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론, 소수 경제학자 이론

오랜만에 ‘혁신 성장’ 소리에 귀가 번뜻 뜨인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소득 주도 성장만 가지고는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이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백운규 산업통상부 장관과 함께 서울 영등포구 PLK 테크놀지를 방문해 이같이 말한 뒤 “정부는 혁신 성장을 중시한다. 혁신을 통해 공급을 확대하고 경제의 생선성과 효율성을 올리는 것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라 설명했다.

▲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2번째)이 지난 9월 8일, 백운규 산업부 장관(오른쪽 3번쨰), 김상조 공정위원장(맨 오른쪽)과 함께 서울시 영등포구 소재 피엘케이테크놀로지를 방문했다. <사진@기획재정부>

[최택만 논객 @이코노미톡뉴스] 대통령의 소득 주도 성장정책에 가려있던 혁신 성장이 경제부처 수장으로부터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상 공급 확대가 되지 않으면 소득 주도 성장은 공염불에 그친다. 새 정부 출범이후 ‘적폐 청산’과 ‘소득 주도 성장론’으로 계속 대기업을 긴장시켜온 터라 김 부총리의 말은 매우 흥미롭다. 김 부총리는 “경제정책에서 공정위가 하는 공정경제정책만으로는 부족하고, 산업정책이 결합돼야 한다”며 “이런 정책들이 개별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부총리를 컨트롤타워로 삼아 시스템으로 조화를 이룰 때 새 정부 경제정책이 성공하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열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재벌을 개혁하겠다며 몰두하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인지, 아니면 업계를 찾아가 립서비스를 한 것인지 모르나 앞으로 관심 있게 지켜 볼만 하다.

선심 복지 예산 추정도 어려워

그동안 새 정부 구호는 ‘적폐 청산’ 아니면 ‘선심성 복지’였다. 청와대는 지난달 ‘100대 국정 과제’를 발표하면서 향후 5년간 178조원의 예산이 투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물론 기재부와 관계 부처에서도 “이는 최소한의 계획일 뿐 실제로 얼마가 더 들어갈지는 매년 예산을 짜 봐야 안다”고 밝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개월간 국민 부담이나 재정 투입을 키우는 새로운 사업들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이들 사업은 집권 5년간 178조원이 투입될 대선 공약 사업들과는 상당 부분 별개이다. 막대한 돈이 들어갈 새 사업 약속은 연일 이어지고 있지만, 재원 마련 대책은 미덥지 않다. 전문가들은 “결국 빚을 내서라도 하겠다는 건데, 5년 후 다음 정부는 빚더미에서 시작하라는 얘기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청와대는 취임 직후인 5월 12일부터 ‘찾아가는 대통령’이라는 기획 행사를 실행하고 있다. 첫 행사에선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31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구체적 소요 예산은 밝히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30조6000억원이 필요한 사업이다. 6월 2일에는 서울 노원구의 요양원을 방문해 ‘국가 치매 책임제’를 발표했다. 청와대는 ‘치매안심센터·병원’ 설립에 1조8000억원이 든다고 밝혔다. 

6월 7일에는 서울 용산소방서를 방문해 “소방 공무원을 늘리겠다”고 했다. 공공 부문 일자리 확대 공약에 포함되는 소방관·경찰관 등 공무원 17만4000명 추가 채용에는 8조2000억원이 필요하다. 또 6월 19일 문 대통령은 부산 기장군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 중단을 시사했다. 현실화된다면 공사 정지에 따른 보상 및 피해액만 최대 12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짜 복지는 어디에도 없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은 빈곤층 해소를 위해서 필요한 정책이나 한번 늘어나기 시작하면 계속 늘어나는 예산의 속성상 소요액 차 추정이 어렵다. 현재 163만명이 혜택을 받고 있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오는 2020년 252만명까지 늘어나고 비수급 빈곤층은 93만명에서 33만명까지 최대 60만명 줄일 방침이다. 두 번째로 주거급여 대상자를 중위소득 45%까지 늘려 새로 혜택을 보는 사람만 90만명이 늘고 세 번째로 의료급여 본인 부담 상한이 연 120만원에서 80만원으로 낮아지며 네 번째로 교육급여가 2020년까지 최저교육비의 100% 수준으로 인상된다.

청와대와 정부·여당 설명에 따르면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기초연금 인상에 21조8000억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확대에 9조5000억원,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30조6000억원이 들어간다. 정부 관계자는 “해당 재원 일부는 공약 추진 재원에 이미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돈은 공약 추진 재원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경우이든 정부 계획대로 하면 건강보험료가 해마다 2~3% 상승하면서 국민에게 추가 부담을 지우게 된다. 국민이 부담하게 되니 결국 공짜 복지는 없다.

소득 주도 성장정책은 소수 경제학자 이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경제정책은 복지 우선 정책과 소득 주도 성장정책에 쓰일 돈이 얼마인지 추계하기 힘든 실정에서 그 돈 마련을 위해 기업의 투자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법인세를 올리고 보유세를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과세표준 2000억원이 넘는 대기업의 법인세율을 25%까지 올리는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반해 야당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켜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법인세 인상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복지 재원 마련 등을 위해 법인세 인상이 필요하며, 과거 정부에서 지나치게 내린 법인세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이라 밀어붙일 태세다.
민주당 지도부가 연일 보유세 인상 등 초(超)과다 부동산 보유자를 겨냥한 대책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의 공식 발언은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보유세 증세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동연 부총리는 12일 여권에서 제기하고 있는 보유세 인상 문제와 관련해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보유세 인상은 신중해야 한다”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부총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보유세는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쳐 국지적 시장 과열에 대응이 어렵고 실현된 이익이 아닌 보유에 대한 과세라는 측면도 있어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미룬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당에서 ‘부동산 보유세’ 발언이 이어지면서 증세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 최택만(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청와대는 “소득세·법인세 최고 세율 인상에 따른 초과 세수와 주택도시·고용보험·전력기금의 여유 자금 등을 최대한 활용해 재원을 마련할 것”이라는 입장이나 이들 기금을 유용할 경우 언젠가는 기금이 바닥나 국민 부담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에 세금인상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 정부가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는데 반해 선진국은 오히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추세다. 소득 주도 성장정책은 소수 경제학자들이 주창한 이론이다. 이런 정책을 시범시행도 없이 전체 국민경제에 덥석 적용하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 ‘복지! 복지!’하고 외치다 나라 경제가 파탄 나버린 그리스와 베네수엘라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정밀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복지 사업에 정부 돈을 마구 쏟아 붓는 일은 중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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