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려던 기업’ 회생
최근 ‘살아있는 경영 교과서’로 재출간

▲ 서두칠 사장의 한국전기초자 경영혁신 이야기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 지금은 잊혀져 가는 김우중(金宇中)시대 대우인(大宇人)이야기. 지금은 공장마저 철거된 한국전기초자를 회생시킨 ‘경영의 신’(神) 이야기가 20년 만에 다시 책으로 나왔다. TV 브라운관용 유리를 생산한 한국전기초자는 회생불능이라 진단됐었지만 대우 출신 서두칠 사장과 실무 책임자였던 최성율 팀장에 의해 최고수준의 우량회사로 거듭났었다.

20년전 경영회생 소중한 교훈

서두칠 사장의 한국전기초자 경영혁신 이야기는 20년 전에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출간됐었다. 도서출판 행복에너지가 절판된 이 책이 지금도 ‘소중한 경영교과서’, ‘희망 메시지’라고 규정, 증보판으로 재출간했다. (2017.7.1.)
한국전기초자 경영혁신 3년 만에 ‘경영의 신’(神)이란 칭호를 받은 서두칠 사장은 1939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나 귀국 후 진주고와 경상대 농업대학을 졸업했다. 첫 일터는 농협중앙회로 출발했다가 대우중공업, 대우전자로 옮겨 대우인이 됐다.
그는 늘 공부하는 삶으로 직장생활 중에 연세대 경영학 석사가 되고 일흔을 넘어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집념의 열성파이다.
1997년 11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한국유리로부터 한국전기초자 경영권을 인수한 후 당시 대우전자 배순훈 회장과 협의 끝에 국내 영업을 총괄하고 있던 서두칠 부사장을 CEO로 파견키로 결정했다. 이에 서 사장은 가방 하나만 챙겨 들고 당일 밤으로 구미공단으로 내려가 현장 경영에 착수했다.
그해 여름 내내 파업으로 찌든 공장의 몰골은 너무 험악하고 캄캄해 보였다. 금융과 원료 공급이 막히고 거래선은 끊어지고 재고는 쌓여만 갔다. 또 유리공장의 심장부문인 제2 공장의 용해로는 불이 꺼지고 말았다.
당시 한국전기초자 노조는 강성으로 유명했다. 갓 부임한 사장에게 노조가 서명을 요구하며 제시한 문건이 ‘고용보장각서’였다. 서 사장은 자신이 서명할 입장이 아니라고 거부했다. “고용보장이란 사장이 아닌 고객이 하는 것”이라고 응답한 후 가시덤불 격인 혁신경영의 길에 나섰다.

‘열린 경영’ 3년, 기적같은 성과

서 사장은 노조가 쉽게 들어주지 않는데도 적극적인 대화와 ‘열린 경영’으로 접근했다. “의심나거든 무엇이건 물어보시라”고 제안하며 “단 한명도 강제로 퇴사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서 사장은 그 대신에 혁신과 구조조정을 강조했다. ①기계, 설비라인을 비롯하여 ②제품 ③금융 ④노사관계 ⑤인력 ⑥기술 ⑦사고방식 등 7가지 구조조정 방침을 제시했다. 이를 설득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과 강행군 대화로 “회사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식을 공유하자”고 촉구했다. 사원 부인들과도 ‘열린 경영’ 대화를 진행했다.
점차 열린 경영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자 일하는 방식, 일하는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추석과 설날에도 임직원이 함께 평상 근무하는 풍토가 조성됐다.
‘열린 경영’ 3년간(1998~2000) 혁신경영 성과가 나무나 놀라웠다. 부채비율 1,114%가 고작 37%로 줄어들었으니 거의 기적이라 할만 했다. 차입금은 3,480억원에서 제로로 바뀌고 연간 경영적자 600억원이 순이익 1,717억원으로 바뀌었다. 이 무렵 영업이익률 35.35%가 전체 상장사 700사 가운데 단연 1위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차세대 초박막 액정유리 사업용으로 사내 유보금 1,800억원을 확보해 놨으니 곧 망하려던 회사의 팔자를 완전히 뜯어고친 상전벽해(桑田碧海)였다.
당시 혁신경영 성과는 한국전기초자 설립 이후 23년간 벌어들인 수익보다 혁신경영 3년 성과가 더 컸다고 비교됐다. 서 사장은 이 같은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서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이는 결코 기적이 아니라 1,600여 임직원들이 하나같이 의지와 열정으로 뭉쳐 이룩해 낸 결실이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서 사장은 그 뒤 IMF 외환위기 여파로 한국전기초자 경영권이 대우에서 일본 아사히글라스로 넘어가자 경영간섭에 반발하여 사임했다. 다시 2002년 동원시스템즈 사장, 부회장, 2008년 이화글로텍 회장으로 스카웃되어 경영회생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4년 12월, 영향력 있는 글로벌 경영인 25인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서 사장을 선정했다.

