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고’ 중용 한가닥, 검찰개혁 예고

[박미정 칼럼 @이코노미톡뉴스] 이번 정부는 워낙 ‘혁명적 촛불 덕’으로 태어난 탓인지 대통령이 ‘인재’를 임명하는 방식도 다른 때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아니 ‘전형적인 B형 스타일’인 문재인 대통령이 그의 ‘잠재적 본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희한한(?) 인사들을 발탁해내 국회의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관’에 앉힘으로써 ‘이것이 새 정부다’라는 걸 보여줬다. (잘됐든 못됐든.)

▲ 문무일 검찰총장이 읊은 한시

문재인 인사의 스페셜 무대 연출

청와대에서 진행하는 임명장 수여식도 튀는 장면이 속출했다. 대통령이 ‘장관의 아내’ 혹은 ‘장관의 가족’들에게 정성스런 자세로 꽃다발을 안기는 것도 이전 정부에선 볼 수 없었던 스페셜 무대였다. 어떤 장관 부인은 얼마나 활달한지 장관이 된 남편의 팔짱을 끼지 않고 ‘감히’ 대통령의 팔짱을 끼고 여봐란 듯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엄처시하’를 들킨 듯, 당황해하는 장관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노모를 모시고 ‘상장’받으러 온 학생처럼 자랑스러워 하는듯한 표정으로 등장한 여성 장관도 보였다. 아마도 건국 이래 이런 장면들은 처음일 것이다. 별로 좋아보이진 않았다.

이렇게 ‘스페셜 무대’가 펼쳐지는 문재인 정부의 임명장 수여식에서 최고로 눈길을 끈 사람은 바로 검찰총장 문무일이다. 지난 7월 25일, 임명장을 받으러 가면서 문무일은 애교 많아 보이는 부인의 손을 꼭 잡고 등장했다. 대체로 50대 중후반 사나이들은 그런 공적인 자리에선 와이프의 손을 잡지 않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문무일은 애처가 포즈로 아내의 손을 잡고 들어서서 눈길을 끌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청와대에 사령장 받으러 간 장관이나 검찰총장이 아내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는 얘긴 들어보질 못했다. 더 재밌는 장면은 대통령으로부터 검찰 총장 임명장을 받은 직후에 일어났다. 문 대통령이 다정다감한 어조로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으셨다”고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저에게 개혁을 추진할 기회를 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정말 잘 하겠다”고 화답했다. 여기까지는 뭐 그저 그런 상식적인 응답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문무일은 대만의 저명 학자로 알려진 난화이진(南懷瑾, 1918~2012)의 한시를 읊기 시작했다.

▲ 7월 3일 임명식에서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오른쪽)의 부인이 문재인 대통령의 팔짱을 끼고 있다. <사진@청와대>

하늘 노릇하기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

그 시가 바로 ‘하늘 노릇하기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 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라네. 나그네는 맑기를 바라는데 농부는 비 오기를 바라며 뽕잎 따는 아낙네는 흐린 하늘을 바라네’라는 것이다. 중국 농민들 사이에 불리던 옛 농요를 다듬은 시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서로 바라는 것과 생각하는 게 다른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읊은 것이다. 수천 년 전 중국인들이 ‘정치하는 어려움’을 일찍이 간파하고 시로 썼다는 게 놀랍다.

해석에 따라서는 문 총장이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검찰 개혁 방안과 관련해 청와대와 검찰 조직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은근히 시사한 것으로도 보일 수 있다. 대통령 앞에서 ‘깊이’있는 한시를 주르르 읊는 신임 검찰총장이라니... 건국 이래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 받는 자리에서 ‘한가롭게’ 한시를 읊조린 고위관료는 문무일이 최초이자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르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근혜 정부’시절이었다면 이런 ‘낭만적인 검찰총장’은 상상을 불허했을 것이다. ‘뉘 안전이라고 어디 감히’ 이런 질타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비단 ‘박근혜 시절’뿐만 아니라 그 전 대통령들 앞에서도 이런 ‘마이웨이 식’ 배짱 좋은 검찰 총장은 전무했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도 문무일 총장의 이런 돌출행동에 적잖게 놀랐을 것이다. 대통령 뿐 아니라 그날 그 자리에 배석했던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을 비롯한 참석자들 거의 모두 엄청 놀랐을성싶다. 상식을 뛰어넘은 장면이다. 그렇게 대통령 앞에서 한시를 읊을 정도의 배짱이라면 검찰 총장직을 잘 해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도 역시 광주일고 출신으로 돋보여

하지만 문무일의 이런 ‘예상 밖’ 한시 낭송에 보수와 진보는 제각각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보수는 ‘문재인 대통령을 은밀히 견제하려는 깊은 속뜻’을 읽어냈고 진보는 ‘대통령에 대한 진정한 충성심과 애정’이라는 과도한 해석을 하고 있다. 아무려나 그 깊은 속뜻은 문무일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건 악의는 아니겠지만 ‘대통령 앞’에서 약간 ‘오버’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 ‘시각차이’가 자칫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걸 의식해선지 다음날, 문무일은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게 ‘정치하기의 어려움’을 한시로 ‘화답’한 것이라는 부연 설명을 내놓았다. 그만큼 정가에선 뒷얘기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아닌 게 아니라 종편TV들은 하루 종일 ‘검찰총장의 한시’를 주요 메뉴로 다뤘고 각양각색의 해석들이 난무했었다.

신임 검찰총장은 공교롭게도 대통령과 ‘종씨’인 문씨에다 눈매와 얼굴 분위기가 닮았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곱상한 얼굴과는 달리 목소리는 ‘탁성’으로 대통령과 비슷하다. 그래선지 검찰내부에선 그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12년 만에 ‘전남 광주’출신을 막중한 총장 자리에 앉힘으로써 ‘호남홀대론’은 일단 불식했다. 대통령 앞에서 ‘낭만 한시’를 읊었던 문 총장이 과연 ‘문제 많은’ 검찰을 어떻게 개혁할지 궁금하다.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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