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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정주영 대저택] 산업기념관 보존소망정형순 회장, 인수 16년 기다림의 세월
조선갑부, 산업화 근로정신 재운 살려야
  • 배병휴 [이코노미톡뉴스 회장]
  • 승인 2017.07.0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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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 가회동 소재 아산 정주영 왕회장 대저택. <사진=이코노미톡뉴스>

[이코노미톡뉴스=배병휴 회장] 정주영(鄭周永) 회장의 말년 손때가 묻어 있는 대저택을 인수한 부동산 사업가가 아직도 ‘왕년의 왕회장님’ 재운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심정을 밝혔다. 정 회장의 말년 저택이란 종로구 계동길 가회동의 옛 화신백화점 박흥식(朴興植) 사장이 오랫동안 살았던 집을 정주영 회장이 매입했던 저택이니 조선 최고 갑부(甲富)와 대한민국 최고 재벌의 재운이 누적된 명당터라고 볼 수 있다.

▲ 내부에는 정주영 회장의 활동을 담은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다..<사진=이코노미톡뉴스>

대물의 새 주인 찾기 시간 걸리는 법

지난 6월 1일, 대저택의 새주인 정형순 여 회장을 인접 가회한옥체험관에서 만나 저택 인수 후 “아직껏 왕년의 왕회장님 재운을 받지 못했느냐”고 물으니 “워낙 큰 대물이라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라며 웃어넘겼다. 정형순 회장이 채권단 경매과정을 통해 인수한지가 벌써 16년이라고 하니 사실은 그 사이 재산가치가 크게 오를 만큼 세월이 지났다.

▲ 박흥식 사장(좌), ▲정주영 회장(우)

이곳 대저택 2층 응접실, 정주영 회장이 앉아 있던 중앙좌석에서 내다보면 오른 편으로 청와대 기와지붕, 왼쪽으로 현대그룹 계동 사옥이 보이니 풍수지리설이 아닌 보통사람들 안목으로 천하명당이다. 정형순 씨가 이 저택을 인수할 때 유명재벌과 은행에서도 관심을 보였지만 무명의 빌라 사업가가 인수하게 되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으니 정권이 몇 차례 바뀌고 부동산 정책도 냉·온탕을 수십 차례 거듭했으니 대저택의 자산가치도 등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형순 회장은 결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보람인데다가 언제인가 반드시 대한민국의 최고의 명품, 명당 자산으로 거듭나게 될 것으로 굳게 믿기 때문이다.
실로 이곳 저택이야말로 망국 식민시절에는 일본 상권과 대결했던 조선 최고 갑부의 상혼이 깃들어 있고 신생 대한민국이 가난했던 시절에는 산업화를 이끌었던 최고의 상일꾼, 큰 일꾼의 무한 근로정신이 깃든 곳이 아닌가.

▲ 인수 후에도 정주영 회장의 체취가 묻어있는 침실, 응접세트, 휴게실을 그대로 보존하고 벽 그림과 사진들도 그냥 두고있다. <사진=이코노미톡뉴스>

단순 부동산 아닌 기념관, 박물관 성격

새 여주인 정형순 씨는 이곳 저택에서 잠시 쉬는 시간이면 첫 주인 박흥식 사장이 말년에 이 집에서 재기의 몸부림 치고 그 뒤 정주영 회장이 IMF 뒤 재기의 의욕을 불태운 모습을 회상한다.
정 회장은 박흥식, 정주영 두 분의 명성과 업적을 생각하면 이 집이 단순한 부동산 매물로 인식되는 것을 거부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근대화, 산업화의 자산으로 산업과 경제 기념관이나 박물관 성격으로 영구 보존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단순한 부동산 사업가의 손을 떠나 “공공기관이나 현대차그룹이 맡아야 본래의 값어치를 다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렇지만 특정 은행이나 현대차그룹 등의 의사를 타진해 본 적은 없다고 밝힌다.
정형순 씨는 이 집을 인수할 때 박흥식 사장은 알지도 못한 반면 정주영 회장을 너무 존경하여 꿈에 정 회장을 만나 뵙고 성심 기도 끝에 당시 시가 88억원의 절반 값으로 인수했다고 한다. 인수 후에도 정주영 회장의 체취가 묻어있는 침실, 응접세트, 휴게실을 그대로 보존하고 벽 그림과 사진들도 그냥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 회장의 기(氣)가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 언제인가 반드시 나타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정형순 씨가 이 집을 인수하자마자 전 한보그룹 정태수(鄭泰守) 회장이 상당한 프리미엄을 붙여줄 테니 되팔라고 사정했지만 거절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그 대신 정태수 회장이 전세로라도 빌려달라고 졸라 월 2천만원, 3천만원씩 받고 2년간 빌려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태수 회장도 왕년의 왕회장 재운을 인수받지 못했기에 노후까지 해외로 유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저택내부 한켠에는 정주영 회장 관련서들과 기념품들이 장식되어 있다. <사진=이코노미톡뉴스>

