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건박사, 한국은 원전수출국 모델
KLO 전사출신으로 원자력 63년 외길

▲ 원자력 1세대 최고 원로 이창건(李昌健) 박사. <사진=이코노미톡뉴스>

[이코노미톡뉴스=배병휴 회장] 6.25 KLO 대원 출신으로 용맹을 떨친 이창건(李昌健) 박사는 우리나라 원자력 1세대 최고 원로로서 문재인 정부의 ‘탈 원전’ 정책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 박사는 원자력 전문가의 입장에서 ‘원전 제로화’ 공약은 현실적으로 실행이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보며 공약제정 및 실천정책 수립 과정에 비전문가가 개입하지 않았겠느냐고 의심한다.

원자력 제1세대 원로의 탈원전 우려

이 박사는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한국원자력연구소 창설 멤버로부터 한국원자력학회장, 원자력위원회 위원, 국제원자력학회장, 한국전력기술기준(KEPIC) 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 원장을 맡고 있다.
이 박사는 문재인 정부가 친환경, 친노동 정책 기조 하에 ‘원전 제로화’ 공약 실천을 다짐하고 있지만 이는 원자력에 대한 오해와 불신으로부터 나온 비현실적인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경제부총리 출신의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이 원전 제로화 공약 실천을 위해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중단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발언에도 충격감을 느낀다. 이들 원전 공정률이 28%에 달할뿐더러 경제부총리 시절 국가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며 원자력의 당위성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한수원 노조가 일방적인 원전건설 중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성명했다. 노조는 원자력산업 전반 및 특히 중소기업의 기자재 공급망을 붕괴시켜 많은 기업의 도산과 실업자를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원자력 최고 전문가로서 이 같은 탈 원전 반대여론이 자연스런 반응이라고 진단한다.

▲ '원전 제로화'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 사진은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행사. <사진=청와대>

일방적 탈원전은 제왕적 조치 비난

원자력학계 소속 230여 교수들은 지난 6월 2일 프레스센터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원전산업의 궤도수정은 국민 공론화와 전문가 참가 심도 깊은 논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탈원전 정책은 ‘제왕적 조치’로서 소수 비전문가에 의한 속전속결식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이는 원자력계의 사기를 꺾고 공든 탑을 허물어 국가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자리에서 서울대 주한규 원자력핵공학 교수는 문 정부의 원자력 정책수립에 원자력 전문가는 한 명도 참여하지 않은 일방적 편견정책이라고 주장했다. KAIST 성풍현 원자력·양자공학 교수는 한국의 원자력은 전력생산용 대형 원전, 연구용 원전, 차세대 소형원전 등 모든 유형을 모두 수출한 성공모델임을 강조했다. 성 교수는 세계적으로 탈 원전은 독일, 스위스, 벨기에, 타이완 등 4개국이나 미국, 중국, 유럽 각국은 원전을 계속 건설·운영하고 영국도 다시 건설하고 있다는 사례를 제시했다.

▲ 최초의 한국형 원전 수출-현대건설 UAE원전 공사현장 모습. <사진=한국전력>

1950년대 원전 스터디그룹 멤버

이창건 박사는 1954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이래 63년째 줄곧 원자력계에 몸담고 있는 외길 원자력 제1세대로 원전에 대한 애착이 너무나 강렬하다. 이 박사 대학시절인 1953년 12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 Program)을 발표하자 서울대 윤세원 교수가 원자력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이창건 학생이 이 스터디 그룹 주축으로 참여하여 당시 문교부 고등교육국 내 원자력 담당 2명 등과 자발적 원자력 세미나를 가졌다.
이 스터디 그룹을 기반으로 우리나라 원자력법 초안이 마련되고 원자력 행정기구, 연구소 등이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그 뒤 이 박사는 미국 원자력 교육을 거쳐 한국인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 운전면허도 취득했다.
1959년 이승만 정부가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할 때 이 박사가 적극 참여했다. 또 신생 대한민국의 빈약한 국가재정 하에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 Ⅱ(TRIGA-Mark Ⅱ) 도입을 결정할 때도 깊이 참여했다. 국내 첫 원전인 고리(古里) 1호기 건설 때는 지도를 들고 전국의 입지를 물색하러 다닌 결과 경남 양산의 고리를 발견했다.
국내 원자력학계 제1세대 원로로서 이 박사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이 박사는 원전에는 첨단 공학·과학 최고기술이 총동원되어 친환경 클린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술문명 발전의 최정점이라고 예찬한다. 이 박사는 한국의 원자력기술이 이미 세계 최상위권에 도달했음을 자부하고 자랑한다. UAE에 원전 4기를 수출 중에 있고 요르단에는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했다.
이 박사는 한국형 신경수로 APR-1400은 단위용량 140만 kW급 원자로로 내진설계, 설계수명, 건설공기 등 여러 측면에서 제3세대 동급 원전 가운데 세계 최고라고 강조한다.

