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모, 주전자, 막걸리

▲ 1977년, 박정희 대통령과 농부가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김연태 칼럼 @이코노미톡뉴스] 막걸리가 한참 유행하더니 조금은 잠잠해진 듯싶다. 통상 소주 맥주 양주 다음순서에 등장하는 막걸리가 순서를 바꾸면서 앞 순서에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가 양의 위를 여러 개 준비하여 거기다 각각 술을 부어 매달아놓고 시험을 해 보니 양주와 소주를 부은 주머니는 수일 만에 구멍이 뚫렸지만 막걸리를 부어 놓은 것은 구멍이 나지 않았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막걸리는 사람의 위에 영향을 많이 주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막걸리는 양주나 소주처럼 독하지 않다보니 거기 따르는 안주도 간단하다. 물론 잘 삭은 홍어를 이용한 홍탁이나 전주식의 그것처럼 거한차림도 있으나 그저 빈대떡이나 해물파전, 김치 한 조각이나 오이 한쪽에 고추장 찍어 먹는 거로도 충분하다.

흔히 농주 또는 탁주라고도 부르는 막걸리의 제조방법은 전통방식과 요즈음의 대량 생산에 따른 방법이 있는데 전통방식으로 제조되는 막걸리는 구하기가 어렵지만 부산의 동내산성 막걸리가 전통방식에 의해 누룩으로 제조되는 최상의 막걸리라고 TV에 소개 되는 걸 보고 부산에 가면 꼭 한번 찾아가 마셔보고 싶었다.
보통 찹쌀이나 멥쌀로 고두밥을 지어 말린 후 누룩과 섞어 항아리에 담아 물을 붓고 약 일 주일쯤 따뜻한 방에 두면 부글거리며 발효가 되는데 위에 뜨는 동동주를 조심스레 떠내(동동주- 쌀 한말에 보통 대병으로 두병 쯤) 약술로 먹거나 귀한 분께 선물하고 나머지는 물을 더 붓고 막 걸러내어(막 거르다보니 말대로 막걸리라고) 막걸리를 만든다.

이 때 막걸리의 맛을 좌우 하는 것은 누룩이다. 밀로 만드는 누룩은 발효를 위한 것으로 우리가 흔히 ‘밀밭에만 가도 취하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말은 밀이 누룩의 원료인데 누룩이 되기 전 상태인 밀밭에만 가도 취하는 술을 아주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지금은 대량생산이기에 전통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찐 밀가루와 발효제를 섞은 뒤 밀가루와 물을 혼합해 생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동 막걸리를 치지만 지역마다 특별히 제조가 되고 있다.
지금이니까 마음대로 제조가 되지만 어려서 쌀이 귀할 땐 집에서 술을 담는 것을 금하고 세무서원이 단속을 하곤 했다. 뾰쪽한 철제 막대기로 술독을 은신했음직한 짚가리나 두엄 속을 찔러보아 적발하는데 밀주 제조 범으로 걸리면 크게 경을 치기에 단속 나온 낌새가 있으면 숨기기에 급급했다. 쌀이 귀하다보니 공인 된 양조장에서도 밀가루로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76년 무렵에 쌀 막걸리의 시판이 허용되어 남들보다 빨리 그 쌀 막걸리를 구해 먹어보기 위해 애 썼던 생각이 난다.

막걸리는 전통적인 우리 술로 발효과정에서 나오는 수많은 생리 활성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암을 예방하고, 심장질환, 고혈압, 간경변증 등에 좋으며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B, 유산균 등이 많아 혈액순환과 피로물질 제거에도 좋다고 한다. 물론 과음이 아닌 적당량을 마셨을 때의 얘기다. 사실 그보다도 가까운 벗들과 함께 마실 때 생성되는 엔도르핀의 활성은 막걸리 기능의 백미라 하겠다. 이북의 김정일은 고급 양주와 극상의 포도주를 즐겼다고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막걸리를 즐겨했다. 특히 막사이라 하여 막걸리에 사이다를 타서 마셨고, 혹자는 설탕을 타서도 마셨다. 추울 때 찬 막걸리를 마시면 오한과 강단이 따르므로 살짝 데워서도 마시는 데 보통 6~7도인 막걸리도 데우면 빨리 취한다.

집집마다 양은주전자가 있어 아버지의 술심부름을 하며 오면서 마시고 나서 물을 채워서 가면 설마 어린 내가 마신 줄은 모르고 술집 아주머니가 물을 탄줄 알고 아주머니만 욕을 먹곤 했다. 한동안 양은 주전자가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1970~1980년도 쯤 크게 성행하던 막걸리 집이 생맥주를 파는 호프집에 밀려 사양화의 길을 걷다 근래 부활된 막걸리 집에서 대량 사용되기 때문이란다.
예전 막걸리 집(흔히 니나노 집이라 부르던)에서 막걸리는 손님상에 나갈 때 반드시 양은주전자에 담아 나가는데, 양은 주전자는 언제나 찌그러져 있었다. 흔히 술꾼들이 싸우다 찌그러진 걸로 알지만 사실은 찌그러진 만큼 술이 덜 들기 때문이다.

▲ 김연태 ㈜모두그룹 대표(전 한국건설감리협회장)

20세 초반에 고향에서 친구들과 마시던 막걸리 집은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그때 마시던 막걸리의 향수가 그립고, 또 한 주전자 시키면 수십 가지의 안주가 무료로 따라 나오던 전주식의 막걸리 문화도 그립다. 막걸리 얘기를 하다 보니 목이 컬컬해진다. 쌀뜨물과 같이 하얀색이 나는 규격화된 대량 생산품이 아닌 전통적으로 누룩으로 만든 막걸리를 마셔보고 싶다.
반잔 술에 눈물 나고, 한잔 술에 웃음 진다는데 한잔 가득 채운 막걸리 잔으로 함께 브라보를 외쳐보고 싶다. 큰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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