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권의 대중 친화성 감탄 수준

▲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습. <사진@청와대>

지난달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기념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예상대로 자랑일색이었다. 하긴 막 출범한 정부의 수장이 반성을 말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심한 자화자찬은, 지지자들로서는 듣기 좋을지 모르지만 비판자들로서는 거부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100일 동안에 잘했으면 뭘 얼마나 잘했겠는가.
기자회견이 열린 청와대 영빈관에서는 대중가요 4곡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이날 회견의 사회를 맡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혹시 (기자들이) 긴장할까봐 감성적인 노래를 들려 드리고 있다”고 설명해주었다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회견 후 “기자회견이 무겁고 건조해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노래 가사에 담긴 메시지가 (국민에게)전달되길 바랐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부연설명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니까 ‘순수한 배려’가 아니라 ‘목적의식 뚜렷한 심리조작’이었던 셈이다. 당사자들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 아닌가.

회견 분위기 연출은 탁월했지만

[이진곤 논객 @이코노미톡뉴스] 진보정권의 대중친화성을 앞세운 심리적 접근방식은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말 한마디 한 마디에도 대중의 심리를 자극하고 움직이게 하는 전략을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섭다면 무서운 연출이다. 그 기획자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소속 탁현민 선임행정관이라고 한다. 자신이 출간한 여러 책에서 여성을 심하게 비하하는 표현, 상궤를 벗어나는 성(性) 의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해서 논란이 많았던 인사다. 야당과 여성계뿐만 아니라 여당과 정부의 일각에서도 사퇴 요구가 나왔던 인사가 광복절 기념식, 세월호 피해가족 간담회 등도 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문 대통령 스타일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각계의 격한 비난과 사퇴요구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당사자인 탁 행정관은 여론에 밀린 끝에 7월 1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적당한 때 그만두겠다. 오래 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청와대에 들어왔는데 짐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사과의 말은 없었다. 
탁 행정관은 그 후로도 여전히 청와대에서 건재하다. 문 대통령의 신임이 대단하다는 뜻이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사한 행태를 보였었다면 지금 어떤 비난이 언론의 지면과 화면을 장식할까? 이게 곧 세력정치다. 문재인 정부는 ‘정의’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무 다른데서가 아니라 ‘권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예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중국의 마오쩌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정권을 잡은 마오는 다시 ‘대중’의 힘으로 정적들을 추방했다. 주자파의 손으로 넘어갔던 실권(實權)을 홍위병의 힘으로 되찾은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총구에서 권력이 나온 적이 있다.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 등의 예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제 대중의 힘에 의해 합법정부가 무너지고 집권자가 쫓겨나는 경험도 가지게 됐다. 바로 박근혜 탄핵사태다. 군중의 격렬한 시위가 합법정부를 무너뜨리고 이른바 ‘촛불혁명’ 정부를 성립시켰다. 그 중심에 문 대통령이 있었다. ‘혁명지도자’였던 셈이다. 그런데 취임이후 리더십 행태가 점점 과거 권위주의적 집권자들의 그것을 닮아간다. 탁 행정관에 대한 과보호부터가 그렇다.

이번 취임 100일 기자회견의 또 다른 특징은 ‘자유로운 질의응답’이었다고 청와대측은 강조했다. 윤 국민소통수석은 “원활한 진행을 위해 청와대와 기자단이 질문 주제와 순서만 조율했고 구체적인 답변 방식에 대해서는 사전에 정해진 약속이 없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15명의 기자가 나서서 질문한 내용 중에 대통령이 곤혹스러워할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기자들이 알아서 편한 질문만 한 탓인지 아니면 아직도 허니문 기간이라 여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유로운 질의응답’과는 거리가 있는 회견이었다.

인사 난맥상 따지는 질문 없었다

정말로 아무 제약이 없고 거리낄 필요도 없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등의 재판과 관련해서 질문들이 나왔을 법하다. 재판 중인 사건이어서 대통령이 언급하기 곤란한 문제라 해도 질문까지 못할 일은 아니다. 국민이 궁금해 하는 사안이다. 기자가 이 문제에 먼저 관심을 표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 아닌가.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관련해서도 무난한 질문 답변이 이어졌다. 마치 문 대통령에게 그의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기회를 주려는 듯했다. 국민이 궁금해 하고 걱정하는 것은 이른바 ‘코리아 패싱’ 논란이다. 그런 말이 나오게 된 저간의 사정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문 대통령의 자신감 넘치는 강의만 들었을 뿐이다.

