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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일 칼럼-《노틀담》공사 182년] 프랑스역사의 단골무대8.25기념행사… 유비무환 안보교훈
  • 김무일 전 주프랑스 국방무관
  • 승인 2017.09.0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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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톡뉴스 김무일 칼럼-파리1대학 국제정치학박사/(前)한전KDN(주)상임감사/(前)주 프랑스국방무관] 오늘날 파리관광 필수코스의 영순위인 파리의 상징,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의 가톨릭 대주교가 위치하고 있는 천주교의 본부이다. 이 대성당은 파리의 발상지인 세느강 한 가운데 시떼(Cite)라고 부르는 섬 한가운데의 로마인들 이전에 있었던 기독교 사원 터에 당시의 주교인 모리스 드 쉴리(Maurice de Suilly)의 희망에 따라서 1163년에 건립되었다.

▲ 영화에 빈번히 등장하는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 우측면. <사진@필자제공>

대성당 착공서 준공까지 182년 소요

처음에는 성당의 성가대를 중심으로 건축하기 시작하였으며 점진적으로 중앙 홀 부분으로 확장하였고 1200년도에는 에띠드 드 쉴리(Etudes de Sully) 주교에 의하여 건물 정면으로 확대하였고 1250년에는 건물의 종탑이 완성되었다. 그 뒤 1345년에 이 대성당의 공사가 완성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에 시작부터 준공까지 182년이 걸렸다고 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의 역사적인 사건의 단골무대였다. 1455년에는 동정녀 쟌느 다르크(Jeanne d’Arc)를 화형 시켰던 지난날의 잘못된 종교재판에 대한 명예회복 재판이 개최되어 성녀(聖女)로 부활하게 하였고, 1804년 12월 2일에는 나폴레옹 황제 1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구국 영웅 드골(de Gaulle) 장군과 부하장병들이 파리해방 후 맨 먼저 해방의 미사를 올리기도 하였던 역사적으로 중요한 행사시에는 항상 맨 처음으로 미사를 올리는 성소(聖所)이다. 건물정면에는 높이 70m 에 달하는 두 개의 종탑이 있으며, 남쪽 탑에는 무게 13톤에 달하는 종이 걸려있고, 북쪽 탑 옆에는 386개의 계단을 통하여 성당꼭대기에 올라 갈수 있도록 하였다. 

성당내부는 길이 130m, 넓이 50m, 높이 35m가 되며, 9,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성당내부의 오른쪽 작은 예배당부근에 성당의 보물들을 보관하는 보물보관소가 있으며, 여기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머리에 쓰고 있었던 실물 가시면류관, 십자가의 일부분, 못 등이 전시되어있다. 국가적인 중요한 행사는 항상 이 성당의 미사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으며, 국가의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되어있다.

선진국 시민들의 문화재보호 의식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인 1940년 6월 프랑스 정부는 독일의 침공으로부터 세계적 문화도시인 파리가 시가전 등으로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파리를 무방비도시로 선포하고 보르도(Bordeaux)로 철수하였다. 파리의 중심가에 있는 호텔 르 뫼리스(Le Meuris)는 매우 유서 깊은 호텔이다. 영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의 무대가 되기도 했지만, 1944년 8월, 독일 점령 당시 독일의 파리점령군사령부로 사용되고 있었던 곳이다.

당시 프랑스내의 지하 레지스탕스(Resistance : 프랑스 내 항독저항세력)는 봉기하여 내부로부터 파리를 해방시킬 준비가 끝나고 있었으며, 패튼(Patton) 장군은 미군의 영광을 위하여 파리입성을 원했다. 그러나 파리는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였기 때문에 연합군 사령관 아이젠하워(Eisenhower) 장군은 그가 지휘하는 프랑스 부대가 파리를 해방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북아프리카와 노르망디(Normandie)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싸웠던 프랑스 제2기갑사단이 영광의 부대로 선정되었다. 파리의 서쪽과 남쪽 교외에서 독일군의 저항을 돌파한 보병 전투부대 탱크가 8월 25일 드디어 파리에 입성해 전략적 요충지인 개선문, 국방부, 시청을 점령했다.

독일군의 파리점령군 사령관 폰 콜티즈 (Von Choltitz) 중장은 다리를 폭파하고 주요 공공건물을 파괴하라는 히틀러(Hitler)의 지령을 어기고 파리를 파괴하지 않았다. 1944년 8월 23일 히틀러가 폰 콜티즈 장군에게 내린 명령은 “파리를 적의 손에 넘겨주든지 말든지, 그게 안 된다면..잿더미로 만들어버려라” 였다. 히틀러는 “만일 파리가 연합군에게 점령되면 독일군이 후퇴할 때 도시의 모든 차량, 기념물 및 주요 건물들을 즉각 폭파하라”고 명령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파리가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는 프랑스군 사단장인 르끄레르끄(Leclerc) 장군에게 파리를 고스란히 넘겨주었으며, 그 휘하의 17,000여명 독일군은 항복하였다. 샤흘르 드골(Charles de Gaulle) 장군과 그의 병사들은 개선문에서 부터 노트르담 대성당까지 행진하여 감사기도와 미사를 드렸다.

