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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새로운 수장 김진호 장군ROTC 2기 대장전역, 합참의장 역임
역사의식 확고, 국가정체성 수호강조
  • 배병휴 [이코노미톡뉴스 회장]
  • 승인 2017.09.11 12:28
  • 댓글 0

오랫동안 회장 유고(有故) 사태를 빚어온 재향군인회가 지난 11일 선거를 통해 합참의장 출신인 김진호 장군을 제36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신임 김 회장은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ROTC 2기생으로 임관되어 GOP 소대장, 베트남전 참전을 거쳐 각급 지휘관, 사령관을 역임한 후 국군 최고위직인 합참의장을 끝으로 전역했다.

▲ 8월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공군회관에서 열린 재향군인회 제36대 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김진호 전 합참의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재향군인회>
‘군인 김진호’… 회고록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 국군 최고계급 대장, 국군 최고위직 합참의장을 지낸 김진호 장군의 회고록 제목이 ‘군인 김진호’이다. (2014.11 초록문 출판, 533쪽) 김 장군은 ROTC 2기생으로 육군소위 임관 후 각급 지휘관을 거쳐 37년간 군인생을 명예 퇴역했으니 ‘군인 김진호’란 표제가 꼭 맞는 말이다.
김 장군은 회고록을 통해 국가안보는 국가와 국민의 생존이 걸린 현실문제로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육본 정보참모부장 시절 ‘땅굴민원’에 시달린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국가안보는 장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 1968년 베트남전 군수 장교 시절의 군인 김진호. <사진@재향군인회>

군인 김진호는 임관 23년 만에 장군(준장)으로 진급하여 영천에 있는 제3사관학교 참모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교장은 육사 17기 선두주자인 김진영 장군으로 나중에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기까지 김진호 장군을 각별히 아껴주었다.
이때 학교장을 보필하는 참모장 직위에서 어느 날 훈육관들의 책상과 비품들을 점검하다가 책꽂이에 있는 K대 사학과 K교수의 ‘한국현대사’를 들춰보다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크게 왜곡한 대목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고려대 사학과를 나온 김 장군은 “초급장교 요원들이 조국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잘못 배운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대목에서 “38선 이남은 이북 정치세력과 협상을 거부하면서 성립됐지만 이북의 단독정부는 계속 이남의 정치세력과 협상을 표방하면서 성립됐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기술되어 있었다. 또 6.25 원인 관련 부문에서 “김일성이 무력으로 통일하고자 표방한 전쟁이었지만 남한정부의 ‘불안전성’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기술했다. 제주 4.3사태, 대구 폭동, 여수·순천 반란 사건 등을 ‘남한정부의 불안정성’으로 지적한 모양이지만 악랄한 ‘적반하장’ 아닌가.
김 장군은 이 무렵 숙대에 진학한 딸의 책상에도 K교수의 한국현대사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절대로 두고만 볼 수 없다고 다짐했다.

‘한국현대사와 안보현실’ 교재작성

김 장군은 현역군인의 신분으로 현대사의 왜곡부문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로 ‘초급장교용 정신훈화 자료’를 만드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이들 자료를 기초로 수정, 보완을 거듭하여 ‘한국현대사와 안보현실’을 교재로 작성했다.
이를 제3사관학교 뿐만 아니라 그 뒤 제37 사단장, 제11 군단장, 제2군 사령관 등 보직이 바뀔 때마다 산하 부대 장병들의 교육자료로 적극 활용했다.

김 장군은 현대사를 왜곡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일제 식민통치기의 항일운동 평가 △남북 분단의 책임문제 △8.15 후 정부수립 이전의 폭동사건들 △남한 단독정부 수립과정 △분단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미국정부 역할 등을 꼽았다. 8.15 해방공간의 각종 폭동사건이란 정판사 위폐사건(1946.5.24), 대구 폭동사건(1946.10.1), 제주 4.3폭동(1948.4.3), 여수·순천 반란사건(1948.10.20) 등이지만 이는 모두 남로당이 주도한 사건들이다.
김 장군은 이 같은 역사인식 하에 현역군인의 신분으로 직접 교재를 작성하고 장병들을 교육했던 것이다.

▲ 합참의장 시절 독수리 훈련장 순시. <사진@재향군인회>
‘10.26’ 시신들 속 박상범 동기 구출

강직 무골의 김 장군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태어난 4대문 ‘문안출신’으로 자부한다. 전농동은 일제시까지 경기도 고양군이었지만 해방 뒤 서울시로 편입됐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벌어졌을 때는 겨우 10세 소년으로 인민군 치하에서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이라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불러야 했고 9.28 수복 때는 태극기 물결에 감격했다가 1.4 후퇴로 다시 피난길에 나서야만 했다.

그 뒤 배제중학을 거쳐 고대 사학과에 진학하여 럭비선수로 활약하다가 ROTC 2기생 훈련을 받고 군인이 됐다. 임관 후 GOP 소대장, 베트남전 참전 등으로 초급장교 시절을 거쳐 육군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육본 인사참모부 진급관련 보직장교 시절에는 ‘외부장교와 접촉금지 불문율’ 속에 한가한 시간이 나면 ‘의리의 사나이’ 장세동 중령과 장기를 두면서 무료감을 달랬다.

