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과 대립하며 ‘탄핵대비’ 오해도

‘김이수 대행’ 지키기
대통령 ‘정중한 사과’
야권과 대립하며 ‘탄핵대비’ 오해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페이스북에 “수모를 당한 김 권한대행(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께 대통령으로서 정중하게 사과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전날 국회 법사위의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 권한대행이 야당의 반대로 인사말조차 하지 못한 데 대한 유감표명이었다. 문 대통령은 “헌법재판소법에 의해 선출된 헌재소장 권한대행에 대해 위헌이니 위법이니 하며 부정하고 (국감)업무보고도 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국법 질서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국회의원들께도 3권 분립을 존중해 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청한다”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수모를 당한 김 권한대행(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사진 왼쪽)께 대통령으로서 정중하게 사과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사진@문재인대통령 페이스북>

[이진곤 칼럼 @이코노미톡뉴스(이톡뉴스)] ‘정중히’라고 표현했지만 물론 ‘압박’이었다. 김 권한대행의 재판소장 임명을 동의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국감장에서 창피까지 준 국회의원들에게 들리라고 한 말이라 하겠다. 그런 점에서는 “어디 한 번 해 보시죠”라는 결기까지 느끼게 된다.
문 대통령은 “헌법재판소법과 규칙은 헌재소장 궐위 시 헌재 재판관 회의에서 권한대행을 선출하고 선출이 있기 전 까지는 헌재재판관 임명일자와 연장자 순으로 권한대행을 맡도록 규정하고 있다”라며 “지금 현재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헌재소장 권한대행인 것이며, 이에 대해 대통령과 국회는 인정한다, 안 한다 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야당 겨냥한 압박성의 SNS 글

그 나흘 전, 청와대는 한재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당분간 유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헌재 재판관 전원이 찬성한데 따른 결정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야당이 이에 반발해 국감을 보이콧했고 문 대통령이 이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헌법재판소에 대한 법 규정에 대해 생각해 보자. 헌법은 제111조에서 헌재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②항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④항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법리적으로는 어떻게 해석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반국민은 문자와 문맥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우선 헌재의 구성 요건은 ‘9인의 재판관’이다. 이 말은 9인이 안되면 헌재를 구성할 수 없다고 읽힌다. 결원이 생기면 충원한 후에야 그 기능과 권한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그런데 지난 3월 10일 헌재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해 ‘파면’ 결정을 내렸을 때 재적 재판관은 8명이었다. 박한철 전 재판소장이 1월 31일 임기만료로 퇴임한 이후 탄핵결정 때 까지 8인의 재판관이 심리해서 결정한 것이다. 당시에도 이는 무효라는 주장이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법에 심리 정족수가 ‘7인’인 만큼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관행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만으로는 적법성을 주장할 수 없다. 아니면 헌법 조문을 대법원의 예와 같이 고치면 된다.

대법원의 경우는 헌법에 구성요건이 되는 대법관 수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 대신 법원조직법 제4조 ②항에 “대법관의 수는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14명으로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14명의 대법관으로 대법원이 구성되는 게 아니라 대법원이 14명의 대법관을 가진다는 말이 된다. 
이런 의문에 대해 고답적인 법리논쟁으로 대응하려 해서는 곤란하다. 그건 상식인에 대한 결례다. 국민이 이해 못한다고 하면 법조문을 더 명확하게 해야 한다. ‘고도의 법리적 판단’으로 말할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인의 상식’으로 말해 달라는 것이다.  
재판소장 임명규정은 그런대로 합리성을 갖췄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법은 헌재소장의 궐위 또는 유고시 다른 재판관이, 헌재규칙이 정하는 순서에 따라 그 권한을 대행토록 하는 규정은 두고 있으면서도 시한은 명시하지 않고 있다. 법의 이런 맹점에 착안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문재인 대통령은 헌재소장 후보를 당분간 지명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의 김 권한대행에 대한 신뢰가 아주 큰 모양이다. 

