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톡뉴스 최서윤 기자] 국내 최초 항공사 드라마 ‘파일럿’. 1993년 MBC가 방영한 이 드라마 속 항공기 조종사(파일럿)는 모두 남자였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6년, 대한항공은 여성들에게도 항공기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었다. 여성 하면 비행기 승무원(스튜어디스)만 떠올렸던 시기에 직접 비행기를 몰고 창공을 날겠다는 꿈을 꾸며 대한항공의 문을 두드린 사람들. 그 중 한 명이 황연정(44) 기장이다.

황 기장은 남성들도 쉽지 않다는 항공기 조종사라는 직업에 도전장을 냈다. 그는 유리천장을 깨고 현재 기장으로 활동 중이다. 또 두 아이의 엄마로, 일과 가정을 지키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남편인 김현석(49) 기장과는 대한항공 조종훈련생 25기 동기이자, 국내 최초 민항기 부부 기장이다. 이런 그의 일상이 궁금했다.

▲ 황연정 기장이 15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대한항공).

지난 15일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제복을 입은 황연정 기장을 만났다. 40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기 관리가 잘 된 모습이었다.

“남들은 제가 제복을 입고 있을 때가 가장 낫다고 해요(웃음).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비행기 조종실 안에 들어갔었는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네요. 고등학교 때 공군사관학교(공사)에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었어요. 제가 옛날부터 제복 입고 일을 하고 싶어 했던 거죠. 가끔 부기장들이 저를 보고 군대 갔어도 잘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해요.”

그는 ‘하늘 위의 특급호텔’이라고 불리는 에어버스 A380 항공기를 운항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10대와 6대를 도입해 운영 중인 여객기다. 황 기장은 베테랑 기장만이 운항 할 수 있다는 A380을 몰고 있다.

“A380은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입니다. 2층으로 돼 있는데 주로 미주와 유럽을 다닙니다. 미국 뉴욕, LA(로스앤젤레스),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뉴욕까지 가는데 14시간이 걸립니다. 오래 앉아 있으면 힘들 때도 있죠. 하지만 격려해 주는 승객 분들도 있고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동남아 쪽을 운항할 때는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어요. 요즘은 장거리를 운항하다 보니 승객들의 편안한 여행을 위해 쉬는 시간에는 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있습니다.”

황 기장은 비행을 하지 않을 때는 주로 체력 보충과 운동을 한다. 자신에 대한 철저한 체력 관리가 승객들의 더욱 편안하고 안전한 여행을 위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통해 체력 관리는 물론, 스트레스 해소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재작년부터 운동을 하고 있어요. 뮤직복싱을 합니다. 음악에 맞춰 에어로빅처럼 하는 것인데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좋아요. 한참 뛰면 땀도 많이 나고 체력도 좋아지는 기분입니다. 전에는 스포츠댄스도 했어요. 굉장히 좋은 운동입니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 중에는 50대 중반인 언니들도 있고요. 40대 중반이 지나면 어느 순간 체력이 소진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때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객기가 운항하기 직전 기내에서는 ‘기장 방송’이라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기장은 출발 전 승객들의 안전한 여행을 위해 당부의 말을 한다. 보통 남성 목소리가 들리는 까닭에 황 기장이 방송을 하면 특별히 기억을 하는 승객들도 있다고.

“A330 중형기를 몰 때였어요. 7살 아이가 색종이에 ‘기장님,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적힌 편지를 줬어요.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 여성 승객 중에 본인도 일하는 사업가라며 ‘여성 기장이 자랑스럽다’고 선물을 주신 분이 있어요. 1년 뒤 같은 LA 노선 비행기에서 그 분을 또 만났죠. 그 분이 승무원한테 지난번에 만난 기장님이라고 얘기해서 나중에 그 분하고 인사도 했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승객이시죠.”

현재 대한항공에는 4명의 여성 기장이 있다. 황 기장의 동기 2명과 후배 1명을 포함해서다. 대한항공은 양성 평등주의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여성 인력 육성, 일자리 창출을 하는 기업 중 한 곳이다. 승무원은 물론, 여성 조종사들을 매년 채용하고 있다.

“비행기 조종사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제가 입사하고 한참 후배가 없다가 한 명 생기고 또 한참 없다가 한 명 생기곤 했는데 지금은 1년에 몇 명씩 나옵니다. 부기장 10명에 훈련 중인 인력까지 20명 정도가 여성 조종사들입니다. 회사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대한항공 뿐 아니라 진에어, 이스타항공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항공 여성조종사 모임도 있습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잡담도 합니다. 여성 조종사들을 언제든 환영합니다. 후배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네요.”

황 기장은 쌍둥이 엄마다. 그는 자신의 시험관 시술을 당당히 밝혔다. 저출산 시대다 보니 ‘출산은 애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시험관 시술을 위한 정부(보건복지부) 지원도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시험관 시술 희망자를 대상으로 최대 1년 휴직을 부여하는 난임휴직제도를 시행 중이다. 불임 부부가 늘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당사자들의 심적 고통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황 기장은 이들에게 희망이 됐다.

“사실 저는 아이를 갖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시험관 시술을 했거든요. 쌍둥이다 보니까 임신 기간 동안 더욱 각별히 신경을 썼지요. 저는 주변에 시험관 시술을 했다고 당당히 얘기해요. 요즘 불임도 많잖아요. 오히려 불임인 사람들한테 제가 이렇게 해서 시험관 아이를 낳았다고 과정을 알려줍니다. 주변에 계속 실패한 후배가 있었어요. 아이 없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제 얘기를 듣고 용기를 내서 한 번 더 시도한 끝에 성공했다며 고맙다고 이야기한 경우도 있었고요.”

많은 여성들이 결혼, 임신·출산, 양육 등으로 2명 중 1명꼴로 경력단절을 경험한다. 한국 사회에서 ‘휴직 후 복직’은 아직 쉽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일·가정 양립 정책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한항공은 육아휴직, 산전후휴가 등을 권장해 능력 있는 인재들이 회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황 기장도 덕분에 경력단절녀, 이른바 ‘경단녀’ 위기 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 중이다.

“저희는 쉬면 언제든지 복귀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습니다. 더 쉴 수도 있고요. 임신할 때부터 쉬면 2년 가까이 쉴 수 있고요. 저는 조금 복귀를 빨리 했어요. 임신해서 일을 못하니까 더 힘들더라고요. 일을 하다 못 하게 되니 제가 더 갑갑했어요(웃음). 저는 일을 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신체 회복에 도움도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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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②] '하늘을 나는 워킹맘' 대한항공 황연정 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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