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험한 말도 새겨듣고 나니…

[이코노미톡뉴스=金淑 편집위원(김숙 자유기고가)]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당장 짐 싸서 이민이라도 가야 할 형편이다. 보기에도 끔찍하고 입에 올리기에도 소름 돋는 사건사고가 날이면 날마다 줄 서 있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이야 우리네 힘으로는 어쩌지도 못 하는 것이니 접어둠이 마땅해도 그 외에는 다 우리가 저지른 죄 값을 우리가 치러내는, 바보들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 <사진=이코노미톡뉴스DB>

우리의 주변은 오늘도, 지금도 분노하고 경악할 일들이 사방 천지에 굴비 엮듯 엮여있다. 게다가 내성이란 그 방면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느 정도의 경험만 있으면 아무데나 제 멋대로 생기는 탓에, 이제는 세상을 놀라게 할 사건이나 사고에도 끄떡도 안 한다.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는 개탄스러운 현실에 적응력이 뛰어나기를 바랬던 적은 결코 없다. 오히려 원치 않는 기적(?)을 이루어 낸 듯 함이 석연치 않은 심정이다.

며칠 전이었다. 나름대로의 급한 일이 있어 갈 길을 서둘러야 했었다. 그날따라 하필 허리가 시큰거리는데다가 땡볕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게 되었다. 평소 필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거의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라 택시를 타는 것은 무척 오랜만의 일이었다.

필자가 택시 문을 닫으며 도착지를 짧게 말하자 운전자는, 힐끗 바라보고 나서 이내 입을 열었다. 그의 사회에 대한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미 심각한 수위를 넘고도 한참 넘은 상황인 것 같았다. 불만은 계속 쏟아졌다. 잠자코 들어 넘겨주기에 딱히 마땅한 구석은 없었으나 같은 서민의 입장에 처음에는 동조하듯,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여 응대해 주었다.

그러나 말 마디마디 공개처형이다, 총살이다 하는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일상어로 튀어 나옴이 적잖이 놀라웠고 무서울 지경이었다. 어쩌면 그 역시 사회의 부조리를 대책 없이 보아 넘기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면 어려웠고 문제라면 문제였다. 마치 더러운 곳을 다 닦아낸 대걸레를 입에 문 것 같은 거칠고 험한 말에 필자는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두려웠고 무서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정신이 멍하고 어지러웠다.

그렇다 해서 그 게 곧 서울 시민의 보편적 심리는 아닐 것이고 서민의 확실한 잣대 또한 아닐 것이었다. 그 사람의 인성이나 성향의 문제인지, 운전자의 말마따나 바르고 곧게 살아보려 했지만 주변의 부조리가 자기를 악하게 만들었음이 문제인지 답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날, 집에서 그리 먼 길도 아닌 잠실에서 성수까지의 길이 어마어마하게 길게 느껴졌고 풀지 못 한 숙제를 안고 내린 듯 하루 종일 우울했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가 부패했어도, 돈은 있으되 의식 없는 몇 몇 자들이 형편없는 [갑질]을 해 댄다 해도 그런 식의 분노표출이 정상적 방법은 아닐 것이라 여겨졌다.
언젠가 보았던 연극의 끝 부분이 생각난다.
주인공은 세상도, 친구도, 심지어는 부모도 믿을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치닫게 된다. 삶에 대한 모든 의욕을 잃고 철저한 정신적 불구자가 되어 저물어가는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한참을 걸은 후 한 아름이 넘는, 꽤나 튼실한 나무를 보고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래, 이 세상에 믿을 건 너 하나 밖에 없구나......’

주인공은 본능적으로 안도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나무에 등을 기대는 순간 나무가 쓰러진다. 이미 둥치가 썩었던 나무는 제 한 몸 간신히 버티어 서 있을 뿐이었다.
이 쯤 되면 누구라도 울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남기고 간 말에 절실히 공감한다.
영국의 희극배우이자 영화감독이며 제작자인 촬리 체프린은 이렇게 말했었다.
“인생을 멀리에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언뜻 방관자 혹은 기회주의자이기를 부추기려는 말로 잘 못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말의 심오함은, 인생을 관조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행여 지금 슬픔이나 고통을 받고 있다면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위로하는 말이 그럴싸할수록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소나기에 젖는다고, 진흙탕 길을 걷자니 미끄럽고 넘어지기 십상이라고, 푹푹 빠져 들어가 발을 떼기조차 힘들다고 불평만 한다면 무슨 소용 있을까...
소나기가 걷히고 난 후라야 비로소 무지개를 볼 수 있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자태가 함초롬하다고 느낄 수 있음도 바로 그런 까닭에 있다.

▲ 김숙 편집위원(자유기고가)

그냥 그렇게, 관조의 마음으로 살아감이 어떨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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