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유출방지 기업지원이 범죄?

▲ ▲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 주필, 전 논설고문)

[이코노미톡뉴스=이진곤 논객] 문재인 대통령은 약속을 중히 여기는 리더인가? 그는 정직한가? 신의와 정직은 정치리더의 필수덕목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상식인들이 문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그는 대선 후보 적에 ‘5대 인사배제 원칙’을 제시하고 이를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또 ‘제왕적 대통령의 절대적 권한을 조정하고 삼권분립 속에 협치를 도모’한다는 공약도 내놨다. 그런데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두 가지 공약은 외면해 버렸다. △병역면탈 △탈세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위장전입 등 5대 비리를 저지른 사람은 고위공직 인사에서 원천 배제하겠다고 그 자신이 말했다. 직전 정부의 흠결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도덕성을 과시하려고 한 공약이었다면 더더욱 이를 지켰어야 했다.
그런데 그가 지명한 국무위원 후보자들 가운데 많은 수가 이 5대 비리의 전력을 1~2가지, 혹은 그 이상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당연히 야당들은 왜 ‘인사배제 5원칙’ 공약을 지키지 않느냐고 공격했다. 청와대측은 원칙을 천명한 것이었을 뿐 구체적인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며 당당히(?) 맞섰다.

스스로 깨뜨린 인사 배제 원칙

약속을 못 지키게 됐으면 사과부터 할 일이다. 애초에 반드시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없이 표만 노려 공약하는 것은 신의를 경시한 의도적 헛공약이다. 잘못해 놓고도 구구히 핑계만 대면서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은 정직하기를 포기한 행동이다. 게다가 협치를 역설했으면서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야당 의원들의 목소리엔 귀를 막아 버렸다.
문 대통령은 후보자들의 자질 여하 간에 임명을 강행했다. 임명장을 받는 사람들도 아주 당당했다.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가 결국 전비에 대한 여론의 질책을 못 이겨 자진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인사 및 검증 책임자 어느 누구도 국민에게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하지 않았다. 인사청문회를 통과의례로 여긴다는 뜻이겠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의 집중포화를 맞은 김상곤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앞으로 인사청문회를 하는 후배(장관 후보자)들에게 노하우를 좀…”이라는 농담까지 했다. 배석했던 인사들이 일제히 웃었던 모양이다. 언론이 전하기로는 그랬다. “야당이 뭐라고 하건 인사는 내가 하는 것”이라며 비웃어주고 싶었던 것일까?
김 사회부총리는 경기도 교육감시절 비서실장이 수뢰한 돈을 받아 업무추진비로 쓴 전력이 있다. 또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공동의장으로 있을 때 한미동맹 폐지,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거나 동조한 이력이 있다. 이처럼 심한 이념적 편향성을 가진 인사를 문 대통령은 다른 장관도 아닌 교육부 장관으로 발탁했고, 김 부총리는 여론의 따가운 질책에도 아랑곳없이 기어이 임명장을 받아냈다. 협치란 말 뿐이었던 것일까?
안 법무장관 후보자에 이어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다시 자진사퇴의 형식으로 탈락했다. 그렇지만 해군참모총장을 지내고 전역한 후 어느 법무법인 고문으로 있으면서 2년 9개월 동안 9억9천만 원의 자문료를 챙긴 송영무 국방장관은 임명장을 손에 쥐었다. 그 자신도 놀랐다고 할 정도의 고액을 받은데 대해 국회청문위원들이 따지자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세계가 있다”고 말해 충격을 줬던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 때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됐던 안대희 전 대법관은 퇴임 후 과도한 수임료 수입을 올렸다고 해서, 뒤이어 총리 후보 지명을 받았던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출석교회에서의 간증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청문회에도 못 가보고 사퇴해야 했었다. 그처럼 서슬 퍼런 검증의 칼을 들이대던 문재인 대표(당시)의 더불어민주당이 이번엔 후보자들의 방패역할을 자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인들의 도덕성, 정직성이 겨우 그 정도인가. 이 역시 ‘서민은 이해 못할 그런 세계의 일’이라는 것인가.

