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이제사… 세월의 가르침인가

늙음이야 절로 침노…
백련초해(百聯抄解)
뒤늦게, 이제사… 세월의 가르침인가
▲ 백련초해 목판. <사진@국립한글박물관>

[김숙 칼럼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지난 시월은 한 달 중 열흘이 연휴였다. 게다가 시월 첫날부터 연휴로 시작되었다. 휴일이 끝나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 뒤를 바짝 따라 온 십 일 월이라니... 턱까지 차오른 숨을 이제야 크게 몰아쉬어 본다. 
언제부터인지 세월의 흐름이 너무나도 빠르고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쏜 살 같은 세월, 그러나 그럴수록 그 상황을 살아내기에는 녹록치 않았을 시간들... 돌아보면 따분하고 싫증났던 날들일수록 더 빠르게 지나갔다고 인식됨은 꽤나 역설적이다.

웃자는 말로 삶은... 계란(?)이 아니라, 삶은 언제나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이상은 떡~하니 서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풀기 어려운 숙제로 머리 아플 때도 있다, 많다. 감당할 수 있는 무게라면야 어떻게든 이고지고서라도 버티어 낸다. 

이러저러한 춘풍추우의 흔적들을 가려내 보고 자리매김해 보자니 대개는 순풍에 돛 단 듯한 세월이었다기 보다는 힘겹고도 허술했던 순간들이 훨씬 많았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그래도 이런들, 저런들,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누구든 공평하게 하루 스물 네 시간을 보내고 맞이한다. 저마다 저에게 맞는 “세상 사는 이야기” 라는 밑그림을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거기에 걸맞은 색칠도 하고 덧칠도 한다. 
그러다가 훌쩍 지나간 세월이 어언 반세기... 그 위에 또 몇 년이 겹쳐진다.

花不送春春自去(화불송춘춘자거)
人非迎老老相侵(인비영노노상침)
꽃은 봄을 보내지 않았어도 봄은 스스로 물러가고
사람은 늙음을 맞이하려 하지 않았어도 늙음이 저절로 찾아오는 (침노하는)구나

花袁必有重開日(화원필유중개일)
人老曾無更少年(인노증무경소년)
꽃은 시들어도 다시 필 날 있거니와
사람은 늙으면 젊은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네 

필자는 지난 여름날 무더위와 씨름하며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한 방편으로 위의 漢詩를 택하여 제법 자세히 파고들었다. 이 빼어난 時文이 [百聯抄解]의 일부라는 사실은 경제풍월의 지식지킴이 독자들은 이미 다 알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필자는 부끄럽게도 수십 년이 지난 학창시절의 기억을 빼고는 구체적으로 한시를 접한 것은 철들자 이번이 처음이었다. 

문인화를 공부하는 필자의 선배에게 우연히 이 글을 건네받았는데 넘겨보던 순간 잔잔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 울림은 점점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평소 시문을 포함한 의미 있고 품격 있는 문구에 남달리 관심이 많음을 알아챈 필자의 스승은, 한 자 한 자 붓으로 쓴 다음 책으로 엮어 보기에도 그럴싸한 漢詩集을 만들어 주었다. 
 [*백련초해: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성리학의 대가인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엮은 한문입문서로 先人의 七言古時 중에서 베끼고 해석한 글] 

여태 살아 온 날들은 꽃 한 송이, 달 빛, 별 빛, 한 줄기 바람조차도 여유롭게 느낄 수 없었던 생활이었다. 그렇다 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일러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뚜렷한 명분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랬음에도 처해진 상황은 항상 달리는 기차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천천히 쉬어 가야 함을 알게 되었다. 

▲ 김숙 편집위원(자유기고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무엇이 중하고 무엇이 덜 중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최근에는 아예 쓸모없음은 가려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러던 중 심중을 울리는 큰 글을 만난 것은 좋은 인연이며 행운이라 할 수 있겠다.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옛 聖賢의 발자취를 따라 그를 닮아가려 애쓰는 자신이 스스로 보기에도 흐뭇하다면, 자가당착(自家撞着)일까...?

필자에게 자연친화적인 사고를 갖고 가장 자연스럽게 살 수 있도록 지침이 되어주는 백련초해, 이 글이 지금 필자의 손에 들려져 있음은 참 멋진 일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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