조각인사 과정에 노정된 난맥상에 대해서도 따지고 드는 기자가 없었다.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이 지난달 11일 임명 나흘 만에 자진사퇴했다. 장차관급 인사 과정에서 네 번째의 사퇴였다.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그에 앞서 자진사퇴라는 형식으로 물러났었다.
이쯤 되었으면 이날의 기자회견에서는 ‘인사실패’라는 지적이 나오고, 대통령이 진솔하게 사과나 유감표명을 할 법했다. 그러나 기자들은 묻지 않았고 대통령도 사과하지 않았다. 내각 인사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는 지적은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답변은 명쾌했다.

“현 정부의 인사에 대해서 ‘역대 정권을 통틀어 가장 균형(있는) 인사, 또 (가장 모범적인) 탕평인사, 그리고 (유례없는) 통합적인 인사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들을 국민들은 내려주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괄호 부분은 추측컨대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해서 만들어 넣은 말. 참고한 기사의 작성자가 문장을 안 다듬은 탓일 수도 있다).”
국회 인사청문 보고서 없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사례들에 대한 유감 표명도 없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부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그리고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국회인사청문회에서 난타당하고 청문보고서 채택조차 야당들에 의해 거부당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이들에게 임명장을 주었다.
역대정권에서도 있었던 사례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은 달랐어야 했다. 취임사에서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후보시절엔 ‘공직배제 5대 원칙’을 제시하기도 했다. 역대 정권의 인사난맥상을 비판하면서! 그런데 대다수의 후보자들이 ‘5대 비리’ 가운데 한두 개 혹은 서너 개, 어떤 사람은 5개 모두에 해당되는 흠결을 가진 것으로 주장되고 드러났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오불관언’이라는 듯이 인사를 강행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약속을 너무 쉽게 망각한 것이다.

불꽃 사그라지면 짙은 연기가…

문 대통령은 또 “보수 진보 갈등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라고 다짐했었다. 취임 후 야당대표들을 방문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협치는 끝이었다. 대통령은 이미 야당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지 오랜 인상을 주고 있다. 
독선적 지시형 졸속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문제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것이 ‘탈원전’과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이다. 탈원전과 관련해서 문 대통령은 ‘60년의 시간이 걸리는 장기적 과제’라고 했다. 그렇다면 애초에 ‘탈원전’이라고 못 박을 일이 아니었다. 설계 수명이 다하는 원전을 하나씩 문 닫겠다는 것이라면 그 때의 대통령이 결정하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다. 훗날 원전이 다시 필요해질 경우 잃어버린 시간은 어떻게 벌충할 것인가.

신고리 5,6호기와 관련해서는 공사 계속 여부를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여론을 경청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공론조사’라는 형식으로 국책사업 시행의 가부를 결정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가 선택할 방법이 못된다(세종의 공법(貢法) 여론조사를 흉내 낸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 때는 대의기관도 정당도 없는 왕조시대였다). 게다가 이미 대통령이 5,6호기 백지화를 공약했었고, 취임 후 공사 중단을 지시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론조사를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리라는 것은 물어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혹 대통령이 번의할 명분을 여기서 찾으려 한다면 모르겠거니와 당초의 의지가 변하지 않았다면, 단언컨대 공론조사 결과도 그의 뜻대로 나올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에 불과하다(박 전 대통령은 그나마도 채우지 못했지만…). 포퓰리즘 정치는 예외 없이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대통령직은, 찬사도 독점적으로 받지만 비판 비난 조소도 집중적으로 받는 자리다. 대중심리의 변화는 가늠하기 어렵다. 찬사의 현란한 불꽃이 사그라지면 비난과 조롱의 자욱한 연기가 그 자리를 뒤덮는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래서 자신도 잘 모르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애쓰기엔 임기가 너무 짧다. 5년 동안에 세상을 바꿔놓겠다는 것은 과욕이거나 오만이다. 앞서 걸은 분들의 경험에서 배워 국민을 행복과 평화의 길로 인도하는데 혼신의 노력과 지혜를 다해주길 기대한다. 대중의 환호와 갈채는 빨리 잊을수록 좋다. ‘민주공화’의 원리가 무엇인지, 그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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