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시끄러운 소리

[이코노미톡뉴스=김숙 논객] 살아갈수록 말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된다.
우선 내 자신의 쓸데없는 말로 말을 잃는 경우가 있고 상대방이 지나치게 말이 없음으로 답답한 가슴을 어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단 한마디 말이 용기가 되고 가르침이 되는 경우가 있고 치명적인 상처로 남아 언제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픈 그림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일단 하고 나면 연기처럼 사라져 아무 형체도, 흔적도 없는 말의 위력이 그렇게 무한하고 행복과 불행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 만큼 말에 대해서는 누구든 제 나름대로의 엄격한 부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생각 없이 툭툭 던지듯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과 한순간도 같이 있고 싶지 않음은 누구나 거의 비슷할 것으로 여겨진다. 무방비 상태에 있다가 느닷없이 날아올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니까 말이다.
“빈 총도 안 맞으니만 못 하다”는 말이 있다.
굳이 이솝 우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실탄이 없는 총일 망정 자신을 겨냥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실제든, 장난이든 좌우간 싫다는 얘기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에는 고유한 이름이 있고 저마다 그 이름에 걸맞은 소리가 있다. 이를테면 천둥, 바람, 물... 그들이 내는 소리를 천둥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등등으로 칭한다.
그렇다 해서 사람이 내는 소리를 ‘사람소리’ 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내는 소리는 목구멍을 통해 나타내는 단순한 울림이라기 보다는 유일하게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기호(?)이기 때문이다. 사람만이 가질 수 있고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중대한 기호가 비로소 말이다.
향기 짙은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혹은 가시가 많은 장미는 향기가 짙다. 향기와 가시 중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꼭 선후를 따져 말해야 할 필요나 가치도 없다. 다만 필자는 향기와 가시가 나뉘어지는 단순논리의 오류, 이분법적인 사고를 지적하고 싶다. 향기 짙은 장미에 가시가 없다 해서 그 향기가 볼 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할 수 없는 기품과 부드러움에 수많은 사람들이 매료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주변에는 가시 돋친 장미와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심심찮게 눈에 띔을 알 수 있다. 언뜻 고고한 인품을 지닌 듯 보여 고개를 숙이고 내심 감탄하고 있는 마당인데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란... 차마 그냥 듣고 넘길 수 없어 적잖이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않은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말은 말이라기 보다는 소리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도가 지나침을 강조하고 싶을 때는 [개]라는 접두어를 붙여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ㅇㅇ]는 비속어인 만큼 그런 낱말들을 일일이 지면에까지 옮겨 적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쨌거나 비속어를 쓰는 사람은 본인의 인격을 가시로 찌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상처는, 특히 말에 대한 상처는 늘 가까운 사람에게 주고 가까운 사람한테 받게 되어있다.
역설적으로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일수록 본인에게 가까운 사람일 확률이 높다. 제3자들에게는 상처 받을 일이 없을 뿐더러 설령 그들이 상식적이지 않더라도 속속들이 관여해야 할 까닭도 없기 때문이다.
이 건 여담인데, 필자에게 중, 고등학교 시절 고락을 같이했던 친구가 있다.
3년 전이던가, 그 친구가 전화로 출간소식을 전해왔다.
“ㅇㅇ에 가면 책이 있으니 사 보라!”는 것이었다. 순간, 친구의 무례함에 굉장히 화가 났다. 몇 년이 흘러갔다. 두어 달 전, 다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필자는 그동안의 유감스러웠음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이번에는 친구가 해명했다.

▲ 김숙 편집위원(자유기고가)

“너는 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친구잖아...” 친구니까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건 그쪽 사정이었고, 순간을 모면해 보려는 말장난 혹은 억지에 더 화가 났던 건 필자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는 받은 상처가 있더라도, 그 아픔의 부피가 크더라도 차분히 내려놓고 여유 있게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
행여라도 스스로 하는 “말”이 상대에게 “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상처받는 대신 “말”로 그들을 이해시키며 느긋하게 살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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