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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모 칼럼-박정희 전 대통령] 대한민국의 중심탄신 100주년의 온갖 상념들…
  • 김광모 전 청와대 중화학기획단 부단장
  • 승인 2017.09.0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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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 11월 14일 생이니까 금년이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필자가 아는 바로는 현재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행사를 벌이고 있는 곳은 박정희 기념재단이 월간 조선과 공동으로 “근대화의 국부 박정희를 다시 본다”라는 제목으로 매월 개최하는 박정희 시민 강좌가 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셨던 한 사람으로 부끄럽다.

▲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 금호공업고등학교를 시찰하고 있는 모습(1975년). <사진@국가기록원>

[김광모 칼럼(전 청와대 중화학기획단 부단장)@이코노미톡뉴스] 어떡하다가 시대가 바뀌어 박정희 대통령 말만 나오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폄훼하려고 한다. 구미시가 신청한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을 승인한 것을 우정사업본부가 취소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고 있는 대통령의 탄신기념우표를 취소하는 행태는 어디서 배웠는가. 이것도 적폐인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정권에서 동서화합의 견지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비를 국회가 만장일치로 정부 예산으로 계상한 것을 노무현 정부가 들어와서 취소하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기념재단은 소송을 제기하여 1심(2005.12)과 2심(2008.1)을 거쳐 대법원에서 승소하여 국고보조금 208억과 기부금 500억원으로 13년의 우여곡절 끝에 2012년 2월 개관하였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의 치적을 기념하는 전당을 건설하는 아시아문화궁전법(아문법)은 사업비 5조 8천억원(국가보조 8천억)과 연간 운영비 800억원을 매년 국가가 지원하기로 국회에서 통과하였다. 비교하여 보면 통분을 금할 수 없다.

한국의 60년대 이전의 역사

우리 역사에 보릿고개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우리 역사상 가장 비참한 말이다.
이것은 60년대 이전에 우리 농가에서 봄이 되면 묵은 양식이 다 떨어져서 보리가 나올 때까지 먹을 것이 없어 굶을 지경에 이른다는 얘기다.
오늘만 못 먹는 것이 아니고 내일도 못 먹는다.
나만 못 먹는 것이 아니고 너도 나도 어린 자식도 다 못 먹는다. 양식을 꾸어 줄 사람도 여기도 없고 저기도 없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해결한다. 보리 추수가 되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내년에도 다음해도 계속된다.

이것이 농촌의 실정이며 도시에 나와도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것이 이 당시 나라 전체의 참상이다. 국민 모두가 빈곤과 기아 그리고 패배와 좌절에 빠져있었다.
1910년에서부터 1945년 까지 36년간의 일본의 착취와 악랄한 식민지에서 1945년 해방은 되었으나 국토의 남북으로 분단, 해방 후의 혼돈 속에서 남북이 이데올로기가 다른 국가형성, 1950~1953년의 동족상잔의 6.25 동란과 전후 피해와 안정되지 않은 정부 등으로 악조건이란 악조건은 다 겹쳤다.
해방 후 남한은 미국으로부터 30억불의 식량 원조와 20억불의 군사원조로 경제를 겨우 유지했었다.
61년 말 현재 국민소득은 82불로서 UN등재 국가 중 201위에 해당되어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보다 빈곤국가였다.

한국은 36년간 지배했던 일본 외무성의 한국 경제의 문서에 한국 경제는 ①인구과잉 ②자원부족 ③공업의 미발전 ④군비의 압력 ⑤정치의 균열 ⑥민족자본 빈약 ⑦불안한 행정능력 등 문제점을 안고 있어서 경제성장과 자립을 이룩하기는 절망적이라고 비판했다.
이것이 36년간의 일제식민지 그리고 해방 후 17년간 계 53년의 한국의 비극이었다. 이 시기가 단군시조가 한반도에 나라를 만든 이래 가장 못사는 기간이었다.

▲ 1973년 일선지구를 시찰하며 무기를 보는 박정희 대통령. <사진@국가기록원>

박정희 시대의 개막

50년대 말의 극도의 혼란 속에서 1961년 5월 16일에 박정희 장군이 주도하는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61년 당시의 장면 내각 정부의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씨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평을 했다.
혁명위원회는 6개항으로 된 혁명공약을 발표했는데 1,2 항에서 군사혁명위원회는 반공을 국시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UN헌장을 수호한다고 발표함으로서 국내외를 안심시키고 4항에서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해결하고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고 했다.

이리하여 군사정부는 국민의 빈곤에의 탈피와 기아에서 해방을 지상 목표로 하고 경제개발에 착수했다. 경제 목표를 공업입국과 수출 제일주의에 두고 이를 성공적으로 경제개발을 완수하였다.
제1, 2차 5개년 계획기간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1차기간 8.5%에서 2차기간 11.4%를 이루었는데 10년간 1975년 불변 가격으로 8.8%의 성장을 달성하였다.
수출도 1961년 4천만불에 1964년 1억불을 거쳐 1970년에 10억 달러를 달성하여 연평균 41.3%의 경이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

