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시정부 건국론’ 으로 건국절 논쟁

▲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3일 서울 용산의 한 극장에서 5· 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영 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고 있다. 배우 송강호와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 부인 브람슈테트 씨도 옆자리에 동석했다. <사진@청와대>

[이진곤 칼럼 @이코노미톡뉴스] 페리클레스는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 황금기를 이끈 정치지도자였다. 아테네 제1시민으로 불렸던 그는 BC461년 집권해서 BC429년 사망 때까지 30여 년간 집권했다. 당시 장군은 매년 선거로 뽑혔는데 그런 조건 속에서도 그 오랜 세월을 권좌에 있을 수 있었다는 데서 그의 탁월한 리더십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웅변가였고 설득의 대가였다. 그리고 직접 민주정치가 행해지던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퓰리스트적인 기질도 남달랐던 것으로 추측할 수가 있다.

그는 언변이 뛰어나 자신의 실패까지도 성공으로 인식시킬 정도였다. 어느 사람이 그의 정적 한 사람에게 “당신은 스스로를 페리클레스보다 강하다고 여기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왜냐하면 설령 내가 그를 때려 눕혔다 해도 페리클레스는 자신이 넘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그걸 사람들이 믿게 하는 재주가 있거든요.”(드니 랭동, 소크라테스와 아테네)

예사로운 행동에도 쏟아지는 찬사

문재인 대통령의 대중적 인기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그가 하는 일, 하는 말마다 성공적이다. 언론들은 다투어 그에게 찬사를 보내기 바쁘다. 어린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았다든가, 초등생이 사인을 받기 위해 가방에서 노트북을 찾는 동안 기다려 주었다는 상식적 행동이 비범한 리더십의 표본으로 상찬되었다. 위로의 포옹, 소탈한 옷차림, 격의 없는 어울림의 모습엔 어김없이 카메라 앵글이 맞춰진다. 언론 보도만 읽고 보노라면 말 그대로 ‘세상에 없는 대통령’이다.

영화를 보면서 흘리는 그의 눈물도 대중의 정서를 감동으로 뒤흔든다. 바로 지난달 그는 영화 ‘택시 운전사’를 관람하고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영화와 눈물’은 자주 기사화됐다. ‘변호인’ ‘연평해전’ ‘국제시장’ 등이 그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광해-왕이 된 남자’를 본 다음엔 펑펑 울었다고 전해졌다. 아마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렸을 것이다. 사실 ‘눈물 정치’의 원조(?)는 노 전 대통령이라 할만하다.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2002년 대선 때의 TV광고카피다. 이 한 마디가 아마도 그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대중에겐 위로와 감동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나 노 전 대통령은 거기에 적절히 부응했다. 적어도 이 점에서 그들은 타고난 대중 정치스타다. 그러다보니 분명히 잘못한 일 같은데도 오히려 잘했다는 박수를 받는다. 그는 정부 해당부처가 장기간에 걸쳐 진지하게 논의해서 결정하거나, 국회의 논의 또는 심의를 거쳐 승인되어야 할 사안들을 지시하나로 처리하는 행태를 계속 보이고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4대강 6개보 개방, 고리원전 1호기 영구 폐쇄 및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 지시, 공무원 등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이 대통령의 지시만으로 시행되고 있다.

포퓰리즘의 굴레 스스로 쓰는가

이야말로 독선 독단 독주정치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비판은커녕 찬사를 보낸다.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 시에 이러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렸더라면 지금 진행 중인 재판에 직권남용, 관련법 위반 등의 혐의가 대거 추가되었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경우는 오히려 박수를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설득력이나 웅변술이 뛰어나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오히려 어눌한 편이고 대단히 논리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진보좌파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새 권력자의 서슬에 주눅 든 탓일 개연성이 높다. 게다가 대다수 기성 언론들이 문재인 정권 성립에 적극 기여했다는 점도 한 몫 한다. 그 때문에 언론들은 문재인 정권을 거들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젊은 기자들의 정서적 좌경화 경향도 반영됐을 법하다.
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이러한 사회적 기류 혹은 분위기를 최대한 이용하는 행보를 드러내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국내에서는 물론이려니와 국외에서도 자신의 등장이 촛불혁명의 결과임을 인식시키기에 열심이다. 역사상 헌법절차에 따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와 그 결과가 ‘혁명’으로 정의되고 정리된 예는 없다. 혁명은, 말하자면 기존의 국가운영 체계가 심대한 과오를 노정함으로써 이를 군대나 민중의 힘으로 폐지하고 새로운 헌법적 질서와 체계를 확립하는 것을 말한다. 촛불집회로 적폐세력(문 대통령 식 표현으로는)을 몰아내고 새 정부를 구성했으니 혁명이라고 할 만하지 않느냐고 반박할 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건 혁명이 아니라 선거제도 그 자체의 의의다. 정례적 선거가 바로 국가운영주체에 대한 평가와 심판을 위해 마련된 제도 아닌가.