▲ 고리 1호기는 1977년 가동돼 2007년 설계수명 30년을 다했으나 연장을 통해 40년간 전력을 생산했다. 학계는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원전 건설 기술과 운영 기술을 개발해 원전 수출까지 해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사진=한수원>

원전 40년, 고리1호기 영구 정지

이미 한국 원전사가 40년에 이르러 제1호기인 고리 1호가 처음으로 영구 정지되어 폐로(廢爐)된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 9일 제70회 회의를 통해 한수원이 신청한 고리 1호기 영구정지를 의결했다. 이보다 앞서 원자력안전기술원이 1년간 연구정지 관련 기술 심사했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6월 18일자로 고리 1호기 가동을 중지시키고 핵연료 냉각, 안전성 검사 등을 거쳐 5년 뒤인 2022년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폐로 작업은 원전구조물의 방사능 오염을 제거하는 제염(除染)과정을 거쳐 절단 해체, 방사성 폐기물 처리·처분, 환경복원 등 길고도 먼 길로 가게 된다.
한수원은 원전 1기 해체비용을 6,347억원으로 계산한다. 여기에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비용, 사용후 핵연료 관리비용을 고려하면 1조원대로 계산한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 폐로시장 규모가 막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IAEA는 전 세계의 가동 중인 원전 해체비용을 1,848억 달러(200조원)로 추정한다. 여기에 연구용 원자로, 핵연료 주기시설, 방사선 시설, 군수시설 등 해체비용을 감안하면 9,000억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지금껏 해체 완료된 원전은 미국 15기, 독일 2기, 영국과 일본 1기씩 등 모두 19기에 이른다.
고리 1호기 폐로 입찰에는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이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리 1호기에 이어 2022년 월성 1호기, 2024년 고리 3호기, 2025년 고리 4호기, 한빛 1호기 등 국내 원전 연속 폐로시장도 열리게 된다.
국내 폐로 경험이라면 한국 원자력의 모태인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 Ⅱ’를 지난 98년부터 10년간 해체한 실적이 있다. 원자력계는 제염, 절단, 부지복원기술개발 등 전반적으로 국내 기술이 선진국의 70%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도 두산중공업, GS건설, 대우건설, SK건설, 삼성물산, 대림산업 등이 폐로기술 개발에 나선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 차세대 한국형 표준 원전인 APR1400이 적용된 신고리 5, 6호기. 현존하는 상업용 원전 중 최고 수준의 안전설계가 도입됐다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재학중 6.25 만나 용맹 KLO 대원으로

이창건 박사는 대학 재학 중에 6.25를 만나 KLO 부대를 통해 참전했다. 이 박사가 ‘KLO의 한국전 비사’를 집필한 것이 이 때문이다. 경제풍월 2009년 5월호에 ‘적진 뒤흔든 신출귀몰’ ‘전설의 KLO 대장 최규봉(작고) 맹활약’으로 보도한바 있다. (글 이창건, 2005. 12 지성사 발행, 490쪽)
이 책 속에 KLO 관련 기록사진, 증명서, 적진침투 파괴공작, 원산침투작전, 격추된 MIG기 인양, 미군 조종사 구출 등 눈부신 활동상이 자세히 나온다.
평북 선천의 지주집 아들로 태어난 이창건은 6.25 때 영어를 해독하여 대구 KLO 부대 시험에 응시하여 강훈을 거쳐 용맹대원이 됐다. 해상침투 작전에 참가하여 9월산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지만 부상을 입었다. 그 뒤에도 각종 작전계획을 수립, 신장비 개발 아이디어 등으로 KLO 부대 내에서 명성을 날렸다.
이 박사의 선친은 독립투사로 상해 임시정부 광복단 청년별동대인 김상옥 열사와 절친하여 그를 숨겨줬다가 옥살이를 겪었다. 또 장남 이창건은 지주 아들이기에 공산당이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 일찍 38선을 넘어와 공학도가 됐지만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자진하여 KLO 대원이 된 것이다.

임란 왜장의 사무라이 쌍총 비화

▲ 이창건 박사 집필 ‘ KLO의 한국전 비사’

이 책 속에 전설의 최규봉 대장이 남긴 일본 사무라이 쌍총 비화가 소개되어 있다.
최 대장이 KLO 부대 은퇴 후 대원들의 생계수단으로 고물수집상을 하다가 용인 민속촌을 건립했다. 이 과정에 경북 청도에서 임진왜란 때 출병했던 일본 장수의 사무라이 쌍총을 발견, 수집한 것이다. 일본 점령군 장수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가 대구 기생집에서 술판을 즐기다가 의병이 몰려오고 있다는 소문에 놀라 총을 남겨두고 맨발로 도주했던 것이다.
임란이 끝난 후 쌍총 가운데 한 자루는 일본으로 건너가 국보로 지정됐지만 나머지 한 자루는 행불로 처리됐다. 바로 이 총이 청도의 어느 유지집 장롱 속에서 380년이나 잠자고 있다가 전설의 KLO 대장 고함 소리에 놀라 고물로 나온 모양이다. 이에 최 대장이 청와대 피스톨 박(박종규 경호실장)에게 전화하여 총을 보여줬더니 돈 다발을 주면서 자기가 보관하겠노라고 주장했다.
박 실장이 문헌을 찾아보고 학계의 감정을 거쳐보니 임란에 앞서 도쿠가와가 사돈 관계인 센다이 다이묘 다테 마사무네에게 출병 기념으로 선물한 총으로 일본의 국보급이 맞았다.
이 박사는 KLO의 한국전 비사 부록에 KLO 부대 편성도, 참전동지 명단 등을 기록해 놓고 ‘KLO여 영원하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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