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에도 ‘명예의 전당’
기술경영력으로 삼성 제1주의 실천

▲ 삼성 반도체 신회의 초석,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이 19일 별세했다.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이톡뉴스)] 오늘의 글로벌 초일류 삼성전자의 확장, 성장기를 이끌어 온 최고 유공 경영인 강진구(姜晉求) 회장이 오랜 노환으로 투병하다 지난 19일 하오 별세했다. 삼성전자 CEO로 무려 25년 장수한 고인의 향년은 90세. 고인의 발자취는 생전의 ‘자랑스런 삼성인 상’ 수상, 사후의 ‘삼성 명예의 전당 제1호’로 설명될 수 있다.

가전 3사시대, 전자공학 CEO 강진구

고 강진구 회장이 국내 전자산업 발전과정에 직간접으로 기여한 공적은 비단 삼성전자 발전사를 넘어 국내 전자산업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하여 글로벌 최강자들과 경쟁할 수 있는 오늘이 있기까지 헌신한 제1세대 유공자로 평가된다.
고인은 국내 전자산업 초기 금성사, 대한전선, 삼성전자 등 ‘가전 3사’시대 주역의 한 분이지만 “후발자로 선발자들을 제압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1960~70년대 가전 3사는 금성사(현 LG전자) 박승찬(朴勝璨) 사장, 대한전선 최형규(崔亨奎) 사장, 삼성전자 강진구 사장 등이 3각 구도로 경쟁했다.
박승찬 사장은 서울대 문리대, 최형규 사장은 서울대 상대를 나온 전문경영인으로 명성을 쌓았지만 강진구 사장은 서울대 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기술경영인으로 차별됐다.
고인은 1927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대구사범을 거쳐 6.25 전쟁 기간 중 통역장교로 복무한 후 1957년 서울대 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여 방송인이 됐다. 그 뒤 삼성이 TBC를 설립했을 때 이병철(李秉喆) 회장이 스카웃하여 기술담당 이사를 맡고 조금 뒤 삼성전자 전무이사로 전보되어 CEO가 되어 사장, 회장까지 25년간 삼성전자를 이끌었다.
호암 이병철 회장은 ‘인재경영(人材經營)’ ‘제1주의(第一主義)’에다 부실과 부채가 없는 ‘무패(無敗)경영’을 신조로 삼아 왔다. 강진구 사장을 앞세워 선발 금성사와 대한전선을 제압한 총괄 경영리더십이 이병철 회장에게서 나왔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강진구 회장의 뛰어난 기술경영력도 이병철 회장의 무패, 제1주의 독려로부터 발상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업보국’ 명분 후발로 선발 제압

국내 전자산업은 1958년 금성사가 진공관식 라디오로부터 흑백TV 등 가전제품 국산화를 주도하고 곧이어 대한전선이 참여하여 양강 구도로 출발했다. 당시 금성과 대한은 전선사업, 통신사업에 이어 전자산업까지 팽팽하게 겨룬 맞수로 평가됐다. 그러나 10년 뒤 1969년 삼성이 후발로 참여하면서 가전 3사 시대가 열리며 경쟁판도도 바뀌었다.
당시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은 럭키 구인회(具仁會) 회장과 삼성 이병철 회장이 사돈간이라 특별히 주목을 받았다. 시중 여론도 “삼성이 뒤늦게 전자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병철 회장은 중앙일보 1면 기고문을 통해 당시 세계 산업시장 동향을 설명한 후 첨단기술산업에의 투자가 ‘산업보국’(産業報國)의 성격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진출은 전자산업의 경쟁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이코노TV로 가전시장 경쟁을 촉발시키고 곧이어 생소한 반도체 투자로 바람을 일으켰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재미 전자공학자가 세운 부평의 한국반도체 공장 인수로부터 가시화됐다.
이 무렵 업계 일각에서는 반도체 사업이 시기상조라 삼성전자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을 감당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일부 이 같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나왔다. 이쯤 되자 삼성이 곧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지 않겠느냐는 일부 관측이 있었지만 이병철 회장은 막내사위 정재은(鄭在恩) 사장(현 신세계그룹 고문)을 내세워 포기설을 일축하고 대형투자로 오늘의 세계 초일류를 이룩해 낸 것이다.

대한전선, 대우 거쳐 동부전자로

가전 3사시대의 경쟁체제가 삼성전자의 돌풍으로 격화되자 대한전선이 가전사업부를 대우그룹에 매각하고 물러섰다. 이 무렵 서울역 앞 대우센터로 김우중(金宇中) 회장을 찾아가니 “방금 삼성 이병철 회장께 대한전선 가전사업 부문을 인수하게 된 배경을 설명 드리고 양해를 구했다”고 소개했다. 대우그룹이 스스로 창업한 제조업 사업 하나도 없이 “남의 기업을 인수만 하느냐”는 시중의 평판을 의식해서 한 말이다.
당시 대우는 섬유수출로 시작했다가 기계, 조선, 자동차 부문을 모두 인수하여 삼성, 현대그룹과 같은 반열로 올라섰으며 다시 “미래성장산업으로 지목되는 전자산업마저 인수로 참여하느냐”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대우그룹의 대한전선 가전사업 인수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로부터 가전 3사가 금성, 삼성, 대우 등으로 개편됐지만 오래 가지 못해 대우전자가 경쟁 대열에서 탈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국내 전자산업은 국내외 시장에서 삼성과 LG의 양강 구도로 펼쳐지고 있다. 대우전자의 경우 IMF 험한 파고를 거치면서 경쟁 대열에서 밀려나 지금은 동부전자 계열로 편입됐지만 과거 가전 3사시대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고 강진구 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1960~70년대 이래 한국의 전자산업을 이끌어 온 제1 세대가 이제 다 세상을 떠났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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