이리하여 50년대 말까지 절망감에 빠져있던 우리 민족은 우리들의 실적에 우리 자신들이 놀랐으며 국제적으로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기간 국민적 자신감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슬로건 아래 패배와 좌절에서 앞날을 찾아 70년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박정희의 중화학 선언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건설은 대통령의 정책선언으로 발진되었다.
73년 1월 12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정책선언을 하였다.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국민 여러분의 경제에 관한 정책선언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공업은 이제 바야흐로 중화학공업 시대에 들어갔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부터 중화학공업 육성의 시책에 중점을 두는 중화학공업정책을 선언합니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하여 정책선언으로 추진한 것은 중화학 밖에 없다.
그러니까 중화학을 처음부터 지상 최대의 과제로 국운을 걸고 착수되었다.
중화학공업정책의 목표는 80년대 초에 100억불 수출, 1인당 GNP 1,000불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수출 목표를 달성하려면 중화학공업을 해야 하고 중화학공업을 하게 되면 자연히 목표가 달성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용어로는 100억불 수출이 목표이고 중화학공업정책이 수단인 것이다.
1972년 말 한국의 경제지표가 수출 16.7억불, GNP가 318불 선이었으니까 얼마나 대담한 정책인지 알 수 있다.
경제정책 책임부서인 EPB는 제 3,4,5개년 계획을 작성하여 신경제전망 계획을 발표하였는데 3차계획의 목표연도인 1976년에 35억불, 4차 계획에서는 1981년에 53억 달러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중화정책에 대하여 정부의 재경당국과 경제학자 들을 비롯하여 모두가 반대했다.
요지는 무모하다는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가 직접 한다고 하면서 경제비서실(오원철)에서 맡도록 하고 청와대의 부속기관으로 중화학기획단을 설립하여 우진 control tower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중화학공업 정책의 이유는 다음 세 가지를 요약 할 수 있다.

첫째 경제개발의 도약(Take off)이다.
EPB에서 작성한 장기계획 53억불로서는 대한민국이 언제 선진국이 될지 모르는 평범한 계획이었다.
70년대에 도약하지 않고는 언제 낙방할지도 모르는 우려성이 있었다. 박대통령의 장기 비전인 것이다.
둘째로 한국의 제1,2차 5개년 계획에 의한 경제개발은 경공업에 국한되어 있었다.
공업구조상의 견지에서도 중화학공업으로 upgrade시키지 않으면 이 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었다.
셋째로 노동집약, 조립산업만 가지고는 한계에 도달했다. 저임금의 후진 국가와 임금면에서 경쟁할 수 없으므로 후진국과의 경쟁이 없는 부가가치가 높은 중화학공업으로 진출하는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넷째로 방위산업 육성이다.
71년 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병기의 시제에 착수하였으나 본격적인 양산 추진을 위하여는 중화학의 도움이 필요했다.

중화학공업 추진의 효과와 의의

1. 리더의 비전과 추진력의 결정체 :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6개월의 재임기간 중 10년간의 장기계획으로 100년 앞을 내다 본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만들어 낸 최고의 작품이다.
강력한 지도자와 안정된 정부 없이는 수행이 불가능하다.
한국식 모델에 의하여 추진된 최고의 걸작품이다.
2. 중화학공업목표 조기 달성 : 1981년도 수출목표 100억불을 77년도 조기에 달성하고 실제로 81년도에는 172억 1,400만 달러를 달성하였다. 당초의 EPB인 53억불 보다는 3배 이상의 수출을 기록하였다.
3. 중화학과 병행하여 추진한 업종 : 일국의 경제계획에서 어떤 정책을 수행함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중화학 공업이라는 전대미문의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동시 또는 병행하여 추진한 업종 중 중요한 것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①방위산업 ②기술인력 양성계획 ③과학기술계획 등이라고 할 수 있다.
4. 산업단지의 효율적 이용 : 산업단지는 착수시 부터 결정 공고하여 효과적인 단지관리를 하였다. 4대강 상류에는 공장건설을 방지하였으며 전자공업을 제외하고는 도무 항만이 있는 임해공업단지로 하였다.
5. 법적 체제 완전 구축 : 정부조직법(2조2항)에 의하여 중화학기획단 설립을 하였으며 자금 조달을 위한 국민투자 기금법 그리고 산업기지 조성을 위한 산업기지공사법과 6개업종에 대한 육성법을 제정하였다.
6. 국민총화의 결실 : 관 계획 민간 실천의 체제로 박정희 영도아래 국민총화체제를 이루어 추진하였다.
이상과 같이 중화학공업은 공업구조의 완성을 가져오며 수요의 폭이 넓고 부가가치가 높으며 후진국이 쉽사리 따라올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중화학공업은 우리 경제가 봉착한 어려움을 타개하고 국가발전의 장기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세계역사에 길이 빛나는 업적

대한민국은 세계2차대전 이후 유일의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국가가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8년 6개월의 재임기간에 최빈국에서 경제개발을 시작하여 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을 건설하여 선진조국 건설을 위한 굳건한 반석을 구축하였다.
유럽 선진제국들이 18세기 중반의 산업혁명 이래 200년에 걸쳐 산업국가가 되었지만 대한민국은 50년의 기간에 이루어 낸 기적을 만들었다.
모든 세계인이 대한민국의 경제개발을 부러워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을 치하한다.
대한민국의 경제위상을 살펴보면 GDP상 10위권이며 1조 달러를 넘는 무역고는 세계7위의 국가이며 세계5위의 자랑스러운 공업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우리 국민이 이룩한 업적에 대하여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로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이했다.

▲ 김광모 전 청와대 중화학 기획단 부단장

대다수의 경제평론가는 문재인 정부에서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임시직 해결, 기초임금 인상, 건강보험, 기초연금인상 등 연달아 발표되고 있는 복지 확대 정책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남이 벌어들인 돈 가지고 인심 쓰는 격이다. 포퓰리즘 일변도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재정이 부담할 수 없는 포퓰리즘에 의한 복지정책은 후유증을 가져온다. 선심 정책으로 인기는 오래가지만 경제는 멍든다. 우루과이나 과거 PIGS국가들이 과도한 복지정책 때문에 고난을 겪거나 정권이 붕괴되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당면과제는 성장이다.
복지는 늦출 수 있지만 성장은 늦출 수 없다. 성장이 있는 곳에 참다운 복지가 있다.


김광모 전 청와대 중화학기획단 부단장  econotalki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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