 저질렀을 때 박형선이 친분관계인 노무현 변호사를 소개하여 변론을 맡았다.
박형선 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토목회사를 인수하여 해동건설로 크게 육성했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부산저축은행 2대 주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을 크게 벌였다. 그러나 2011년 5월 거액의 불법대출 관련 특가법의 적용으로 구속,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보다 훨씬 앞서 남민전 전사들이 무장투쟁을 준비하면서 시민군 군대를 조직하고 좀도둑질과 강도짓으로 몇 차례 들통이 났다. 남민전은 강도질 할 때도 작전명을 달았다.
1978년 11월 5일, 동대문 휘경동 사장집 강도짓은 ‘봉화산 작전’, 1979년 3월 5일, 실패한 금은방 강도짓은 ‘지에스 작전’, 1979년 4월 27일 밤 10시의 무장봉기 예행연습은 ‘땅벌1호 작전’ 등.
이 땅벌 작전에는 김남주, 이학영, 차성환, 박석률 등 남민전 시민군 조직인 ‘혜성대원’ 8명이 참가하여 강남구 반포동에 있는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의 내연처 집을 털고자 했다. 그러나 경비원이 고함을 지르자 칼로 찌르고 금도끼 하나를 들고 도주했다. 이때 이학영이 주민들에게 붙들려 실체가 들통났다.
이날 경비원을 칼로 찌른 범인이 실제로는 차성환이었지만 이학영이 대신 나섰다. 남민전의 전체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큰 몸통을 숨기려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절 남민전의 강도질 행각이 뒷날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 사건의 뿌리와 닿는다는 이야기다.

가짜 금도끼 팔려다가 들통

남민전 전위대로 강도행각을 벌인 이학영, 박석률, 박석삼 형제, 김남주. 차성환 등이 모두 박형선 회장과 동지 관계이다. 그러니까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 사건이란 광주 운동권 전사들이 부산으로 원정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숙대 교수로 남민전 중앙위원을 맡고 있던 간첩 안재구가 부산 연고로 최원석 회장 집에서 강도질한 금도끼의 판매책임을 맡았다. 안재구가 금은방을 찾아 금도끼를 팔려고 하자 금으로 도금한 가짜임이 드러나 경찰에 신고되어 장물임이 밝혀졌다.
이때 이근안 경감이 안재구 수사를 맡아 “대학교수가 도둑질한 장물이나 팔러 다니느냐”고 핀잔하자 남민전 조직 등에 관해 자백함으로써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것이다.
지난 1979년 10월 9일, 당시 구자춘(具滋春) 내무부 장관이 반국가지하조직 연루자 74명을 적발하고 이중 주모자 20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그러나 실제 남민전 연루자는 이보다 훨씬 많았다.

부산저축은행 통해 광주일고 부산진출

부산저축은행은 1972년 부산상호신용금고로 출발했다가 1982년 4월 광주사람 박상구 씨에게 팔려갔다. 박 씨는 김대중 대통령의 목포상고 1년 후배이자 오랜 재정 후원인이었다. 김 대통령 집권시 상호신용금고가 은행으로 개칭되자 부산상호신용도 부산저축은행으로 격상되고 광주기업인과 광주일고 인맥들이 대거 부산으로 진출했다.
해동건설 박형선 회장은 전남대 농대 출신으로 2002년 소규모 토목회사를 인수하여 해동건설로 확장하면서 부산저축은행 지분 9.11%를 확보함으로써 2대 주주가 됐다. 박형선 회장 주도 아래 부산저축은행은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일대 도시개발 프로젝트에 3,000억원을 투자했다가 날려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캄보디아 방문 때 수행하여 캄코시티 신공항 건설 4,300억원, 고속도로 건설에 620억원을 투자키로 했지만 오래지 않아 거의 허공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이밖에도 해동건설이 추진한 PF 대출사업에 불법대출도 상당수 부실화 됐다.
이 무렵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술집여인과 내연관계를 맺어 사생아를 출산한 사건이 뒷날 드러나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스폰서 검사 사건이 잇달아 채동욱 차장검사가 조사단장을 맡았다. 또 문재인 현 대통령은 노무현 청와대 민정수석때 법무법인 부산 대표 변호사로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70억원을 받은 혐의가 제기됐지만 정당한 수임료라고 해명한바 있다.
박형선 회장은 2002년 광주일고 동문을 중심으로 ‘노사모’ 결성을 주도했으며 5.18단체 회원과 한총련 등 무려 5만여명의 회원조직을 만들어내 노무현 후보 선출과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비봉출판사 2015년 11월 발행, 430페이지)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