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세력의 공포확산 책략 아닌가

▲ <사진=이코노미톡뉴스DB>

[이코노미톡뉴스=이진곤 칼럼] 흔히들 미국을 ‘현대판 로마제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뜯어보면 로마보다는 고대 아테네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로마가 정복 통일제국이었다면 아테네는 동맹체제의 맹주였다. 제1차 해상동맹은 페르시아 전쟁 후인 BC 478~477년 아리스티데스의 제창으로 결성됐다.
이 동맹의 본부와 금고를 델로스섬에 두었기 때문에 델로스동맹으로 불렸다. 처음엔 가맹도시 모두가 평등한 투표권을 가졌다. 동맹이긴 했지만 여타 도시국가들은 함선이나 군대, 무기 등을 제공하기엔 너무 작았다. 이들은 대신 방어비용을 분담하는 것으로 동맹 유지에 기여했다. 아리스티데스가 가맹국의 권리 의무 등을 담은 동맹문서를 작성했고, 그 관리도 책임졌다. 그는 대단히 공정해서 어느 도시도 이의를 제기하는 법이 없었다.

미국, 이제껏 선한 맹주였다

그런데 BC 454년 동맹본부와 금고가 아테네로 옮겨졌다. 이후 이 동맹은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지배 수단이 되었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정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위대한 정치가였지만 동맹 가맹국들에 대해서는 제국주의적 지배권을 거침없이 행사하는 독재자였다. 그의 시대에 델로스동맹 가맹 200개 도시는 동맹국의 지위를 잃고 신민의 처지로 떨어졌다.
페리클레스 사후의 일이긴 했지만 아테네는 멜로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중립을 고집한다는 이유로 도시 자체를 절멸시켰다. BC 415년이었다. 아테네는 멜로스의 모든 남성들을 처형하고 아이들과 부녀자들은 노예로 팔아버렸다. 아테네에 맞서면 어떻게 되는 지를 보여주려는, 제국주의적 위력 과시였다고 하겠다.
미국은 여러 점에서 아테네와 닮았다. 우선 모범적 민주국가이고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이 그렇다. 동맹의 적에 대해 징벌적 전쟁을 벌인다는 점에서도 유사점이 발견된다. 당연히 자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해에 대해서는 가맹국들까지 동원해 가며 철저히 응징한다.
그러나 미국은 가맹국들에 대해 과중하고 가혹한 부담을 지운 적이 거의 없다. 대개의 경우 미국은 보호하고 베푸는 측에 서 있었다. 2차 대전 후 서방세계와 일본의 재건을 이끌었고, 한국을 공산세력의 침략에서 구해냈을 뿐 아니라 그 경제적 대도약을 뒷받침했다. 국내의 반미세력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탈, 대한민국의 식민지화를 끈질기게 주장해 왔지만, 6·25 이후 지금까지의 한미동맹 대차대조표를 작성하기로 한다면 아마도 미국의 일방적인 시혜, 한국의 일방적인 수혜로 표기 될 것이다.
반미주의자들은 대부분 친북·친중 성향을 드러낸다. 제국주의적 압제자 약탈자인 미국에 감연히 맞서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 북한이 있다는 게 이들에게는 기댈 언덕이 되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공산주의 정치체제로도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로 자신들의 이념체계를 정당화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나라의 보수우익 정치세력이 경제적 성취의 공을 자랑하며 안일에 빠진 사이에 이들은 집요하게 젊은층, 사회적·경제적 소외세력을 불만의 대중, 이념적 좌파로 바꾸었고, 그 결과가 오늘날의 한국사회 분위기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의 판단 기준은 언제나 ‘선과 악’이다. 그들은 정의를 독점한 듯 적대세력을 공격한다.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국 배치는 미국에 악마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반미세력의 공포확산 책략