1944년 8월 26일, 파리 시민들은 해방에 환호했다. 파리는 4년간 독일군 점령하에 있었으며, 독일군이 노르망디에서 후퇴하자 해방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파리 전체를 파괴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파리를 구한 콜티츠 장군이었지만, 연합군이 파리에 진격한 후 프랑스 시민들은 냉담했다.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항복한 콜티츠 장군을 과격한 군중은 침을 내뱉고, 머리를 낚아채어 마구 끌고 다니기까지 했다. 그러나 다음 해에는 그의 공적이 인정되어 파리시로부터 감사장이 수여되었다. 이렇듯 인류의 문화재인 파리가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시가전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무방비도시선언’과 함께 자의적으로 철수한 프랑스국민들이나 히틀러의 파리 파괴명령에도 불구하고 이 명령을 준수하지 않고 프랑스군에게 항복하면서 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한 독일군 사령관과 같은 선진국 국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보호의식은 철저하다. 오늘날 프랑스는 히틀러의 명령을 거역하며 파리를 폭파하지 않은 독일의 파리점령군 사령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가 변함없이 ‘세계 최고의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 전면. <사진@Notre-Dame 공식 인스타그램>

파리해방 기념행사의 교훈

해마다 8월 25일 거행되는 파리해방 기념식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추모미사로부터 시작이 되며, 이행사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시사점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유비무환(有備無患), 국가안보 대비태세 확립의 중요성이다.
프랑스는 해마다 8·25 파리해방 기념행사를 성대히 거행한다. 그들이 파리해방 기념행사를 거행하는 이유는 그들을 대신해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에 대해 감사를 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순국선열들이 오늘을 사는 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국가가 힘이 없어서 침략 당한 히틀러 독재의 식민지 강점의 교훈을 잊지 말라는 통한(痛恨)의 당부일 것이다.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뼈아픈 엄숙한 경고일 것이다.

8·15광복 72주년의 8월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유비(有備)면 무환(無患)이요, 무비면 유환임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되새기면서, 우리 사회에 올바른 국방안보의식과 나라사랑정신이 정착되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기억해야 한다. 8·15가 무엇이며, 일제의 식민지배가 무엇이고 어떠한 것인가를 우리는 되새겨야 하는 자성(自省)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지난날과 같은 36년의 일제식민지참화(慘禍)가 이 땅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국력을 다져야 한다.

둘째, 귀중한 우리문화재의 보호와 중요성을 재인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나라들이 왜 문화재를 아끼고 보전하려고 할까? 그것은 문화재가 바로 그들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재를 보면서 그들은 그들의 모습을 재확인한다. 문화재 속에서 역사를 되새기고 자기의 정체성을 되찾는다. 또한 문화재는 우리에게 지혜로운 교훈과 방향타가 되어준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슬기요, ‘민족의 혈액형’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바로 우리의 체질과 같은 것이다. 즉, 민족의 성격, 민족의 인격, 곧 민족성의 소산인 것이다.

문화국가, 문화국민, 문화민족이라는 칭호는 비록 현실적으로는 조금 불우하고 저열한 경제 수준에 있더라도 그들의 문화적 기반, 곧 정신적 자산 평가가 높은 순위에 있음을 근거로 한다. 문화재는 박물관에 진열되거나 옛 문화유물로 대접받는 것 정도로 알아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재는 유형이건 무형이건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오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생겨난 그 유산들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조상의 숨결이요, 철학이므로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재산이다. 개발에 밀려서 문화재가 흐트러지고 훼손 받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외국은 문화재 유적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 개발을 유보한다. 또 10km의 우회도로를 만들면서까지 민족 자산의 보호에 적극적이다.
우리는 지금 너무 가시적인 유용성과 물질적 풍요의 꿈만을 추구해 온 나머지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주춧돌들을 무시하여 왔다. 건강한 사회는 튼튼한 정신적 자산의 영양분에 뿌리가 내려진 사회인 것이다.

꽃을 못 피우는 나무가 잘려 나가듯 문화와 전통을 잃은 민족도 사라져 버린 역사를 우리는 보고 있다. 우리의 공동체를 지탱해 주는 정신적 기반인 정신적 자산을 늘리고 국민의 질 높은 성숙한 의식을 위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문화재를 철저히 보호하는 교육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김무일 전 주프랑스 국방무관  econotalki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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