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권 생활수필 칼럼

▲ 최수권(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최수권 칼럼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추석이 지나자 선선한 날씨가 가을을 재촉한다.
도시의 건물사이 작은 공터에선 풀벌레 소리가 여물어 가고 있다. 그렇게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자연의 신비는 참으로 경이롭다. 이 척박한 도시의 공간에 생명이 존재 한다는 게...,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도시의 이면 도로를 지나면서 서늘해진 날씨와 가을밤이 몰고 온 계절의 서정에 묘한 기분에 휩싸여본다.
5층 넓지 않는 베란다엔 여러 종류의 꽃과 나무를 기르고 있다. 계절별 개화  시기를 맞춰 가꾸기 때문, 봄부터 가을까지는 늘 화단엔 꽃이 피고 있다. 물론 아내가 키우고 나는 그저 눈 호강만을 즐기고 있다. 가끔 화초에 물을 주는 것으로 아내 일을 거들고 있다.
언제부턴가 화단에는 참새 무리들이 찾아들었고, 느긋하게 수다를 떨다 가기도 했다. 인근 산에서 내려온 철새들도 들리곤 했다.

어떤 날 새벽은 한 무리의 새소리에 놀라 깨는 날도 있었다.
삭막한 도시 안에서 새들과 조우할 수 있다는 것은 생활에 잔잔한 기쁨이기도 했다. 나는 새들을 위해 먹이통을 준비하고, 오랫동안 그들을 보살펴 주었다. 
찾아오는 새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종류도 다양해 졌다. 이들은 무리별로 일정한 시간에 찾아와 꽃밭에서 한창을 노닐다가 떠나곤 하였다.
이들이 떠나고 나면 배설물들을 청소해야하는 번거로움도 있었지만, 그런 수고는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작년 연말 조류인플루엔자로 조류들에 대한 유해성의 보도를 접하고 먹이 주는 일을 중단했다. 그래도 새들은 새벽녘부터 찾아들었고, 먹이를 내놓으라는 듯, 소리 높여 울어대고 있었다.
여름, 어느 날 아내는 저 녀석들이 1년을 공들여 키워온 나무들의 빨강열매를 다 따 먹었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다년생 꽃나무의 열매를 몽땅 먹어 치워 버렸다.

“새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러겠느냐” 고 위로 했지만.
“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도록 먹이를 준 게 잘못이다”며 나를 타박했다. 그리고 야성은 야성답게 먹이 사냥을 해야지. 왜? 먹이통까지 준비해서 야성을 잃게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투명한 플라스틱 병을 이용해, 나머지 꽃나무의 열매에 덮어 씌워 새들의 접근을 막았다. 아내는 내심 만족해하는 눈치다.
이후, 새들은 방범용의 플라스틱 주위를 맴돌며 애를 쓰고 있었다. 망을 보던 나는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갔다. 
놀란 새들이 후닥탁 날아올랐지만 멀리가지 않고 전신주에 앉아 빤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핀치들 이었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애처롭게 들렸다. 먹이를 달라고 떼를 쓰는 눈치였다.
나는 플라스틱 방범용 덮개를 풀어내고 자리를 피했다.

다음날 아침, 아내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1년을 공들여 만들어 논 나무들인데, 열매를 몽땅 도둑맞았다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새들은 그 열매가, 죽고 사는 생사의 문제이고, 화단 주인은 그 열매가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 정서의 포만감이지.”
“애초에 먹이통을 준비하여, 야성의 새들을 모아들인 사람이 더 나쁘다”고 분을 삭이고 있었다.
그 또한 일리 있는 말이지만, 딱 부러지게 결론짓기는 곤란한 문제다. 도시의 공간에 살아가는 미물들의 생태적인 환경도 고려해야지 말이다. 아내의 처사가 야박하다고 나는 대들었다. 

야심한 저녁, 가을밤.
베란다 화단에 섰다. 뒤켠 정원에는 계절로 여물어진 풀벌레의 합창이 요란하게 밤의 정적을 가른다.
맑은 하늘엔 휘영청 밝은 달이 가슴깊이로 스며온다. “살아 있을 때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잠언이 있다. 요즈음 나는 가끔 뒤를 돌아보게 된다. 지나온 여정이 상당히 어려웁고 참담했던 시절들을 떠올린다.
참새가슴처럼, 여리디 여린 팔닥거린 외로움을 기억하면서...,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은혜롭지 않는 게 어디 있고 그 안에 삶이 아닌 게 어디 있겠는가? 지나온 세월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국에서 혼자 살아가는 작은 아들이 문득 그리운 밤이다. 근간 베란다의 화단엔 새들의 왕래가 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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