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식(申禹植) 회장

모암(帽岩) 신우식 추모
일생일업(一生一業) 외골 참모습

[제재형 칼럼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만남이 있는 곳에 헤어짐이 뒤 따른다’고 했지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원리를 풀이한 말입니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더니 추석연휴를 1주일 앞둔 어느 날 느닷없는 부음을 접하니 황망스럽기 그지없고 새삼 인생무상을 느끼게 됩니다.

▲ 고 신우식 선생 추도식

신우식(申禹植) 회장님은 1934년 4월 10일 경북 김천시 모암동(帽岩洞) 149번지에서 고령신씨 안동공파 신치우(申致雨)공과 임순(林順) 여사의 맏아들로 태어나 2017년 9월 22일 오후 5시에 눈을 감았으니 향년 84세요, 부인 임정자(林靜子) 여사와의 사이에 외동딸 신경순(申敬順)과 사위 문형석을 상주로 뒀습니다. 태어난 동네 이름에서 아호를 얻은 신 회장님은 스스로 소집한 소로회(素露會, 소로는 故이혜복 선배의 아호) 61차 오찬모임을 사흘 앞두고 이승을 떠났으니, 분명 약속 위반이지요. 대한언론인회 12대 회장 신 회장님은 사단법인 대한언론인회 12대 회장(2000년 2월~2002년 1월)을 역임하신 나의 선임자입니다.

대한언론인회는 1977년 4월 신문의 날(7일)에 창립된 신문, 방송, 통신사의 편집·보도부문 퇴직 원로기자들의 친목·복지단체인데 이관구, 김광섭, 이혜복, 신우식, 이정석 등 나의 선임 역대 회장님들은 모두 유명을 달리한 셈입니다. 
대한언론인회는 9월 25일 오후 4시 서울대학병원 영안실에서 ‘언론인장 추모식’을 갖고 저와 조창화, 홍원기, 김은구, 이병대 회장 등 역대 회장들이 분향했으며 최서영 회우가 추도사를 낭독하고 남시욱, 계창호, 한기호, 배병휴 회우 등 많은 전·현직 언론인들이 조문하며 모암의 천국행을 환송했습니다.

건강 3계 : 넘어지지 말라

모암은 만날 때마다 ‘모자 쓴 바위’ 같이 신사다운 풍모로 유머와 일본어를 섞어 “넘어지지 말라, 감기 들지 말라, 무리하지 말라”고 노년기의 건강수칙을 강해했었는데, 이제 본즉 본인이 먼저 넘어졌으니, 남은 자에게 시사하는 바 많을뿐더러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인 것 같습니다.

모암의 빈소 영전에서 잠시 노년기의 건강문제를 생각해 봅니다. 65세 이상의 노인은 83만명을 헤아리는데 교통사고, 질병(암, 뇌졸중, 심장마비, 고혈압, 당뇨 등) 다음이 낙상사(落傷死)라고 하니 만성질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넘어지면 죽는다’가 아닐까 싶군요. 낙상은 추운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사고로서 하체의 힘이 약해져서 몸의 중심을 잃으면 미끄러운 목욕탕, 눈길, 빙판길에서 넘어지기 쉬우니 급성 폐렴과 함께 각별히 조심해야 할 대목입니다.
허리, 엉덩이(고관절), 무릎, 발목 등 하체부위가 부러지거나 부서지면 치명상이 되기 쉽습니다. 노인의 건강은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되니 되도록 눕지 말고 많이 걸으면서 감기, 심부전증, 패혈증 등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결코 운이 나빠서 넘어지는 게 아니라 주의소홀, 예방미흡이 낙상 원인으로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조심, 또 조심하라’고 모암 선생은 우리에게 교훈적인 경고를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먼저 보내는 슬픔을 억누르면서 모암 선생의 발자취를 잠시 더듬어 봅니다. 1957년 서울대 문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함과 동시에 서울신문 견습기자 4기생으로 언론계에 발을 디딘 모암은 한눈팔지 않고 언론문화 창달에 외길로 정진했습니다.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주일특파원, 주간국장, 스포츠서울 이사, 편집제작담당 이사, 전무이사, 대표이사 사장(발행인)에 이르기까지 순수한 ‘서울신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 가시는 날, 고인의 유해와 영정은 태평로 프레스센터에 위치한 서울신문사를 돌아 후배 기자들의 영결례를 받으며 양주시 승동교회 공원묘지에 이르러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됐습니다.

▲ 신우식 선생 ‘ 언론인장 추도식’ 에서 전· 현직 언론인들의 조문.
승동교회 집사로 신앙생활

그 사이에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신문학을 연수(73년)했으며 방송심의위원(85년) 일본연구회 회장, 고철회 회장,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86년), 한자녀가족회 회장(89년), 한국언론연구원 원장·이사장, 언론중재위원(90년), IPI 한국위원회 이사, 한국신문협회 부회장, 연합통신 이사, 아시아신문재단 한국이사, 신문윤리위원회 이사장,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한국영상자료원 이사장 등 숱한 곁가지 직함을 거쳐 왔습니다.
모암은 대한언론인회 회장을 지낸 후 2007년 3월 1일 서울신문 사우회를 창립, 초대 회장에 취임했으며 이듬해 ‘서울신문 사우회보’를 창간했습니다. 회장직을 물려받은 김소선 회우는 지난 9월 25일자 제39호를 통하여 ‘사우회 10년의 발자취’ 특집을 싣고 1천여명의 회원에 발전기금 5,630만원을 적립했다면서 신우식 회장님의 ‘조용한 리더십’을 그리워 했습니다.

끝으로 모암 신우식 선생이 공부한 김천 중·고등학교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렵니다. 조선왕조 끝자락 고종황제의 상궁 최송설당이 임금님의 하사금으로 1927년 김천 땅에 세운 이 학교는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자녀 교육에 힘쓴 공로를 추모하여 해마다 5월 5일 ‘송설동창회 문화체육 축제’를 열고 송설당 영전에 제사를 모신다고 합니다. 학교법인 이사장이었던 故김세영(함태탄광 대표, 5·7대 국회의원) 선생은 정치가 이병하, 태완선과 교류하는 한편 사학(私學) 발전에 심혈을 기울여 많은 인재를 길러냈답니다.

이름난 김천사람으론 백남억, 김철안(女), 이선중, 정해창, 박정수(이범준), 정승화 장군 등이며,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는 육군 대위시절 김천고교 군사교련 선생을 맡았었다고 합니다.
특히 언론계의 에이스(ace)로는 유명을 달리한 최석채, 신우식의 뒤를 이어 배병휴(경제풍월 발행인)가 고향의 명예를 걸고 민주 언론 창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모암의 미망인 임정자 여사는 승동교회 권사로서 30년간 찬양대를 지휘한 성악가 일뿐 아니라 남편의 신앙 길잡이가 됐으며, 아우 신정식(申廷植, 고대 경영학과 55학번·한양대 교수)은 형님의 장례절차를 꼼꼼히 보살펴 ‘남다른 형제우애’의 본보기가 됐다는 평판입니다.

▲ 제재형 전 대한언론인회 회장

비록 회사는 다르지만 1957년 봄에 신문기자를 시작하여 올해 ‘기자 60년’ 회갑을 맞이한 갑술생 동료로서, 또 대한언론인회를 섬긴 동역자로서 깊은 우정과 존경의 뜻을 담아 여기 추모의 글을 띄웁니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무거운 짐 내려놓고 부디 평안히 쉬소서. 삼가 비오니 영생복락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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