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 지원도 때가 있지 않는가

대북정책에 관한 한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판박이다. 표현방식부터가 그렇다.
“근 20년간 북한보다 수십 배가 넘는 국방비를 쓰고 있다. 그래도 한국 국방력이 북한보다 약하다면 1970년대를 어떻게 견뎌왔겠느냐. 그 많은 돈 우리 군인들이 떡 사먹었느냐. 옛날 국방장관들이 나와서 떠드는데 그 사람들 직무유기한 것 아닌가.”

▲ (사진왼쪽 상단)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7월 28일 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대륙간 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미사일 2차 시험발사를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채널A 뉴스캡쳐 20160920> / (사진오른쪽 상당) 9월 3일 NSC(국가안전보장회의) 대통령 모두발언 장면 / (사진왼쪽 하단)NSC(국가안전보장회의) 대통령 모두발언 장면@청와대 / (사진오른쪽 하단)2016 RIMPAC 훈련에 참가한 우리해군 세종대왕함의 실사격 모습. <사진@해군>
대북 지원 800만불
ICBM ‘헌금’인가
인도적 지원도 때가 있지 않는가

[이진곤 칼럼 @이코노미톡뉴스(이톡뉴스)] 2006년 12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 노 전 대통령은 아주 격앙된 목소리, 격렬한 몸짓으로 울분을 토했다. 주로 전작권 환수에 반대하는 전직 국방부 장관들, 예비역 군 수뇌들을 겨냥한 공격이었다. 
“북한이 비대칭 전력을 고도화한 만큼 우리도 그에 걸맞게 대응해야 하지만 그 많은 돈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문 대통령이 지난 8월 28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 남한의 GDP를 비교하면 남한이 거의 45배에 달하지만 절대 총액 상으로 우리의 국방력은 북한을 압도해야 하는데 실제로 그런 자신감을 갖고 있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그 많은 국방비 가지고 뭘 했나”

그 돈으로 떡을 사먹었는지, 정부 및 군의 수뇌들이 빼돌렸는지, 어디 갔다가 버렸는지는 누구보다 군 통수권자가 더 잘 알 일이다. ‘그 많은 돈’의 용처는 예산 편성과정에 세세히 정해진다. 예산의 집행 또한 최종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취임 첫해여서 파악이 제대로 안 됐다면 자신의 이름으로 국회에 제출된 내년 예산안이라도 찬찬히 뜯어볼 일이다. 북한보다 월등히 많은 국방비와 안보관련 비용이 어디 쓰이기에 월등한 전력을 갖추지 못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11월 13일 오전(한국 시간)  미국 LA에서 민간 외교정책단체인 국제문화협의회(WAC) 주최 오찬에 참석해서 연설을 했다. 그는 “많은 경우 북한의 주장은 믿기 어려운 게 많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상당한 합리성이 있는 주장이라는…”이라고 하다가 곧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고쳐 말했다.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자위적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을 역성든 것이다.

06년 9월 7일 그는 한-핀란드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 두어 달 전인 7월 5일 발사됐던 북한 미사일에 대해 “대포동 실험발사는 미국까지 가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한국으로 향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라며 “그래서 나는 무력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발사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실험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무런 단서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가 ‘징후도 단서도’ 없다고 했던 날로부터 불과 한 달 하루 후(10월 9일) 북한은 첫 핵실험을 자행했다. ‘미국까지 가기엔 너무 초라하고 한국으로 향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라며 그가 애써 변명해 줬던 북한의 미사일은 이제 단거기, 중거리, 장거리 골고루 구색을 맞춰 거의 완비되었다. 게다가 핵무기는 수소탄을 실험할 정도에 이르렀다.
리더의 인식·판단·대응방법이 잘못되면 그를 따르는 무리는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 어리석었던 것인가 무지했던 것인가, 아니면 내부의 정적들에 대한 과도한 분노 때문이었는가. 정적들이 우둔하고 몰이해하고 악의적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입증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모험이라도 마다 않겠다는 결기였을까?

문 대통령의 경우도 전혀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노 전 대통령은 열정적이고 충동적인 이미지였던 데 비해 문 대통령은 차분하고 이지적인 인상을 주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은 화를 잘 냈지만 대범하게 사과도 잘 했다. 길이 막히면 우회로를 찾는 모습도 보였다. 반면 문 대통령은 표정이나 어투의 변화가 거의 없다. 대신 사과에도 인색하다. 우회로를 모색하는 기미도 아직은 안 보인다.

