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 대량감원 불가피·경방, 해외이전
경총, 고율인상 저지실패 비난 시달려

▲ 지난 28일자 조선일보에 보도된 '최저임금 울분' 기사 신문 스크랩. 전방 조규옥 회장이 "최저임금 16.4% 오르게 되면 회사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며 답답한듯 머리를 감싸고 있다.

[배병휴 회장@이코노미톡뉴스(이톡뉴스)] 최저임금 고율인상이 노동계에게는 투쟁의 ‘전리품’ 성격이지만 경영계는 아우성으로 일파만파이다. 정부가 소상공인, 영세기업의 경우 국민세금으로 임금보전을 약속했지만 못 믿겠다는 반응이다. 지방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 가운데 폐업이 불가피하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또 강성 노조와 늘 힘겨운 협상을 담당해온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왜 고율인상을 방어하지 못했느냐”는 내부의 비판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오죽했으면’ 경방과 전방마저…

최저임금위는 노사대표 및 공익위원 등으로 구성됐지만 공익위원들이 정부안쪽으로 기울어 2018년 적용 최저임금 시급(時給) 기준 7,530원으로 결정했으니 올보다 16.4%의 대폭 인상률이다. 그동안 최저임금 인상률이 매년 가파르게 진행되어 왔지만 16.4%의 인상률은 절대다수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수용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무엇보다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사에다 ‘민족자본’ ‘양반기업’의 이미지를 자랑하는 경방이 최저임금 고속인상을 견딜 수 없어 국내공장 일부를 베트남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발표했다. 경방 김준 회장은 경총이 16.4%의 인상률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해 섭섭하다는 입장으로 경총 탈퇴의사를 언론에 비쳤다.
경방은 일제하에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최고의 일자리로 각광받아 왔으며 국내 증시 상장 제1호 기업의 명예를 간직하고 있다. 이 같은 명문기업이 오죽했으면 베트남으로 이전을 결정했을까.

▲ 경방 김준 회장.

또 경총 창립회장사인 전방㈜ 조규옥 회장마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더 이상 고속인상의 최저임금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600여명의 근로자 감원이 불가피하다고 밝혔으니 경영계 내부의 충격을 대변한 느낌이다.
조 회장은 지난 2005년 전방 회장을 맡은 후 “13년간 한명도 강제 퇴직시킨 적이 없었다”고 말하고 경방, 동일방, 방림방, 충방 등 면방회사들이 모두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때 자신은 “해외로 이전하느니 차라리 공장을 폐쇄하겠다”는 각오였노라고 밝혔다. 그랬던 조 회장이 이제 대량감원이 불가피하다고 선언했으니 최저임금 쇼크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인도에 투자했다가 국내U턴정책 따라 포기

전방은 다른 면방사들이 해외로 이전할 때 국내에 1,300억 원을 투자하여 종업원 500여명을 증원했다고 한다. 또 지난 96년에는 인도에 투자했다가 정부의 해외이전 공장 국내 U턴정책에 호응하여 이를 포기했다고 하니 국내 제조업을 살려야 한다는 신념이었을 것이다. 조 회장은 대규모 자동화시설을 도입하면서 불가피하게 노사합의를 거쳐 250명의 감원에 합의했다가 당시 기획관리실장이던 장남이 급서하자 이를 철회했다는 양반이다.
조 회장은 전방의 1,600여 근로자 가운데 최저임금 적용대상이 37%이나 나머지 63%도 임금을 올려주지 않을 수 없으므로 대량감원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전방 근로자는 80%가 주부사원이며 60대의 고령층도 적지 않다고 하니 한마디로 취약계층을 보살펴 주는 일자리기업이다. 그렇지만 최저임금은 강제규정이라 지키지 않으면 범법자가 되고 마니 대통령의 최저임금 공약이 일자리 창출은 고사하고 실업자를 생산하는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조 회장은 대한방직협회장을 지내고 경총 부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최저임금 급속인상 외에도 ‘탈원전’ 정책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론, 법인세 인상 등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제조업을 경영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으로 비관하고 있다.

▲ 윤보선(좌) 대통령이 경성방직공장을 방문해 시찰했다. (1060년). <사진=국가기록원>

공익위원 ‘거수기 역할’에 경총은 역부족

최저임금 고속인상 파문은 문 대통령의 2020년 1만원 공약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노동계가 이를 ‘즉시시행’토록 집단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촉발됐다고 볼 수 있다. 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복역 중에 있으면서 ‘옥중서신’을 통해 ‘칭기즈칸 속도전’ 식으로 최저임금 1만원을 밀어붙이도록 독려했었다.
올해 최저임금위 최종회의 모습을 보면 중립위치인 공익위원들이 정부의 ‘가이드라인’ 거수기 역할을 한 셈이다. 2020년 시급 1만원 달성을 위해서는 3년간 16.4%씩 인상해야 한다는 계산이 바로 정부의 가이드라인 역할로 나타난 셈이다. 또한 정부는 30인 미만 소상공인과 영세기업 등의 경우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7.4%)을 상회하는 부분만큼 세금으로 보전해 주겠다는 약속으로 사실상 가이드라인 준수를 압박했다고 볼 수 있다.
최저임금 고율인상이 결정된 후 중소기업청 발표에 따르면 소상공인 시장진흥기금 2조원을 4조원으로 늘리고 신용보증지원 규모도 대폭 확대함으로써 임금보전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으로 결국 빚으로 최저임금을 감당하라는 뜻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또 중소기업중앙회는 내년도 시급 7,530원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큰 혜택이 될 뿐 내국인 근로자들은 역차별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에 근무 중인 외국인 근로자는 26만 9,168명으로 올해 총임금 7조 7,215억원이 내년에는 8조 7,967억원으로 1조 752억원이 증가하게 된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기본급 외에 초과근로 수당이 많고 사회보험금 혜택도 받기 때문에 1인당 총임금으로 보면 현 240만원이 내년에는 273만원으로 오르게 된다는 계산이다.
여기에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숙식비가 무료이기 때문에 내국인 근로자들보다 상대적으로 혜택 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6일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부회장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핵심으로 하는 문재인정부 의 일자리 정책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데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경총 반성하라’는 대통령 한마디 숨막혀