‘10.26’ 국변 날은 수경사 30단 부단장으로 일찍 귀가했다가 비상소집으로 밤 9시에 귀대하여 궁전동 만찬 현장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이때 숱한 죽음들 속에 꿈틀거리는 시신을 발견해 보니 대통령 경호실 수행계장 박상범으로 고대 60학번 동기였다. 급히 그를 지프에 태워 수도 국군병원으로 보내 살려내어 뒤에 YS정부 대통령 경호실장이 됐으니 기적이라 할만하다.

▲ 1999년 1월 20차 한미군사위원회에서 쉘턴 미합참의장과. <사진@재향군인회>
유력언론과의 500일 전쟁 승리

4성 장군으로 진급하여 제2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1996년 12월에는 중앙일보 자매지인 월간 ‘WIN’과의 500일간 전쟁에 휘말렸다. 당시 WIN이 “김 장군은 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등에 업고 승진했고 YS의 부친 김홍조 옹을 찾아뵙고…”라고 보도하자 김 장군이 허위사실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김 장군은 비육사 ROTC 출신으로 ‘하나회’와는 전혀 무관했다. 또 군단장 시절에는 경남 거제와 가까운 창녕에 주둔했지만 YS 부친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군인 김진호’의 자부심과 명예에 치욕을 안겨준 이 보도에 대해 정정, 사과를 거부하자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금창태 사장 및 월간지 박준영 주간 등을 동시 고소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김 장군은 전투복 차림의 현역 육군대장으로 재판정에 출석, 증언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 사이 정권이 바뀌어 김 장군은 2군 사령관직을 마치고 군의 최고직인 합참의장으로 임명됐다. 이 무렵 김 장군과 고대 사학과 동기이자 ROTC 2기 동기인 김정배 교수가 고대 총장으로 선출되어 대한민국 ROTC 장교단의 경사로 보도됐다. 또 중앙일보 금창태 사장은 김 장군의 고대 2년 선배 사이인데다가 박준영 주간은 DJ정부 박지원 대변인 아래 국내 언론담당 비서관으로 발탁되어 고소 취하론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중앙일보 금 사장이 먼저 메시지를 보내 왔다. “지금에 와서 지면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기는 곤란하지만 신문사의 공식문서로 사과하겠다”고 제안하여 고소 이후 500일 만에 사건이 일단락된 것이다. 당시 중앙일보는 “기사로 인한 잘못에 대해 선처를 바라며 창군사상 최초로 학군 출신 합참의장 탄생을 축하한다”는 요지로 사과했다.
당시 기사를 작성했던 김준범 기자는 그 뒤 국방부 국정홍보 관리실장으로 부임하여 김 장군과 골프를 함께 치기도 했다고 한다.

▲ 한국토지공사 사장 시절 개성공단 사업을 진행했다. <사진@재향군인회>
DJ 햇볕정책하에 북의 대남도발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3월, 첫 번째 군인사에서 육사를 제치고 ROTC 출신인 김 장군을 합참의장으로 임명하여 화제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 장군이 합참의장 시절 DJ정부의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측은 끊임없는 대남도발로 이중성을 숨기지 않았다.
1998년 6월 22일, 동해안 속초항 북측 11.5마일 해상에서 북의 반잠수정이 어망에 걸려 예인됐다. 승조원 9명은 군의 예인작전 전에 자폭하여 시신 9구만 발견됐다. 북의 반잠수정이 적발된 날은 현대 정주영 회장이 소 500마리, 옥수수 5만톤, 트럭 50대 등 도합 137억원의 물자를 지원한 날이었다.

이로부터 몇 주일 뒤인 7월 13일에는 동해시 바닷가에 수중 침투기와 함께 무장 간첩 시신 1구가 발견됐다. 또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강화도 앞바다에 괴선박(간첩선)이 발견되어 해병대의 추적을 받고 북상 도주했다. 그로부터 20여일이 지나 한미연합사령관 틸렐리 대장이 김진호 합참의장에게 긴급회의를 요청해 왔다. 북의 대남침투조가 제3국을 경유하여 공해상에서 모선과 자선이 분리되어 남해안으로 침투가 예상된다는 첩보제공이었다.
이에 합참이 즉각 해상과 육상 경계작전을 지시한 지 1주일 만에 해군작전사령관(이수용 제독)으로부터 간첩선을 발견 추적 중이라는 보고가 왔다. 여수지역 해안으로 침투하려던 북의 반잠수정은 해군 초계함의 추적, 교전 끝에 격침됐다. 육·해·공군의 협동 및 한·미·일간 공조에 의한 일망타진이었다.

이 반잠수정을 인양하여 시체 4구 외에 각종 장비와 문서가 노획됐다. 이를 계기로 민혁당을 재건하려던 하영옥 일당 등 고첩단이 체포됐지만 이석기 일당은 도주했다가 3년 뒤에나 검거됐다. 이석기는 노무현 정부에서 특별 사면, 복권으로 통진당을 통해 원내로 진출했다가 RO 조직이 드러나 구속 중형이 선고되고 통진당은 해산됐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김정일이 DJ의 햇볕정책을 악용한 대남교란작전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배병휴 [이코노미톡뉴스 회장]  econotalk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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