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단지 호남석유 탄생의 배경

울산 이어 전남 여천
석유화학 웅대계획
여천단지 호남석유 탄생의 배경
▲ <사진갈무리=여천공업기지 동영상(KTV)>

중화학공업은 대규모의 장치산업이므로 업종 상호간에 연관 효과가 크다. 따라서 한 곳에 집중시켜 단지화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석유화학공업의 경우는 이것이 철칙이다. 입지선정이 잘못되면 중화학공업 전체의 효과적인 운용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입지선정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외국 용역회사에 입지타당성 조사용역을 맡긴다. 

[김광모 칼럼(전 청와대 중화학기획단 부단장) @이코노미톡뉴스)] 여기에는 상당한 기간과 자금을 필요로 하므로 중화학공업의 입지선정은 외국용역에 맡기지 않고 과거 비료공장과 정유공장건설을 위한 용역 결과를 토대로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사후에 적정 여부를 검토하도록 하여 결정하였다.
중화학공업에 포함된 석유화학공업정건설은 울산에 기존에 설치된 단지를 확장하고 전남 여천(현재 여수시)에 신규로 세계 일류의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정유공장과 석유화학 공장은 공생 공사하는 관계이다. 정유공장이 있으면 석유화학공장이 있어야 하고 석유화학공장은 인근에 원료공장으로서 정유공장이 없으면 안 된다. (물론 예외는 있다.)
따라서 중화학공업 정책상의 석유화학 공장건설은 울산에 이미 건설한 석유화학 단지를 확장하고 여천(여수)에 신규로 대규모 석유화학 단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86년에는 세계 10위권의 석유화학 국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국영에 의한 대한석유공사(유공)의 울산정유공장이 혁명정부의 제1차 5개년계획사업 중 최중요 사업으로 착공되어 64년 (5월7일)에 박정희 대통령 참석 하에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어느 누구도 예기치 않았던 급속한 산업발전의 덕분으로 일일 3만5천 배럴의 정유공장을 가동 2년 만에 5만5천 배럴로 확장을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민간에서 60년대 중반 (66년)부터 제2장유공장의 필요성을 제기하여 정부의 허가를 얻으려고 암암리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중 흥미를 표시한 가장 적극적인 기업체는 삼성, 럭키와 효성그룹이었다. 정부(상공부)에서는 제2정유는 민간으로 하되 민간업체로부터 사업계획서를 받아 실수요자를 결정키로 내부방침을 정했다. 이 방침이 효력을 발생하기 전에 럭키화학에서 돌연 사업계회서가 정부에 제출 되었다. 
이와 동시에 상부(청와대)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사업계획의 내용은 전남 여천군 삼일면에 일산 6만 배럴의 정유 공장을 미국의 Major Oil인 CALTEX와 합작으로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럭키가 선수를 치게 된 배경은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 사범학교 동창으로서 박대통령이 오로지 만나주는 서정귀씨(당시 유공대리점 경영)가 대통령께 제2정유공장을 전남 여천에 건설코자 정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박 대통령은 정부의 경제개발 계획이 시작된 이래 영남지역에만 공장을 짓고 호남을 푸대접한다는 사실에 신경을 써왔다.
서정귀의 호남에의 제2정유공장 건설에 박대통령은 호의적인 검토를 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그 당시 여타 희망업체는 진해나 거제지역을 고려하고 있었다. 여수-목포 지역은 바다의 수심도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3~4m나 되어 울산-진해지역(1m)에 비하여 항만건설 조건이 불리하였다.
정유공장에는 일반적으로 30만톤급(VLCC) 유조선이 하역하려면 20m이상의 수심이 있어야 부두에 접안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불가능 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공장 가까운 앞바다에 해상하역시설(1MODCO BUOY)을 설치키로 하였다.