때가 되면 산업화기운 새 주인 나타날 것

대지 900평에 이르는 대저택은 정주영 회장의 토목 전문 안목으로 다소 손질됐지만 골격에는 옛 박흥식 사장의 취향이 남아 있다. 또 넓은 정원의 소나무, 벚나무 등 수목의 왕성한 기세와 나무정자 등도 두 분 재벌상이 혼재되어 있는 느낌이다.
정형순 씨는 무엇보다 이곳 지하수가 천하제일이라며 잔디 마당 한 가운데의 지하 수돗물을 마셔보라고 권한다. 집주인의 열성적인 소개 탓인지 실로 물맛이 좋게 느껴진다. 이곳 넓은 정원과 2층 저택이 대낮에는 두 마리 진돗개가 주인을 대행하여 지키고, 정형순 씨는 부대사업 업무가 바빠 ‘세콤’ 자동원격 시스템으로 밖에서 관리한다.
이곳 저택 옆에 붙은 가회한옥체험관이 정형순 씨의 역점사업 중 하나이다. 한식과 한옥 홈스테이 복합 체험관은 내부 장식이나 메뉴가 온통 한국적 전통미와 인정과 맛을 겸비하여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국관광공사가 우수 한옥체험 숙박시설로 인증했다고 소개한다.
정형순 씨는 이토록 가회 저택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면서 이를 산업화, 근대화의 국민적 자산으로 가치를 높여줄 새 주인이 머지않아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노라고 했다.

▲ 벽에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하는 모습의 기념사진이 걸려있다. <사진=이코노미톡뉴스>

조선갑부 박흥식의 친일과 극일

경제풍월 2013년 6월호가 ‘왕회장의 말년 체취’ ‘빌라 여장부 새 주인’ 제목으로 소개했었다. 이때 새 주인 정형순 씨는 땅이나 집터를 보는 안목을 자랑하며 정주영 회장의 저택을 소유하게 된 것만으로 보람을 느낀다는 소감을 강조하며 정 회장의 재운은 차차 승계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었다.
또 같은 달 경제풍월에 ‘일제하의 민족상인’, ‘친일 갑부 박흥식’(朴興植)이란 제목 하에 대저택의 원주인을 소개했었다.
박흥식 사장 이야기는 친일(親日)과 극일(剋日)로 영광과 치욕이 겹친다. 박 사장(평생 회장 칭호를 거부하고 끝내 사장 명함 보유)은 화신, 신신백화점으로 일본자본과 종로상권을 두고 경쟁하면서 일본 총독과는 친해 친일 행세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때 우가키 일본 총독이 화신상회를 직접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반면에 도산 안창호가 일경에 체포, 구속되자 박 사장이 총독에게 직소하여 병보석으로 석방시켜 치료비와 생활비를 지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8.15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공포된 후 반민특위(反民特委) 구속 제1호가 박흥식 사장이다.
박 사장은 미국으로 도피하기 위해 여권까지 준비했었지만 반민특위 조사관이 먼저 들이닥쳐 마포형무소에 구금됐으며 구속 103일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가 형집행 정지로 면책됐다.
당시 반민특위가 가장 앞세운 박 사장의 친일행위는 조선비행기 제작소 설립 및 비행기 헌납이었다. 1943년 박 사장은 안양에 비행기 공장을 설립, 화신상회 직원들 상당수를 겸직시켜 병역면제 길을 터주고 지식인들과 민족진영 유력인사들의 자식 취직 부탁으로 수백명을 채용했다. 이 무렵 일제는 내선일체, 창씨개명, 학병지원 강요 등으로 말기적 현상을 빚으면서 박 사장에게 비행기 헌납을 강요했었다.
생전에 박 사장은 백화점 사업으로 일본 상권과 경쟁하고 비행기 공장을 통해 일제 말기 민족진영 지도자들의 고충을 들어가며 친일과 극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심정을 밝힌 바 있었다.
1932년 3월 4일자 동아일보 사설이 ‘우리에게 직업을 달라’, 3월 24일자 사설은 ‘우리에게 밥을 다오’였다. 이 무렵 대학, 전문대 졸업생 연간 900명 가운데 절반이상, 일본 유학생 400명 가운데 대다수가 실업상태로 일자리가 바늘구멍이었다. 이때 동아일보 사설이 총독부를 향해 실직자가 늘어나고 취업난이 심화된 것이 바로 식민정책의 실패라고 비판하며 ‘조선 내의 모든 기관을 조선청년들에게 개방하라’고 촉구했다.


배병휴 [이코노미톡뉴스 회장]  econotalk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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