▲ 16일 미국 워싱턴DC에서 ‘ 한· 미 신행정부 출범과 한· 미 동맹’ 을 주제로 열린세미나에 참석한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가 한· 미 군사훈련 축소 가능성을 언급해 논란을 초래했다. <사진=문정인 교수 홈페이지>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위험성이 아주 높다고 헛소문을 퍼뜨려 이명박 정부의 초기 동력을 여지없이 약화시켰던 그 수법으로, 이들은 사드 반대 여론을 증폭시켰다. 사드배치 지역은 북한 미사일의 공격 목표가 되고, X밴드 레이다의 전자파는 치명적인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등 공포 확산 책략으로 대중의 심리를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진보좌파 정권은 출범하기 무섭게 미국과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지난 5월 30일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했다. “문 대통령은 경북 성주에 이미 설치된 사드 발사대 2기 외에 4기의 발사대가 비공개로 한국에 추가 반입돼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사실을 보고 받고 ‘매우 충격적이다.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경위에 대해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미국과의 사이에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사드 배치를 엉거주춤한 선에서 일단 저지하는 데는 성공했다. 청와대가 하루 만에 해치운 진상조사 결과로는 고의적 보고 누락이었다는 것인데, 대통령에게 국방부가 이미 다 알려진 일을 숨겼다는 건, 상식적으로건 논리적으로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새 정부는 전략환경평가·일반환경평가를 거친 후에야 사드 1세트 6기 가운데 아직 보관 중인 4기를 설치할 수 있다는 방침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사드 배치 현장에서는 이미 그 이전부터 행동으로 직접 가동을 저지하는 실력행사가 계속됐다.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주민들과 환경·종교단체 등이 지난 4월 사드가 배치되기 시작할 때부터 차량 진입로를 막고 나섰다. 이들은 군부대 출입차량을 검문했고, 유류 반입을 저지했다. 사드를 가동하게 하는 발전기용 유류는 어쩔 수 없이 헬리콥터로 실어 나르는 상황이 됐다. 이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안보현실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엔 북한 무인기가 성주 사드기지 까지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국민의 안보 불안이 커지자 사드철회 성주투쟁위원회는 지난달 15일, 군 차량에 대해 검문은 않고 육안으로 감시만 하기로 경찰과 잠정합의했다고 알려졌다. 이런 코미디가 또 있을까?
사드 반대론자들은 미군기지 보호를 위한 사드를 위해 왜 우리가 부지를 제공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드 철수’가 이들에겐 유일한 투쟁목표다. 사드는 북한에 위협적이고, X밴드 레이더는 중국의 골칫거리다. 그렇다면 사드 배치 반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미국이 자신들의 군 기지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도 주한미군 기지가 건재해야 한반도 유사시 그들의 전쟁 억지력, 침략자에 대한 응징력이 유지 강화될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무방비 상태라면 그런 미군이 한국 방어에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왜 우리가 미군기지 방어를 위해 부담을 져야 하느냐고 따지는 것이 과연 상식적 대응인가.

다시 민족우선주의 시대 오나

미국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복종을 강요한 적이 없다. 선진 민주국가로서 그 동맹국들과의 관계 설정 및 유지에 모범을 보여 온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유념해야 할 것은 미국이 우리의 군사적 후견국이긴 하되 부모의 나라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무한정 양보하고 주는 상대가 아니다. 서로가 자국의 국익을 추구하되 함께 상생의 길을 찾아 가는 게 이상적인 동맹관계일 터이다.
중국을 미국의 대안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는 명백한 착각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강대국은 엄청스런 짐이고 위험요소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서 이 나마의 대등한 관계를 주장할 수 있는 것도 미국을 배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버티고 있는 지금도 사드 관련 경제보복을 공공연히 자행하고, 사드시설을 시찰하겠다고 나설 만큼 중국은 기고만장이다. 그래도 우리에겐 뾰족한 대책이 없다. 그게 강대국을 이웃으로 둔 약소국의 비애이고 운명이다.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즐겨 쓰는 말이 ‘촛불혁명’이다. 스스로 그 세력의 일원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의 기세는 갈수록 뻗쳐오를 게 뻔하다. 안하무인이 되는 것이야 그렇다 하고, 다시 ‘민족공조’ ‘우리끼리’가 ‘한미동맹’을 압도하게 되는 시절이 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김영삼 전 대통령식의, 그러니까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는 착각 속에 사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될 것인가.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아예 미국까지 가서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의 일단을 피력했다.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과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사드 환경영향 평가는 1년가량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전작권 환수 방침 표명도 잊지 않았다. 아무리 대통령 특보라고 해도 동맹국과의 합의가 필요한 일을 일방적으로 공언하는 것은 외교적 무례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진보좌파 정권의 화장기 지운 얼굴, 그러니까 민낯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인만큼 그 성공을 기원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도리다. 그러나 국가안보는 정권을 뛰어넘는 가치다. 국가안보를 두고 실험이나 모험을 할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한미동맹체제는 북한과 중국의 압박, 국내 반미주의자들의 공격, 미국에 불만이 많은 진보좌파 정부라는 삼각파도 속을 항해하고 있는 격이다. 5,000만 국민을 위기 속에 몰아넣는 것보다 더 큰 범죄, 더 큰 죄악은 없다는 것을 새 정부의 담당자들은 명심 또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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