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리앙 뒤비비에 감독, 1936년 프랑스 작품
쟝 갸방, 미레이유 바랑, 가브리엘 가브리오

▲ 망향(PePE le Moko) 포스터.

[박윤행 칼럼 @이코노미톡뉴스] 1930년대 프랑스는 시적 리얼리즘이라는 매우 낭만적인 미학의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사에 주요한 에포크를 기록하게 되는데, 사회를 향한 어둡고 절망적인 그들의 시각을 일관성 있게 보여준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식의 사회적 리얼리즘이 아니라 재창조되는, 비관적이고 비현실적인 리얼리즘으로 미장센이 강조 된다. 내러티브는 숙명론으로 가득 차 있고, 일반적으로 남성주인공에게는 불우한 운명이 지워져있으며, 주인공의 분위기에서 파멸을 느낄 수 있다.
그 역할을 대부분 장 갸방이 맡았는데, 주요 감독은 마르셀 까르네, 장 르느와르, 쥘리앙 뒤비비에이며, <망향>은<무도회의 수첩> <하루의 끝> <나의 청춘 마리안느>등 많은 걸작을 발표한 뒤비비에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가 북 아프리카 알제리를 식민 지배하던 시절,
항구도시 카사블랑카의 카스바구역은 각종범죄의 온상이자 우범지대로, 골목길이 마치 미로처럼 뚫려 있어서, 범죄자도 일단 그리 도피하면 체포하기가 어려워 밖으로 나오기만 기다릴 정도였다.
은행강도를 저지르고 2년전 카스바로 잠입해 들어간 페페는 매력있는 쾌남아로 카스바의 두목처럼 군림하며 현지인들의 비호를 받고 있는데, 그를 체포하기 위해 파리에서 경찰들이 내려와 알제리인 레지스의 정보에 따라 카스바를 급습했지만, 주민들의 철저한 도움으로 페페는 총격전 끝에 자리를 피하고 우연히 카스바를 관광하던 여인과 마주친다.

▲ 시력을 읽은 루이즈. ▲ 앙리에트 유괴되고. <사진@필자제공>

페페는 그녀가 차고 있는 비싼 보석들에 눈독을 들이지만, 알제리계 형사 슬리만이 함께 있어서 포기한다. 그러나 강렬한 눈빛을 나누면서 서로 호감을 갖는다.
슬리만 형사는 페페가 동생처럼 아끼는 피에로를 도와준 인연으로 그와 지인이 되어 카스바에서 자유롭게 만나는 사이이다. 그는 언젠가 페페를 반드시 체포해서 20년형을 받게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페페는 웃어넘긴다. “내가 자네를 쏘지 않게 해줘”

▲ 노래하며 구걸하는 루이즈. ▲ "루이즈의 목소리야". <사진@필자제공>

현상금을 노린 레지스는 경찰에 가서 페페를 체포할 묘안을 낸다. 먼저 페페가 아끼는 피에로를 시내로 꼬여내 그를 가두면, 페페가 그를 찾으려고 카스바에서 나올 것이라고. 효성이 지극한 피에로는 그의 모친이 아들을 만나러 카사블랑카에 왔다는 거짓편지를 레지스에게서 전달 받고 시내로 나간다.
상류층 여인을 만나고 난후, 페페는 새삼 카스바가 지겨워져 함께 살고 있는 집시 여인 이네스에게도 짜증을 내고, 찾아온 슬리만에게 어제 여인에 대해 물으며 관심을 보인다. “그 여자는 여왕 같았어. 내 얘기를 하던가?”
“그 여자에게 반했군” “아니야 그렇지만 이네스와는 달랐어”
슬리만은 식당에서 어제의 여인에게 접근하여 페페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 여인은(가비) 부유한 노신사 막심의 여인으로 넷이 여행 중이었는데, 페페에게 관심을 표했기 때문이다. 가비는 페페와 파리얘기를 하며 서로 마음이 통하고, 손을 잡은 페페의 손을 뿌리치려다가 그의 얼굴을 빤히(15초 동안)바라보다 그대로 둔다.
가비는 내일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는데 피에로가 총을 맞은채 나타난다. “그가 밀고했어요” 레지스는 살해당하지만 피에로도 절명한다.