의원들에게 3권 분립 존중 주문

그러나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이상 청와대가 후보 인선을 미루는 것은 옳지 않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원들에게 ‘3권 분립 존중’을 요구했지만 정작 이를 먼저 경시한 쪽은 그 자신이다. 국회의 동의권을 염두에 두지 않은 처사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 권한대행이 수모를 당했다기보다는 국회의원들 자신이 조롱을 당한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헌재의 권위 또한 실추됐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소장이라는 자리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재판관들이 찬성하기 때문에 권한대행체제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군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임시방편인 권한대행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관한 규정일 뿐 대통령의 임명권에 가름할 수 있는 권한을 창설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자신이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에 앞장섰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문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인상이다. 
“국회가 동의해 주지 않으면 말라고 하지. 그냥 권한대행체제로 가면 되지 뭐.”
그런 생각이라면 이야말로 제왕적 권력과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돌아보면 과거 군사정권 때 말고는 지금처럼 대통령의 힘이 피부로 느껴졌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장기간의 심사숙고와 연구검토를 거쳐야 할 국가적 정책이나 사업들이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전면적으로 바뀌고 있다. 국회가 지난달 국정감사를 통해 따지기도 했지만 기세가 천장을 뚫을 듯한 정부 출범  초기인 만큼 야당의 저항력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 힘이 지속될 것이다. 그렇지만 정권 측이 명심해야 할 바가 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그 후에 진보좌파 정권이 끝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리를 거듭하는 것은 우선 자신들에게 좋지 않다. 권력을 장악하면 그것을 행사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나 권력을 과시하거나 남을 징벌하는 힘은 적게 쓸수록 좋다. 그래야 국민화합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그것이 새 정부의 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다른 사람의 SNS글이라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통은 지금…그 생명줄을 쥐고 있는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했던데, 그 한신(韓信)의 고사는 지금도 되새겨볼 만하다. 
한신은 회음 사람으로 가난한 데다 방종하기까지 했다. 남에게 빌붙어 얻어먹는데 이골이 났다. 아무도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한 때 그는 회음의 속현인 남창의 정장 집에서 여러 번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장의 아내가 이를 귀찮게 여겨 새벽에 밥을 지어 이불 속에서 먹어치우고 식사시간에 맞춰간 한신에게 밥을 주지 않았다. 한신은 그 뜻을 알고 화를 내며 절교했다. 무명 빨래를 하던 아낙네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를 가엽게 여겨, 빨래를 다할 때까지 수십일 동안 밥을 주었다. 한신이 언젠가 반드시 신세를 갚겠노라고 했다. 

恩怨 너무 따지면 큰 정치 못한다

“사내 대장부가 제 힘으로 살아가지도 못하기에 내가 왕손(王孫: 젊은이에 대한 존칭)을 가엽게 여겨 밥을 드렸을 뿐인데 어찌 보답을 바라겠소?”라며 화를 냈다. 
회음의 어떤 젊은이가 긴 칼을 차고 다니는 한신더러 용기가 있으면 자신을 찌르든지 아니면 가랑이 밑을 기어가라고 했다. 한신은 가랑이 사이로 기어나갔고, 시장 사람들은 그를 겁쟁이라 비웃었다. 
한나라 5년, 초나라 왕이 된 한신은 일찍이 자신을 먹여준 표모(漂母: 빨래하는 여인)를 불러 천금을 내렸다. 남창 정장에게는 백전을 주면서 말했다. 
“그대는 소인이다. 남에게 은덕을 베풀다가 말았다.”
자신을 욕보인 젊은이를 찾아서는 초나라의 중위(中尉)로 삼고 여러 장군과 재상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장사일지니, 나에게 모욕을 주었을 때에 내 어찌 이 사람을 죽일 수 없었겠는가. 그를 죽인다 하더라도 이름이 드러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참고 오늘의 공을 이룬 것이다.”

▲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 주필, 전 논설고문)

그는 한나라 유방이 항우를 꺾고 천하를 제패하는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훗날 그의 세력이 비대해지는 것을 경계한 고조에 의해 회음후로 강등되고 연금되는 수모를 겪었다. 훗날 결국에는 고조의 황후 여태후(呂太后)에게 죽임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공을 크게 세우긴 했으나 은원을 너무 따졌고, 자랑이 너무 많았다. 
사기 회음후 열전 말미에 태사공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신의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에 대한 공훈은 주공, 소공, 태공망 등에 비할 수 있었을 것이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사마천, 사기열전, 김원중 역)
겁을 주고 징벌을 가하는 것을 능사로 하는 통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처음엔 잘 먹혀들지만 시간이 갈수록 두려움은 줄어들고 반발심은 커지게 된다. 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 모두가 유념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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