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림질 알바로 한문교수 된 ㅈ씨 이야기
이불 뒤집어쓰고 공부… ‘간첩 아니냐’

▲ 宋貞淑(송정숙) 편집위원 (전 장관,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송정숙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칼럼] 한문학과 교수로 정년을 넘긴 ㅈ씨는 특별한 재주를 자랑한다.
옛날 어머니 할머니들께서 다림질을 할 때면 하던 일이다.
입에 물을 가득 머금고 후욱! 뿌리며 빨래 손질을 하던 그런 솜씨다.
그런 다음 숯불 다리미로 빨래를 다리셨었다. 다림질에만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 옷이나 이불 홑이불 같은 것을 푸새해서 손질할 때도 그렇게 하셨다.

다림질 알바로 한문교수 된 ㅈ씨 이야기

그런데 할머니 어머니들께서는 그 솜씨가 아주 능란해서, 우리 아이들은 그것을 좀 따라 해보고 싶어 흉내를 내 보지만 좀처럼 안됐다. 입에 담긴 물이 지레부터 주루룩 쏟아져 버리고 말아서 빨래 위에 화악! 퍼지기는커녕 한곳에 쏟아져서 빨래를 버리기 십상이다.
이런 어머니들의 솜씨는 아주 오랜 훈련 끝에 익혀진 숙련된 폼이어서 보기에 아주 신기할 지경이었다. ㅈ씨가 바로 그런 「입으로 물뿌리기 기교」를 아주 썩 잘 하는 것이다.
남자가 특히 한학을 전공한 대학의 노교수가 그런 솜씨를 뽐낸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그는 이런 솜씨를 어디서 배웠을까?
ㅈ씨는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 서울에 와서 어렵게 공부를 하다가 6.25를 만났고 전란을 겪은 후 다시 서울에 올라와 어렵사리 대학에 들어갔지만 전쟁의 폐허 속에서 그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먹고 살며 고학을 하느라고  헉헉거리며 견뎌야 했다. 전란 이후에는 그나마 시골집의 도움 같은 것은 전혀 기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래서 동대문시장 속에서 백바지를 만드는 공장에 나가 다림질하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했다. 입에다 물을 가득 품고 흰 바지 위에 물을 확 뿜고 다림질을 하는 일이었다. 하루에 수백 장을 다리는 일이었다. 그 일이 국립대학을 다니며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해 주었다. 「입으로 물뿌리기」는 그렇게 익힌 솜씨다.

▲ 시민군들 다수가 군복을 입고 지프차와 군용차량을 타고 있었기에 광주 시민들은 군인과 시민군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불 뒤집어쓰고 공부… ‘간첩 아니냐’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ㅈ씨는 판잣집 창문도 없는 쪽방에 돌아와 그때부터 밤을 지새며 공부를 했다. 전깃불 많이 쓰면 주인에게 욕을 먹으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불빛을 가린 채 몰래 밤새워 공부를 했다.
그런데 하루는 동대문 서에서 형사가 나와서 연행을 해갔다. ㅈ씨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따라 갈 수밖에.
알고 보니 이웃 방에서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한 젊은이가 쪽방에 숨서 살면서 밤이면 불을 몰래 켜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무슨 일인가를  열중해서 하는데 필시 「간첩」인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길로 여러 가지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혐의가 나올 리 없다. ㅈ씨는 간첩이 아니니까. 혐의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조사를 맡은 수사관도 신념이 서지 않았던 듯했다. 밤이 깊도록 조사를 하고는 한 장의 백지와 펜을 내주며
『거기다가 자네가 살아온 지난날을 한번 모두 적어보라. 』
고 했다.
국문과 교수인 ㅈ씨는 문재가 좋았다.
그런 솜씨로 지나온 세월을 기술하자니까 신세도 한탄스럽고 만감이 서렸다. 지치고 서럽기도 한 심정들을 하나 가득 서술해 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수사관에게 바쳤다.
그걸 받아들고 삐걱거리는 회전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읽어 내려가던 수사관이 어느 대목에선가 의자를 똑바로 돌리며 놀라는 얼굴이 되어, 초라한 대학생 ㅈ씨를 쳐다보고 나직이 외쳤다.
『야! 너 어언간(於焉間)이란 한자를 아는구나! 이런 어려운 말투를 한자로 쓰다니…. 한문을 언제 공부한 거냐?』
이런 처지에 끌려와 이런 글을 쓰는 일에 다소 처연해진 ㅈ씨는 그 서술에 다소 진한 서정성이 담겼던 모양이다. 어머니께서 지워주신 햅쌀 두말을 등에 지고 서울의 친척집에 올라오던 시절부터 고생하며 학교 다니고 전쟁을 겪으며 갖은 신고를 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던 중에 「於焉間 歲月은 흘러」 어쩌고 하는 대목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요즘, 집단 트라우마 정신 외상 어쩌나

▲ 5.18 사태시 남파 된 북한군의 체험증언을 기록한 논픽션 ‘ 보랏빛 호수’

『취학 전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 종아리 맞아 가며 천자문 공부를 했습니다.』라는 청년 ㅈ씨의 대답을 듣던 수사관은 책상을 한번 땅 치면서 말했다.
『됐다! 넌 빨갱이 아니다. 할아버지께 종아리 맞아가며 천자문 떼고 서울대학교 다니며 고학하는 네가 간첩일 리가 없어. 돌아가거라. 공부 열심히 해서 어려운 우리나라 위해 많이 봉사해라!』
무엇보다도 「빨갱이의 해꼬지」를 겁내는 일을 집단 트라우마로 지닌 ㅈ씨 같은 세대는 그렇게 살아왔다. 너무 어려웠지만 간난(艱難)과 신고(辛苦)를 등에 지고 몸으로 견디며 오늘을 이뤄왔다. 
첨단 과학을 전공하는 손녀가 할아버지께 한자를 배우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때면 너무 대견하고 행복하다. 마침내 여기까지 이뤄온 공이 스스로 대견하고 고맙다.
그런데 요즘에 이르러 ㅈ씨에게서는 심상치 않은 증후군이 자꾸만 되살아난다.
「於焉間」이란 한 구절만으로도 청년의 사상을 판별하던 식견 있는 수사관들은 밀려나고 오늘의 나라를 일으키는 일에는 기여한바가 거의 없으면서 이 땅을 「보랏빛 호수」로 만드는 일에 서슴지 않는 무리들이 너무 창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잊혀진 줄 알았던 예의 트라우마가 자꾸만 엄습해 오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기운이 다한 노년에 만나는 이 정신적 외상(外傷)의 재발증상이 너무 힘겹다.
『우리 세대에게 이런 한을 안겨주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러면 다음 세대에게는 더욱 안 되는 일이다.』
ㅈ씨의 세대는 오늘도 그렇게 되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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