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 안보상황 속에 ‘ 정권사업’ 추진

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장악’을 기도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로드맵이 실행 중에 있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8월 25일 개최된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공유한 문건 가운데 이른바 ‘방송장악 로드맵’이 들어 있었다고 조선일보가 9월 1일 보도했다.

▲ 지난 8월 25~26일 더불어민주당 ‘ 2017 정기국회 대비 국회의원 워크샵’. <사진@더불어민주당>

 

언론적폐 몰아낸다?
공영방송 손보기인가
엄중 안보상황 속에 ‘ 정권사업’ 추진

[이진곤 칼럼(국민일보 전 주필·논설고문 @이코노미톡뉴스] “더불어민주당이 KBS·MBC 등 공영(公營)방송을 ‘언론 적폐’로 규정하고 사장과 이사진 퇴진을 위한 촛불 집회 등 시민단체 중심의 범국민적 운동을 추진하자는 내부 문건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문건에는 야당 측 이사들의 개인 비리를 부각시켜 퇴출시키자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은 당 전문위원실의 실무자가 작성한 ‘단순자료’일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그 실무자는 이런 못된 궁리를 하고, 그걸 당 소속 의원들에게 공람시키려 했을까? 누군가의 지시를 받지는 않았을까? 상식적으로 추측하건대 당 워크숍에서 의원들에게 배포될 자료의 내용을 작성자 혼자서만 알고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촛불로 언론적폐 몰아낸다?

옛날에는 ‘구악’ 혹은 ‘부패인사’로 찍히면 그 사람의 정치적·사회적 삶은 끝이었다. 김영삼 집권 전반기는 ‘사정(司正)’으로 채워지다시피 했다. 물론 명분이 있고 국민의 요구와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집권자와 권력실세들의 사적 감정이나 판단이 전혀 끼어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은 점점 개혁 구호와 사정의 일상화에 지쳐갔다. 삶의 질을 나아지게 하는 노력보다 징벌하는 재미에 더 빠져 있는 인상을 줌으로써 이른바 ‘개혁 피로증’, 나아가 ‘개혁 기피증’을 유발한 것이다.

당시 언론도 사정권에서 비켜난 것은 아니었다. 93년 5월 4일, YS대통령은 언론사 사회부장들과의 오찬에서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어떤 분야도 예외가 없다”고 대답했다. 세무조사 방침을 밝힌 것이다. 그는 훗날, 그러니까 2001년 2월, 일본 도쿄에서 94년에 언론사 세무조사가 있었음을 밝혔다. 그는 “언론의 존립이 위협받을 만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세금의 일부만을 거둬들였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미 세무조사 직후, 공개여부에 대한 법적 다툼이 있었다. 서울고법 특별 2부는 이해 8월 26일 한 시민단체가 국세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기업의 재무 상태나 세무조사 결과 등 영업 비밀은 헌법상 보호기본권으로 공공복지 불이익이 없다면 공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때는 언론사들이 그럭저럭 직격탄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호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국세청은 01년 2월 8일부터 6월 19일까지 23개 중앙 언론사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400명의 조사인력이 투입된 대대적 조사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부분적으로 공개됐다. 전체 적출금액과 추징세액, 주요 적출유형별 적출금액 및 추징세액 등이었다. 개별 언론사별로는 《국민일보》 《대한매일》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 6개 언론사에 대한 누락금액과 추징액이 공개됐다.

