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들추기보다 내일을…
대통령의 안보관이 불안스런 대목

김동길의 세상보기.
한(恨)과 분노의 정치
과거 들추기보다 내일을…
대통령의 안보관이 불안스런 대목.

한(恨) 맺힌 사람들이 가장 많은 나라가 이 나라다. 다른 나라 백성들에 비해 한이 그렇게 많이 쌓인 것도 아니지만 반도적(半島的) 기질인 국민성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맺힌 격분하기 쉬운 기질

[김동길 칼럼(연세대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 @이코노미톡뉴스] 어떤 지도자가 나와 ‘한을 풀라’고 선동하면 이에 동조하여 엉뚱한 짓을 할 가능성도 있는 국민이다. 격분하기 쉬운 기질의 국민이다.
개화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서양 선교사는 “한국인은 모자만 땅에 떨어지게 돼도 서로 싸운다”고 악평 했다. (At the drop of a hat)

불같은 성미를 가졌기 때문에 또한 ‘분노의 정치’가 가능하다. 흥분하고 분노하면 일시적이지만 따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한’이나 ‘분노’가 인간의 비정상적인 감정의 표현이기 때문에 한은 사그라뜨리고 분노는 가라앉히는 것이 사리에 맞는 일이지만 이런 나쁜 감정을 부추겨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간사한 정치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이 맺힌 것도 아닌데 “왜 한을 품으라고 선동합니까.” 분노할 일도 아닌데, “왜 분노하지 않고 가만있느냐, 바보냐”라고 자극한다. 그래서 나라가 생각보다 더 소란해 지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는 누가 어떤 선동을 해도 동요하지 말고 조용하게 행동할 수 있는 항심(恒心) 있는 국민이 되어, 우리가 당면한 이 난국을 잘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 문재인 정부가 유니세프, 세계식량계획을 통해 북한에 800만 달러 상당의 인도적 지원을 결정한 지 하루 만인 15일,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급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발사하여, 문 정부의 대북 지원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 <사진@청와대,백안관>
문 대통령의 안보관 불안

문재인 대통령은 41%가 좀 넘는 득표율로 근근이 당선됐다. 그렇다면 ‘안 된다’고 믿고 다른 후보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가 59%에 가깝다는 계산이지만 민주사회의 특색은 표를 주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이 예상보다 잘 한다”고 생각하고 지지하는 유권자가 늘어날 가능성은 많다는 것이다.
나는 문 후보자의 안보관이 불안하여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 중에 한 사람인데 요새 문 대통령이 북에 인도적 지원을 검토하느니 김정은과 대화 가능성을 내비칠 때는 몹시 불안한 느낌이 든다. 그런 착상은 유엔의 일관된 제도나 입장에도 위배되는 덧이라고 생각된다. 아직도 노골적인 대립국면이 전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 들추기 그만하고 내일을 위해…

현 정권이 태산 같이 큰일들을 앞에 두고 전 정권들의 과거 뒤지기를 시작하면 역사는 추진력을 잃게 마련이고 정치현실은 탄력을 잃고 만다. 이명박 전 정권하의 잘못된 일들을 문재인 정권이 파헤치겠다고 나서면 오늘의 정권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과제들을 누가 언제 해야 하는 것인가.
전 정권하에서 ‘대운하 계획’이 ‘4대강 사업’으로 줄어들고 이에 관련된 비리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현 정권이 그 비리들을 들추어 관련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일에만 전념한다면 위기에 직면한 안보와 경제는 누가 손을 보고 정상궤도에 올려놓게 되는 건가.

