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우왕좌왕, 중국 사드보복 겹쳐…

한·미 FTA 재협상
미국발 ‘통상 쓰나미’
정부 우왕좌왕, 중국 사드보복 겹쳐…

[최택만 논객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미국발 ‘통상 쓰나미’가 우리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4일(현지시간) 한미FTA 개정협상에 착수하기로 사실상 합의했다. ‘당당한 대응’, ‘FTA 효과 분석부터’를 외치던 우리 정부가 개정협상 절차에 들어가기로 급선회한 것이다. ‘한미FTA 폐기’ 카드까지 거론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협상 전략이 한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실무진에 “그들(한국인들)에게 이 사람이 너무 미쳐서 지금 당장이라도 손을 뗄 수 있다고 말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편집@이코노미톡뉴스DB>

이번 합의로 한미 양국은 각각 국내법에 따라 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5일(현지시간)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수출한 세탁기로 인해 자국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정했다. 지난달 22일 한국산 태양광 패널에 이은 두 번째 산업피해 판정이다. ITC가 올해 말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조치를 건의하면 내년 초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발동 여부가 정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제조업 부활과 보호무역 기조를 일찌감치 천명한 만큼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경우 연간 1조 원이 넘는 삼성과 LG 세탁기의 미국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 태양광 패널과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구제조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한국산 등 수입 철강제품에 8~30% 관세를 부과한 이후 16년 만에 세이프가드가 부활하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악재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이어 미국의 통상압력 ‘쓰나미’ 까지 밀려 와 초비상이 걸렸다. 경제계에 따르면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손실 규모는 이미 150억달러(약 17조2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우애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사드 보복이 우리 경제에 미칠 경제적 손실 규모가 1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연구원 역시 사드 보복에 따른 한국 경제의 피해가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1%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했다. 우리나라의 GDP가 1조4981억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약 150억달러의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FTA 개정으로 자동차·기계·철강업에서 미국이 관세율을 올리면 앞으로 5년 동안 수출이 최대 170억달러(약 19조원) 줄고, 일자리는 15만4000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 시장에서 홍역을 치른 국내 산업계로서는 미국 시장에서도 대형 악재를 만난 셈이다. 

국내 산업·농업계 ‘전전긍긍’

이처럼 미국의 압박이 높아지지만 우리 정부와 산업계는 이에 대응할 ‘묘수’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한미FTA 개정협상과 관련해 자동차와 철강 업종이 큰 타격이 예상된다. 두 업종은 그간 미국이 무역적자 주범으로 지목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FTA에 따라 한국 자동차 관세(2.5%)를 2012년 협정 발효 후 2015년까지 4년간 유지하다가 2016년 폐지했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자동차는 무관세다. 일본·유럽산 자동차(2.5% 관세율)보다 관세 측면에서 이점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FTA 개정협상 과정에서 관세가 부활하면, 그만큼 미국 수출용 한국차의 가격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무관세 협정에 따라 한미FTA 발효 이전인 2004년부터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되고 있는 철강 분야는 전반적인 통상환경이 악화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한미FTA 개정협상을 계기로 미국이 한국산 철강에 대한 반덤핑·상계관세를 더 엄격하게 부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철강의 약 81%가 이미 반덤핑이나 상계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농업 분야도 개정협상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역전문지 ‘인사이드 US 트레이드’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8월 22일 한미FTA 공동위에서 농산물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한국의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 즉시 철폐를 요구했던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한미FTA 체결 당시 쌀을 비롯한 민감 품목 16개를 양허 대상에서 제외했다. 쇠고기는 협상 체결 당시 15년에 걸쳐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여부가 개정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경우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더큰 양보하게 될까…경제계 우려

경제계는 이같은 미국의 통상압박에 처음부터 강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더 큰 양보를 하게될까 우려하고 있다. 최근 중국 사드보복과 관련해 정부가 보여준 행동은 이같은 경제계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대책을 내놓아도 시원찮을 판에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업계의 힘을 뺐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9월 27일 가전·휴대폰업계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배터리사업의 경우 삼성, LG, SK 등 여러 대기업들이 중국에 갔지만 오히려 혜택을 받지 못하고 공장 가동률이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져 있다”며 “이런 사례들은 우리가 리스크 관리를 못한 사례”라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드 보복 영향이다. 중국 정부가 한국산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차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중국 내 전기차 배터리 판매는 거의 막힌 상태다. 배터리 업체 입장에서는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 진출할 수밖에 없었고 사드 보복 전까지는 꾸준하게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던 상황이었다. 

기업 힘을 빼는 망언은 없어야 

노영민 신임 주중한국대사 역시 지난 29일 외교부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사드 관련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해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없듯 외부환경이 본인 의지로 개선되지 않는 것에 대해 극복하는 스스로의 노력이 우선적”이라며 “자구노력은 기업의 몫”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노 대사는 또 “이마트가 철수했는데 사드와 아무 관계가 없다. 사드 터지기 전에 이미 철수 결정된 거고 매각을 위해 노력한 것”이라고 언급, 논란을 부추겼다. 

▲ 최택만(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중국과 미국이 통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우리 정부와 산업계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북한 핵실험 등으로 미국과의 안보 협력이 필요한 우리 정부가 과연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미FTA로 인한 갈등 때문에 한미 공조가 약해진다면 한국 안보에 상당히 부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서비스 무역흑자는 한미FTA 발효로 지식재산권, 법률, 금융, 여행 시장 등이 개방되면서 2011년 69억 달러에서 2016년 101억 달러로 증가했다. 하지만 정부는 해당 기업과 긴밀히 협의하여 최적의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긴장하고 있는 기업에게 ‘자구 노력은 기업의 몫’이라는 발언해서 힘을 빼는 막말을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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