태평세월 착각 속 강성노조의 77일 파업

한국전기초자는 1974년 5월, 한국유리 최태섭(崔泰涉) 회장이 설립하여 1980년 구미공장을 준공하고 1995년에는 증시에 상장했으며 흑백 및 컬러 TV시대 브라운관용 유리공급 업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996년 기준 TV 브라운관 시장은 1위 일본 NEG(29.6%), 2위, 아사히글라스(25.6%), 3위, 삼성코닝(14.8%), 4위, 한국전기초자(8.1%)의 순으로 당당 4위로 자부했다. 그러나 1997년도 매출액 2,377억원에 차입금 3,500억원, 시설도입용 리스 채무 1,200억원 등 부채가 4,700억원으로 금융비용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이럴 때 제2 공장 용해로의 불은 꺼진 채 노조가 77일간 파업을 강행했으니 태평세월이란 착각 속에 죽기를 각오한 꼴이었다.
당시 노조는 임금인상 8.8%, 상여금 800%에 근로시간 단축 요구안을 제시한 후 찬반투표를 거쳐 86.4%의 찬성률로 파업에 돌입했었다. 사내에는 파업에 반대하는 일부 조업파와 구사파로 갈라져 공방전을 빚었다. 사원 아파트에는 붉은 페인트로 ‘배신자’라는 구호가 나붙고 창문에는 계란세례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 틈에 LG전자, 삼성전자, 오리온 전기 등 주요 거래선이 일본과 구매계약을 맺었다. 이에 구미시와 경북도의회가 나서고 YMCA, 경실련 및 대한노인회마저 파업종식을 호소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당시 김관용 구미시장(현 경북도지사)은 노조원 300여명이 구미시청 광장으로 몰려와 파업사태 해결을 중재코자 압박했던 사실을 밝혔다. 이때 노사 양측을 달래가며 한 가지 문제가 풀리면 금방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되고 극적인 타협에 도달했다 싶으면 새로운 쟁점이 불거져 나와 원점으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다가 막바지에 이르러 노조가 ‘선 조업, 후 교섭’을 선택함으로써 77일 파업이 종식됐지만 결과는 노사 양측이 모두 참담한 실패를 떠안고 말았다. 결국 회사의 경영권은 대우로 넘어가고 구조조정 전도사인 서두칠 사장이 부임하여 전혀 새로운 회사로 뜯어고쳐 초일류 기업으로 회생시켰다는 평가다.

일본으로 넘어가 성공신화마저 소멸

이 무렵 김관용 시장은 설과 추석 등 명절이면 공단 입주기업들을 방문하는 것이 관례였다. 1998년 설날 한국전기초자를 방문했을 때 사장을 비롯한 전 임직원이 태연하게 평상 근무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1999년과 2000년에도 명절 무휴로 계속 근무했다.
언론과 연구소들로부터 한국전기초자의 혁신경영을 평가하는 보도와 보고서가 잇따랐다. 실로 한국전기초자의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과 획기적인 경영회생은 구미공단의 모범사례를 넘어 전국적인 평가모델로 부상했다. 이에 경북도는 2000년도 산업평화 대상을 김철수 한국전기초자 노조위원장에게 수여하고 2001년 대상은 서두칠 사장에게 수여했다.
그렇지만 서 사장의 성공신화는 얼마 뒤 IMF 여파로 회사의 경영권이 일본 측으로 넘어가 공장철거와 함께 소멸됐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전기초자 경영권을 인수한 아사히글라스는 생산량을 줄이고 신기술 개발도 제한하기 시작하여 2001년 7월 서 사장 퇴임과 함께 회사의 비전과 1,600여 직원들의 열정과 의지도 떠나고 말았다.
서두칠 사장의 한국전기초자 경영혁신 이야기는 이미 20년 전에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발간됐지만 그 사이 절판됐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권선복 사장이 비록 세월이 지났지만 망해가던 기업을 되살린 교훈으로 재발간한 것이다.
이 증보판 발간을 통해 당시 서두칠 사장의 혁신경영 현장에서 실무책임자로 보좌했던 최성율 팀장(현 동진산업 사장)은 서 사장이 ‘일본의 경영 신’으로 추앙되는 이나모리 가즈오 보다 더욱 내공(內空) 있는 CEO라고 평가했다. 또 서두칠 사장은 증보판 발간 머리글을 통해 당시 사원과의 대화를 통해 ‘소가 밟아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우답불파’(牛踏不破) 회사를 만들자고 강조하여 실제로 그럴만한 기업을 만들었다고 확신했는데도 아사히글라스 측이 이를 원치 않아 1,600여 한국전기초자인들의 열망을 무산시킨 것 같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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