어떤 대통령이라도 일단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 “한국경제를 일본경제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5년 동안 최선을 다 하겠다”고 우뚝 서서 칼을 빼들고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국민이 원한다. 우리보다 경제도 사회도 안정된 일본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이 고작 위안부 문제라면 한국의 대통령이 먼저 “우리는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건설적으로 전진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받은 돈 10억 엔을 돌려줄 테니 다른 일에 쓰라고 하면 두 나라의 앞날에도 서광이 비치지 않을까.
과거를 들추는 일은 그만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설계하는 자세로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계에 믿을 인물이 없다

스스로 큰 인물이라고 믿고 정계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은 여럿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다수가 인물이라고 믿고 따르는 사람은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대통령이 졸지에 탄핵 당해 감옥으로 직행하는 나라에 제대로 된 여당이 있었을 리 없고 그런 여당에 인물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오늘도 그렇다. 왜 정계가 개편되어 신뢰할 만한 야당이 출범하지 못하는가. 구심점을 맡을 만한 인물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의 여당이야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하기 때문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비칠 수 있지만 ‘진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국민을 언제까지나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문 대통령이 큰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실망하고 있다. 위대한 지도자란 국민에게 약속 했으면 끝까지 지켜야 하는데 문 대통령은 “내가 언제 그랬더냐”는 식으로 약속을 내동댕이치니 나 같은 사람은 믿고 따를 수가 없다.
그는 대선 때 “당선만 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서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약속하여 그가 대단한 인물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당선되고 나서 미국 먼저 다녀와서 한마디 사과나 해명도 없다. 문 대통령은 정부 요직에 앉힐 사람들의 ‘불가(不可) 5원칙’을 내세웠다. 그러나 5원칙에 저촉되는 인물들을 내세우고도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사과 한마디가 없다.

문 대통령이 가까이 쓰고 있는 인물들은 좌경 진보인사들 뿐만 아니라 깜짝 놀랄 만큼 유산자(有産者)들이 많았다. 그들은 구차한 변명만 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문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만나 북한으로 석유공급을 끊어달라고 부탁하자 “가혹한 제재는 역효과가 난다”면서 한국 대통령에게 경고한 셈이나 다름없다. 나는 “저 분이 내가 알던 문재인 그 사람인가”라고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지도자도 생각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바꿨다고 국민에게 알려주는 것이 도리 아닐까. 나보고 제발 “나를 따르라”고 하지 마세요.

남의 잘못만 따지지 말고…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가 흙이라 하는고야
두어라 아는 이 있을 거니 흙인 듯 있거라 (윤두서)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으로 벼슬보다 서화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다. 당시 사색당쟁이 인물을 키우지 못하고 성한 사람들을 병신으로, 선량한 사람을 악인으로, 똑똑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다.
오늘의 우리 정치현실이 어떠한가. 정말 걱정이다. 대통령 중심제가 모든 폐해의 원인으로 여겨 개헌을 주장한다.
“뿌리를 뽑지 못하겠다면 잎사귀라도 뜯어야죠. 오늘도 줄을 잘 서야 출세하죠”라는 말이 왜 생겼냐고 보십니까.
참새가 황새걸음 하는 꼴은 눈 뜨고 볼 수 없다. ‘끼리끼리’라는 말이 우리정치의 고질을 말해준다. 우리나라 대학에 당쟁을 연구하는 전공분야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조선조의 당쟁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배우지 않고 여기까지 온 탓일까.

청와대가 어디로 가나요

미국 CNN의 저명 앵커 Amanpour가 청와대 안보 보좌관과 TV 화면을 통해 면담했다. 청와대 보좌관은 체구도 당당하고 영어도 유창하고 의사표시도 명백했다.
Amanpour가 문 대통령의 대북관이 변한 것이냐고 물었다. 청와대 특보는 “김정은이 대화에 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CNN 앵커는 “왜 김정은이 저런 극단적 발언을 하며 극한투쟁을 선포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청와대 특보는 “정권을 지키려는 의도 밖에 또 무슨 뜻이 있겠느냐”며 매우 가볍게 받아 넘겼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정권을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것 같지만 정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만드는 나라는 없다. 그보다 더 큰 목적이 있다. 김정일, 김정은이 미국의 침공이나 대한민국의 반공태세로 무너지지는 않는다. 6.25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 김일성이 정권기반을 다지기 위해 남침한 것 아닌가. 김일성 3대의 유일한 목표는 적화통일 한가지 뿐이다.
김정은의 수소폭탄은 미국과 흥정하기 위한 무기이다. 정권수호 차원을 넘어 남북통일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무엇을 주면 핵무기를 포기하겠느냐”라고 물으면 김정은은 “남한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핵무기를 버리겠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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