그래도 억지로 혁명이라고 하려면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은 41.4%에 불과했다. 나머지 60%에 가까운 유권자가 그를 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머쓱해진 자칭 ‘혁명세력’측은 여론조사 지지도가 80%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여론 지지율이라는 것이 정권 출범 초기에는 높게 마련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서서히 떨어지게 돼 있다. 문 대통령을 제외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권 초기에 가장 높은 여론 지지율을 자랑했다. 한국갤럽의 조사결과 김 전 대통령은 임기 1년차 1분기에 71%, 2분기에 83%, 3분기에 83%, 4분기에 5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매년 4분기 기준) 2년차가 되면 36%로 떨어지고 3년차엔 32%, 4년차엔 28% 하는 식으로 급락하다가 5년차 마지막 분기엔 6%라는 참담한 수치를 보였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힌 때문이었다. 5년차 4분기 지지율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역대 최고의 성적을 보였다. 그런데 그게 27%였다. 단지 27%!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임기 초 여론 지지율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마상에서 긴 칼을 휘두르며 구악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취임직전 자신과 가족의 재산을 공개함으로써 공직자 등록재산 공개의 제도화를 이끌었다. 이 결과로 전·현직 국회의장 2명이 정계를 은퇴하거나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등 공직사회에 부패척결의 태풍이 몰아쳤다. 그는 또 군의 사조직 하나회를 해체하고 숙군 작업을 단행했다. 금융실명제는 금융부문의 혁명적 조치였다. 신경제정책도 발표됐고 이른바 역사바로세우기에도 시동이 걸렸다.

이념논쟁은 대통령의 늪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훗날 두고두고 김 전 대통령에게 짐이 되었다. 과도하게 대중적 요구에 부응해가려는 욕구가 상시적 사정(司正)정국을 초래했고 국민 사이에 개혁피로증을 유발했다. 충격요법의 효과는 지속되지 않는다. 임기 2년차 이후 여론 지지율은 큰 폭으로 떨어졌고 상대적으로 인기퇴조의 양상은 크게 부풀어 보였다. 국민들이 기억하고 있듯이 임기 5년차의 여론 지지율은 참담할 지경에 이르렀다. 독선·독단·독주, 즉 3독정치의 결과였다.

김 전 대통령이 ‘최초의 문민 대통령’이라는 스스로의 네이밍에 취했던 것처럼 문 대통령도 ‘촛불혁명’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그 덕분에 대중(특히 진보좌파세력)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포퓰리즘은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미 과중한 짐을 스스로 지는 경향을 노출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등을 약속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는 이미 진행 중이다. 전임 대통령을 탄핵으로도 모자라 형사법정에 세웠지만 그래도 ‘적폐 청산’에 부족하다는 뜻이겠다. 자신을 지지하는 대중의 요구에 즉각 응답하는 포퓰리즘정치(그게 못마땅하다면 대중친화적 정치라고 하든지)가 맹렬히 가속되고 있는 것이다.

징벌적인 ‘청산’작업과 함께 이념적 ‘청산’작업도 이미 깊숙이 진행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정책이 보여주듯 정부가 경제를 주도하겠다는 게 바로 전형적 좌파정책이다. 공무원과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81만개 늘리겠다는 실업대책 또한 기세 좋게 추진 중이다. 건강보험 급여 대상을 대폭 늘리는 방안도 문 대통령이 육성으로 제시했다. 
여기에 더해 문 대통령은 역사 문제에까지 보수진영과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건국절 논쟁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지난달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오찬을 나누며 “2년 뒤인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라고 단정했다. 좌파적인 시각과 인식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제2의 ‘노무현 시대’가 막 시작되었다. 대통령이 주도하는 이념논쟁은 필연적으로 국민을 분열시킨다.

▲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 주필, 전 논설고문)

노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문 대통령 또한 논쟁의 늪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걱정스럽다. 그간 운동권이 주장해 왔던 구시대 좌파적 이념체계와 질서는 절대로 재현되지 않는다. 끝없는 논쟁과 갈등만 초래하고 증폭시킬 뿐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역사가 70년쯤에 이른 나라다. 국민은 파뉘르주의 양떼가 아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