역대 정부마다 언론 길들이기

국세청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각종 유언비어 등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 조사의 당위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조사 결과 공개의 이유를 설명했지만 국세기본법에는 없는 조치였다. 정치적 의도가 없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언론탄압이 행해졌다. 민주화 이후의 언론은 적어도 그런 탄압의 위협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정부라고 해서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때의 세무조사가 말해줬다. 세무조사 결과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조희준 국민일보 회장이 구속됐다. 그리고 세무조사 와중에 동아일보 김 회장의 부인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는 참담한 사건도 발생했다.
언론이라고 치외법권을 가진 것 아니라고 하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정당의 부패를 방지하고 정당정치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지금까지도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주고 있는 나라에서 경영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었던 언론에 대해, ‘세무조사’로 기강을 잡으려 했다는 것은 그 적법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하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는 선거 때, 혹은 그 이전부터 보수언론에 대한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곤 했었다. 그것이 당선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언론과 맞붙어 싸울 수 있는 기개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이었던 01년 2월 7일 출입기자들에게 그가 한 말이다. 세무조사와 관련한 언급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도 끊임없이, 특히 메이저 언론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정부 여당은 2004년 정기국회에서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신문법)’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피해구제법)’을 통과시켰다. 1개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이 30% 이상, 상위 3개사 합계점유율이 60%이상이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보아 규제한다는 내용이었다. 신문사 복수소유 금지조항도 신설됐다(이상 신문법). 언론중재법 중 정정보도 청구를 본안 소송이 아닌 민사집행법상 가처분 절차에 따르게 한다(언론피해구제법)는 규정도 들어갔다. 그리고 이 조항들은 2006년 6월 29일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정부는 다른 한편, 보도 내용에 대한 소송제기, 중재신청, 댓글달기 독려 등으로 언론을 압박했다. 대통령이 지시했거나 정부 기관들이 알아서 한 일일 것이다. 또 직설적으로 언론을 공격하고 비난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하다하다 정부 기관들의 기자실 폐쇄라는 압박 수단을 동원하기까지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도와주는 언론이 없다”고 약한 모습을 보였다. 끝까지 노 대통령과 언론의 화해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기간을 통해 진보언론이 탄탄한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진보좌파로서는 큰 자산을 마련한 셈이 되었다고 하겠다.

이명박 정부 때 종합편성 채널이 생겨났다. MB정부와 여당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결과였다. 보수정당이 정권을 재창출 할 수 있었던 데는 종편방송(채널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의 기여가 컸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문제는 그 밀월관계가 오래가지 못했다는 데 있다. 종편들은 세월호 참사 때부터 박근혜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의도한 게 아니라 시청률경쟁이 격렬한 보도경쟁으로 이어진 탓이었다.

안보상황 이렇게 엄중한데…

극히 일부의 보수언론을 제외한 전 언론이 그랬지만 특히 메이저 신문과 종편들은 탄핵정국을 주도하다시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되기 전 이미 기력을 상실했다. 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에 지레 무릎을 꿇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등장에는 언론들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와 여당, 그리고 그 지지기반인 진보·좌파세력이 언론의 적폐, 혹은 적폐언론을 강조하면서 언론손보기에 입맛을 다시는 까닭이 뭘까? 도움은 받았지만 그만큼 거북한 존재다. 고삐가 풀리면 누구라도 물 수 있다. 그런 인식 때문이 아닐까?

민주당 실무자가 작성했다는 그 문건은 적폐 인사로 지목된 공영방송 사장 및 이사들을 몰아내는 방법으로 “시민사회·학계·전문가 전국적·동시다발적 궐기대회, 서명 등을 통한 퇴진 운동 필요, 언론적폐청산촛불시민연대회의(가칭) 구성 및 촛불 집회 개최 논의” 등을 제안했다. “사측 및 사장의 비리·불법 행위 의혹 등과 관련해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를 추진하자”는 내용도 담겼다고 한다. 사장 퇴진과 관련해선 “방통위의 관리·감독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사장의 경영 비리(공금 사적 유용) 등 부정·불법적 행위 실태를 엄중히 조사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금년 11월경 방송사 재허가 심사 시 엄정한 심사를 통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예컨대 ‘조건부’ 재허가를 통한 수시·정기 감독을 실시할 수 있다”는 방안도 포함됐다고 조선일보는 보도했다.
오비이락인지는 몰라도 윤세영 SBS 회장이 지난달 11일 갑자기 회장직, SBS 미디어홀딩스 의장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아울러 아들인 윤석민 SBS 이사 및 이사회 의장도 물러난다고 밝혔다. 압박을 느끼지 않았으면 물러날 까닭이 없지 않았을까?

신정권이 언론 손보기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욕구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것이 정부와 정권의 안전을 위한 권력 과시일 경우엔 반드시 역풍을 맞게 된다. 그게 경험칙이다. 법의 힘을 빌려, 부지불식간에 ‘언론=적폐세력’의 이미지를 일반화하는 우를 범하진 말기 바란다. 그건 결국 정권뿐만 아니라 국가적 손실이 된다. 대한민국 정부의 임기는 5년이다. 단지 5년! 그리고 현 정부와 여당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민주’와 ‘국민’을 역설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 안으로 전사회적이고 장기적인 갈등구조를 만들기엔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북한의 핵이 코앞에 이르지 않았는가.
이 시대의 집권여당이라면 절대로 무리한 시도를 할 리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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