멸망에로 이끄는 리더 안 돼야

물론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처럼 북한에 대해 변호만 해주지는 않는다. ‘강력한 압박과 응징’의 의지를 밝히기도 한다. 지난 7월 4일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한 이래 그때마다 무력시위로 맞서고 있다. 한미 공조의 강화를 거듭 강조하는가 하면 자신이 막아섰던 사드 1세트 완전 배치도 단행했다. 지난달 15일엔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맞서 즉각 현무-2를 발사하는 ‘기민한 대응력’을 과시하기도 했다(2발 가운데 한 발이 실패하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지다).

문제는 응징적 대응의지가 확고하지 못한 것 같다는 데 있다. 그는 우리 내부의 정적에 대해서는 ‘응징’의 고삐를 절대로 늦추지 않으리라는 결기를 기회 있을 때마다 드러내 보인다. 그렇지만 북한의 핵·미사일과 관련해서는 ‘강·온양면전략’을 고수한다. 응징을 말하기 바쁘게 대화를 강조하는 식이다. 은근슬쩍 북한 입장을 거드는 듯한 언급도 한다.

“북한의 핵 개발은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달 14일 미국 CNN방송 폴라 핸콕스 서울지국 특파원과 가진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은 아마 핵보유국으로서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것일지 모르겠다”고 견해를 밝혔다. 북한 스스로가 공격 무기임을 자랑하고 있는데 문 대통령은 여전히 ‘북핵의 정치성’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용 무기, 전쟁용 무기가 따로 있다는 것인가?

문 대통령은 8월 28일 국방부 업무보고 때 “북한이 선을 넘는 도발을 하거나 수도권을 공격할 경우에 즉각 공세적 작전으로 전환할 수 있게 현대전에 맞는 군 구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했었다. 수도권을 공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세적 작전으로 전환한다? 이런 느긋함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북한이 핵무기를 장착한 미사일을 앞세워 전면 공격을 가해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100%의 확실성이 담보된 믿음은 아니다. 문 대통령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만의 하나 정도에 불과한 가능성’은 무시해도 좋은 것일까?

그는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상황이 끝난 시점에야 반응하고 대응하겠다는 그 말이나, 국방부에 대한 지시나 맥락이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미국이 짖으라니까 짖는다?

G20 정상회의 참석 후 귀국한 그가 7월 11일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건 확실하다. 우리에게는 그런 힘이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한미동맹의 강화, 우방의 지지와 지원 확보에 전력을 투구해야 한다. 강약부동(强弱不同)이라지 않은가. 그런데 미국과는 일대일로 맞서겠다면서 북한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해서는 기를 못 펴는 까닭이 무엇인지 그게 정말 궁금하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난동에도 불구하고 800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 의지를 밝혔다. 그것도 북한 핵실험에 대한 유엔 결의안이 나온 지 불과 이틀 만에! 학정에다 핵난동까지 벌이며 주민들의 생존은 내팽개친 집단이 아닌가. 학정의 비용을 우리가 물어준다는 것은 우리 5천만 국민은 물론이려니와 북한의 2천5백만 동포들에 대해서도 도리가 아니다. 학정·폭정을 우리가 중단시키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 연장을 도와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의 처지를 옹호하면서 그 행보를 이해해달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문통은 지금 굴욕을 감내하면서 사실상의 핵보유 국가인 북한과 맞서 최소한 함부로 취급받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 생명줄을 취고 있는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고 있는 것이다. 기는 것뿐 아니라 미국이 짖으라고 하는 대로 짖어주고 있는 것이다.”

▲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 주필, 전 논설고문)

김 의원이 인용했다는 ‘제3자의 글’이다. 한신(韓信)의 고사를 흉내 낸듯한데 미국을 동네 부랑배쯤으로 비유했으니 이게 우선 적절하다 하기 어렵다. 문제는 미국이지 북한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하자. 그렇지만 집권당의 국회의원이자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사람이 덩달아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짖으라고 하는 대로 짖어 주는 것’이라는 말까지 인용할 것은 또 뭔가. 김 의원에겐 대통령이 지금 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뜻인가.

북한의 핵난동을 제어할 방법이 분명히 있다. 한미동맹이라는 강력한 억지수단이 언제나 있어왔고 지금도 건재하다. 길을 두고 뫼로 가려는 심사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된 것인지 한심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북한에 믿음을 주면 그에 응답해 올 것이라고 믿고 주장하다니! 정작 신뢰를 주고받아야 할 동맹국에 대해서는 불신을 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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