▲ 형장으로 가면서 ▲최후 순간의 구원. <사진@필자제공>

피에로의 장례에도 못가는 처지에 울적해진 페페는 술을 퍼마시고, 슬리만에게서 가비는 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페페는 “아무도 나를 못 말려. 나는 나가고 싶을 때 여기를 나갈 거야”하며 뛰쳐나간다.
슬리만 형사로부터 페페가 술에 취해 카스바 밖으로 나온다는 정보를 듣고 경찰이 출동하지만, 페페는 어제의 여인이 집에 와서 기다린다는 이네스의 말에 집으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날 속였지?”하고 화를 내던 페페도 “내가 있으라고 해도 떠났을거잖아”이네스의 말에 이윽고 진정한다.

그때 가비가 와있었다. “어제 인사도 못하고 가서요”
페페는 사랑을 나누며 가비에게서 떠나온 프랑스와 파리, 지하철의 냄새가 난다며 망향의 한을 실토한다.
“카스바 밖으로 나올 수는 없나요?” “못나가요. 포위돼 있어서 바로 체포될 거요”“내일 또 올 게요”
이를 지켜본 슬리만은 페페를 밖으로 끌어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가비의 남친 막심에게 가비가 페페를 만나러 가니 못 가게 하라고 일러준다. 못 나가게 말리는 막심에게 가비는 절교를 선언하고 나가는데, 슬리만이 페페는 조금 전 총격으로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페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결국 가비는 외출을 포기하고 막심은 다음날 함께 떠날 배를 예약한다.
가비가 오지 않자 페페는 동료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고 하지만 그는 체포되고, 슬리만은 페페를 꼬여내기 위해 가비가 호텔에서 기다린다는 거짓정보를 흘린다.
그 정보가 함정임을 눈치 챈 페페는 가비가 오늘 배로 떠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경찰들이 호텔에 진을 치고 있을 것이므로 오히려 안전할 배로 가기로 결심한다.
이네스의 만류에도 문을 나서는 페페. 카스바를 떠나면서 온갖 감정이 회오리친다. 2년여의 도피생활과 반 감옥 같았던 카스바. 그리고 이제 그리운 고향 프랑스와 파리의 하늘밑,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가비가 있는 곳을 찾아.

▲ 닷 찾은 행복. <사진@필자제공>

페페는 무사히 승선을 하고 가비를 찾아다닌다.
일행은 발견했지만 가비를 볼 수가 없다. 그녀는 실의에 차서 페페 쪽 벽을 등지고 앉아있었다. 그때 옆구리에 총을 찌르며 슬리만과 경찰이 에워싼다. 이네스가 질투 끝에 호텔의 슬리만에게 알려 줬던 것이다.
수갑을 차고 하선하는 페페 일행 뒤로 철문이 닫히고, 뱃고동 소리가 울린다. 페페는 “배가 떠나는걸 보게 해주게” 철문사이로 멀리 선미에 나온 가비를 발견한다.
가비는 카스바의 언덕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는데 페페는 힘껏 “가비”하고 부르는 순간 다시 뱃고동이 울려 가비는 귀를 막고 들어간다.
배는 떠나고 모든 희망- 사랑, 고향, 귀향을 잃은 페페는 스스로 칼로 찌르고 죽는다.

▲ 박윤행 전KBS PD, 파리특파원, 경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역임

인간이 가장 누리고 싶어 하는 가치가 무엇일까? 자유일 것이다. 자유는 생명과도 바꿀 수 있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고향- 그것은 한이 될 것이다.
사랑과 배신과 거짓과 탐욕이 난무하는 스토리 자체가 카스바처럼 얽혀있다. 풍부한 미장센은 카스바골목 골목을 알뜰살뜰이 보여주며, 멋진 카메라 워크는 다양한 삶의 구도를 그려낸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명연기를 펼친 장 갸방은 시적 리얼리즘의 대명사처럼 되었고, 40년대를 휩쓴 필름 느와르의 선구적 영화로서 <망향>은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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