해명도 사과도 모르는 청와대

문 대통령이 인사를 강행할 수는 있다. 그리고 제도나 협의가 아닌 지시로 당장엔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시간은 가고 지지율은 하락하게 마련이다. 임기가 절반을 넘어설 무렵이 되면 여론의 지지 열기는 냉각될게 뻔하다. 지금은 문 대통령의 말 한마디 마다 박수갈채가 쏟아지지만 임기 말이 가까워질수록 흠잡으려는 눈초리들이 사나워지게 마련이다. 박수를 받았던 바로 그 일이 공격의 빌미가 될 소지도 없지 않다. 임기 초의 분위기에 매몰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달리 없다는 것을 하루라도 빨리 깨달아야 그만큼 훗날의 하산길이 순조로워진다. 누구나 다 아는, 그러나 당사자가 실천하기는 어려운 이치이고 상식이다.
어쨌든 정부 인사와 여타 국정 현안들에 대해 문 대통령은 쾌도난마의 솜씨를 보이고 있다. 너무 자신감에 넘쳐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될 정도로 돌진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서만은 신경이 많이 쓰이는 눈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단죄의 문제다.
탄핵에는 성공했지만 그 선에서 그치면 자칫 박 전 대통령을 권력투쟁 희생자로 만들 우려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저항할 엄두도 못 내고 자포자기해 버렸으니 혁명이고 뭐고 할 필요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데도 ‘촛불혁명’이라고 우겨대자니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들 것이다. 제풀에 쓰러진 사람을 대상으로 ‘혁명’을 했다고 강변하기가 어디 만만한 일이겠는가.
반정(反正)에는 성공했는데 그 명분이 뚜렷하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국정농단 운운하지만 대통령중심제 정치체제 하에서 그 정도의 일은 항다반사로 있을 수 있다. 되레 훗날 역사에 군중의 힘으로 나약한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했다고 기록될 우려가 없지 않다. 당시의 야당과 촛불집회 세력 측이 집요하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징벌을 추진했던 게 그 때문이었을 듯하다.
확실한 죄인, 그것도 중죄인으로 만들어야 그를 축출한 명분이 분명해 진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혐의사실 중 가장 큰 죄라고 여겨지는 뇌물죄를 입증하기가 용이치 않은 분위기다. 유죄까지는 어떻게든 몰아갈 수 있겠지만 중형을 받게 하는 데는 자신이 없다면, 현 정부와 여당으로서는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이겠지만 문 대통령은 계속 ‘촛불혁명’을 강조하고, 탄핵과 기소에 동조했던 여당, 사회단체, 언론들은 박 전 대통령의 여죄를 들춰내기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청와대 참모들도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박 전 대통령의 죄상 찾기에 열성(?)을 다했다는 사실이 청와대 대변인의 ‘민정수석실 문건 발견’ 브리핑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기업 도와주자”는 게 범죄인가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1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정부 당시 민정수석실 문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 11일 전 민정비서관실 공간을 재배치하던 중 캐비닛에서 찾아냈다는 것이다. 발견된 자료는 회의 문건과 검토 자료 등으로 300쪽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는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 -> 기회로 활용.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 경제에 더 기여하도도록 유도 방안 모색”이라는 내용의 메모도 있었다.
박 대변인은 “이들 자료는 소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당초 박영수 특검팀은 전임 정부 민정수석실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무산됐고 법원을 통한 조회 요청도 거부됐다. 하지만 관련 자료들이 발견됨에 따라 이 사본을 검찰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용히 처리해도 될 일을, 그리고 아마도 대부분이 대통령 기록물일 것들을 왜 그처럼 요란스레 공개했을까? 새로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생방송까지 유도해 가며 기자회견을 자청한 게 박 전 대통령의 비리를 부각시키고 그 혐의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통령과 청와대가 관심을 가진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도와야 한다. 그게 정부로서 국적기업에 대한 도리다. 그러면서 국가경제에 더 기여하도록 유도한다고 했다. 사심 개입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이런 관심 표명이 범죄 입증의 증거가 된다고 한다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도대체 무엇일 수 있을까? 국가 내에서 다루고 처리해야 할 문제를 온 세상이 알도록 떠들어서 좋을 건 또 뭔가.
청와대가 해야 할 일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실험·배치를 저지하는 데 모든 지혜와 노력을 쏟아 붓는 것이다. 경제 회생과 민생 안정, 이를 위한 일자리 창출의 과제 또한 머뭇거려서 될 일이 아니다. 과거 정권의 그림자에 흠칫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그만큼 국민의 의심만 키워놓을 뿐이다. 아무 거리낌이 없는 정부라면 오히려 전직 대통령 변호에 나서줘야 하는 것 아닐까? 일련의 정치상황이 훗날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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