박 대통령의 호의적인 반응에 따라 럭키에서는 즉시 정유공장설립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위원장에 당시 구평회 상무를 임명하고 한성갑 부장이 실무책임자가 되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였다.
유공에 근무하던 실무자들(이은종, 강태영)이 이에 협조하였다. 
합작회사로서의 CALTEX 선정은 Gulf Oil이 한국의 유공진출이 대성공을 거둠에 따라 CALTEX는 한국진출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다. 이때 럭키의 제의가 들어옴에 따라 럭키의 합작선 획득 노력과 CALTEX의 한국진출 희망이 잘 부합되어 용이하게 계약이 체결되었다. 이리하여 럭키의 제2 정유고장건설계획은 호남지역에 건설한다는 대의명분으로 어렵지 않게 정부의 허가가 나왔다.(CALTEX는 현재에도 GS-ALTEX로 존립) 
따라서 럭키의 제2정유공장 건설은 박정희 대통령의 호남지역 특별배려라는 비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호남정유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대통령은 기·준공식에 모두 참석하였고 전남에 행사장 있을 때 CALTEX의  게스트 하우스 유하셨다.(4회)
참고로 69년 6월 3일 준공식 때의 치사의 모두를 게재하여 본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67년 2월 바로 이 자리에서 기공식을 올렸습니다. 그때는 앞에 남해바다를 끼고 있는 쓸쓸한 농촌의 시골에 불과했는데 오늘날 이같이 웅장한 현대시설의 정유공장을 준공하게 된 것에 대하여 여러분들과 충심으로 경하하여 마지않습니다.”
한국의 정유산업은 64년에 유공의 35,000배럴로 시작하여 오일쇼크인 73년에 175,000배럴(유공, 호남, 경인 3사)을 거쳐 현재는 3,234,000 배럴로 세계 6위의 정유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여천 석유화학단지 건설

여천군 삼일면에 정유공장이 건설된 이상 여천지역에는 광활한 대지가 있고 항만, 철도, 도로, 전기, 용수 등 지원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석유화학 단지로서는 천혜의 단지였다. 정부(건설부)는 중화학추진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공업지역 5,510천 평, 주거지역 3,150만 평을 비롯하여 총 13,340천 평을 단지 지역으로 고시하였다.
단지 조건이 세계 일류 석유화학 단지를 수용할 수 있으므로 최초에는 연산 100만 규모의 2개 계열의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여 사람으로 말하면 양폐의 역할을 하도록 계획하였다.
외국의 합작사로 일본의 미쯔이와 미쯔비시가 이에 동의하여 합작회사까지 설립하였다.
그러나 약 1년간의 사업추진 기간 도중 일본의 양사는 세계 석유화학 공업의 불황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갖은 시련을 겪은 끝에 가장 실현가능성이 있는 방법으로 에틸렌 기준 35만 톤의 석유화학 단지건설을 계획하여 79년 6월 5개 공장의 기계적 준공을 거쳐 80년 1월 29일 최규하 대통령 참석 하에 여천석유화학공장 합동준공식을 거행하였다.
당초 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참석 하에 준공식을 거행키로 하였으니 청와대 경호실의 월권행위로 돌연 이날이 결과적으로 삽교천행사로 변경되어 박대통령 서거사건이 발생하였다.
여천단지에는 여천석유화학단지의 정부의 의도를 보여주기 위하여 선발사업으로 일산 1천 톤의 메탄을 공장과 암모니아 연산 60만 톤을 기준으로 한 종합복합비료공장이 제7비료(남해화학) 선발사업으로 건설되었다.
또한 천단지에는 창원기계단지와 마찬가지로 약 3백만 평에 주거인구 14만 명을 수용하는 최신의 배후도시가 건설되어 있다. 현재 여천석유화학 단지는 에틸렌 연산 4,140천 톤의 규모로 당초의 목표인 세계적인 석유화학단지로 되어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불멸의 업적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중 백미는 중화학건설이다. 중화학공업화 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은 오늘의 경제대국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즉 경제강국으로 만든 요인 중 제일 큰 요소가 중화학단지 건설이다. 포항의 철강단지, 온산(울산통합시)의 비철금속, 조선의 울산과 거제, 기계의 창원, 전자의 구미단지와 석유화학의 울산과 여천(여수시) 단지이다. 40여년 전에 건설된 이들 단지는 현재에도 위용을 발휘하고 있다. 6개 업종의 단지건설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이 기계의 창원단지와 석유화학의 여천(여수시)이다. 경제풍월 지면을 통하여 2회에 걸쳐 비사를 섞어가며 단지 건설의 역사를 기술하여 보았다. 이들 모두 박정희 대통령의 혜안과 비전 그리고 통치철학으로 탄생되었다. 

▲ 김광모 전 청와대 중화학 기획단 부단장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 기반이 되어 대한민국은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이 정부는 과거만을 캐내는 적폐, 끊임없는 반기업, 반성장, 인기주의에 따른 복지 정책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기업을 살려 성장을 이끌고 고용을 가져오게 하며 분에 맞는 복지 등 건전한 정책을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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