강성노조와 힘겨운 협상을 되풀이해온 경총이 최저임금 대폭인상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애매한 지탄에 시달리니 안타까운 모습이다. 공익위원들이 중립을 지키지 않고 정부 가이드라인으로 기울게 되면 경총은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에 앞서 경총은 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화 방침에 따른 고충을 말했다가 ‘융단폭격식’ 비난으로 죽다가 살아남았다. 지난 5월 25일 제226회 경총 조찬포럼에서 김영배 상근부회장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발표이후 민간기업 마저 정규직 전환요구가 빗발쳐 고충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경총이 먼저 반성하라”고 호통 쳤으니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김 부회장이 기겁하지 않고 배길 재간이 있겠는가. 곧이어 경제부총리 출신인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대한민국은 무소불위의 재벌 공화국”이라 규정하고 “재벌이 먼저 반성하라”고 촉구했다. 또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경총을 향해 “사회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라고 지목하고 “비정규직을 나쁜 일자리로 만든 주체”라고 까지 비난했으니 강성노조에 쫓기고 있던 경총이 새 정부 전력의 압박 앞에 숨이나 쉴 수 있겠는가.
이에 경제관료 출신인 박병원 경총회장이 역시 경제관료 출신인 이용섭 일자리위 부위원장에게 반성문 성격의 ‘일자리 정책 협조 서한’을 띄웠으니 결국 대통령의 한마디 이후 순수 민간 경제단체인 경총이 백기를 들고 항복한 꼴 아니고 무엇인가.

▲ 2016년 6월 26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오른쪽)와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함께 최저임급 1만원 인상에 관해서 민주노총과 간담회 시간을 가졌다. <사진=더불어민주당>

회장 기피·사양하는 경총의 운명, 팔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파업투쟁이 심화되기 시작한 1970년 7월, 전경련으로부터 노사문제 전담 단체로 독립, 발족했다. 이 무렵 대한조선공사의 악성분규, 면방업계의 파업투쟁 등으로 노동계와의 협상전문 단체가 절실했다.
경총은 창립과 동시에 노동계와 대화와 협상을 주도할 회장을 맡을 양반이 없어 고민했다. 회장후보로 지목된 오너 회장들 모두가 기피하자 당시 대한방직협회장을 맡고 있던 전방 김용주(金龍周) 회장이 강제추대 됐다. 이 무렵 “노사문제라면 면방업계 문제나 다름없으니 방협회장이 맡아야 한다”고 사실상 강압했었다.
문제는 그 뒤 후임회장이 없어 임기만료 후에도 계속 연임할 수밖에 없었다. 노사문제는 갈수록 악화되고 강성투쟁 논리가 부상하자 김용주 초대회장이 11년 7개월이나 유임할 수밖에 없었다. 참다못해 회장단 회의를 통해 LG그룹 구자경(具滋暻) 회장을 후임으로 추대했지만 총회 당일 어디로 잠적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 구 회장을 설득하러 나선 코오롱 이동찬(李東燦) 회장이 설득실패 책임을 덮어써서 회장을 맡았으니 ‘억지춘향’격이었다.
이동찬 회장의 경우 초대회장보다 더 오랜 15년간이나 장수 근속하며 매년 후임회장 찾기에 골몰해야만 했다. 이 회장은 경총회관을 짓고 노사간 협력의 상징인 ‘보람의 일터’ 대상을 마련한 후 “이젠 정말 짐을 벗어야 할 때”라고 선언하며 “초대회장사인 경방에서 다시 후임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초대회장의 장남인 김창성(金昌星) 전방회장이 후임을 맡았다가 7년여 동안 후임자 물색에 골몰한 후 친분이 쌓인 당시 동양화학 이회림(李會林) 회장의 장남 이수영(李秀永) 회장에게 바통을 넘기고 도망치듯 물러났다.
또 이수영 회장도 임기를 마친 후 후임난에 고심하다 산자부장관, 무협회장 등을 역임한 이희범(李熙範) 회장을 추대하고 물러났다. 이 회장이 사임한 후에는 다시 경총회장 부재라는 공백기를 거쳐 경제관료 출신으로 은행연합회장을 지낸 현 박병원 회장을 추대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그러나 탄핵 대선결과 촛불세력의 지원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서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 관련 불편한 심정 한마디 했다가 죽을 고비를 겪고만 것이다. 경총은 앞으로도 전투적 노조, 귀족노조와의 힘겨운 대화와 협상은 물론 친노동, 친환경 문 정부의 ‘노동존중 사회실현’ 정책 아래 살얼음판 행보로 조심해야 할 운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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