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살고 못살고는 지도자에 달려있다

동서고금의 살아있는 역사
정치가 경제의 덫
잘살고 못살고는 지도자에 달려있다

[노원조 칼럼 @경제풍월] 17세기 스웨덴 정치가 옥센세르나 백작은 아들에게 이렇게 유언을 했다. 
“내 아들아, 이 세상은 얼마나 하찮은 자들이 다스리는지 똑똑히 알아 두거라”(바바라 터크먼의 ‘독선과 아집의 역사’중에서) 
정권의 중심에서 평생을 보낸 노정치가의 고뇌에 찬 뼈아픈 정치평론이다.
지구상의 200여개의 국가 중에서 아직도 수많은 국가들이 약 3,000여년 전 그리스 폴리스 도시 국가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정치형태로 국가를 다스리고 있다. 그 결과로 자국의 국민들은 너무나 처참한 몰골로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며 환자에게 치료할 약이나 주사 한대 놓지 못하고 끓인 물만 먹이며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이 먼 아프리카의 빈민국 뿐만 아니라 바로 휴전선 이북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조시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잘살고 못살고는 임금님 탓이 아니라 대자연의 힘 천재지변, 홍수, 가뭄에 의해 일어나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하늘의 탓만 하고 살았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사람들은 역사를 알고, 어떤 지도자가 정치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각국의 부(富)의 부침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아하! 잘살고 못살고는 하늘의 뜻도 아니고, 또한 개인의 의지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의 나라정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국가의 부나 개인의 부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체험하게 된 것이다.

임진강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은 똑같은 햇살이 비추어 지고,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고, 태풍철이 아닐 때는 똑같은 편서풍이 불어오는 땅인데도 불구하고, 압록강 이북 중국은 등소평 이후 공산주의의 분배정책에서 자유경제체제로의 전환으로 밤이 되면 단동은 불야성을 이루지만 신의주는 암흑의 천지로 변해 있다. 임진강을 사이에 둔 남과 북의 차이는 글로써 새삼스럽게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확연한 차이가 바로 지도자의 통치철학의 차이에서 명암이 분명히 드러난 것을 알 수 있다.

북한 뿐만이 아니라 남미의 좌파주의적 분배정책으로 빈민을 구제하겠다는 인기정책으로 그곳 나라들의 경제가 해가 거듭할수록 슬럼프에 빠져 들고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6·25 전쟁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에디오피아도 당시에는 우리나라 보다도 소득 수준이 높았었다. 그런데 북한과 손잡고 사회주의 길로 한번 빠진 것이 경제의 치명타가 되어 지금도 GNP 100달러 언저리를 맴돌아 깨어나지를 않고 있다.
오늘의 우리의 서민경제가 한해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상층권의 몇몇 정치인들만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일반 서민이나 경영인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향후 살아갈 방도가 암담하다고 하고 있다.
높은 나리들께서 “현재의 경제상태가 무엇이 어떻다는 것이야. 그리고 모든 지수를 보아라. 잘못되고 있는 곳이 어디 있단 말이냐”고 연작안지(燕雀安知) 홍곡지지(鴻鵠之知)를 들먹이며 서민이나 아랫것들을 탓한다면 오늘의 하층민들은 할 말이 없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회전에 관하여’라는 지동설 주장을 인정하다가 종교재판에 끌려가 그 논리를 철회하라는 강력한 압력에 굴복하면서도 재판정을 나오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남긴 갈릴레오처럼 지금의 경제부분의 온갖 정책은 “그래도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데”하는 얘기는 경영자들만의 생각일까? 무쇠 솥에 불을 지피지 않고 물만 끓이려고 하는 것처럼 가진 자들의 투자유인책은 쓰지 않으면서 아니 투자 억제책을 쓰면서 어떻게 경제를 살릴 것인가? 누구나 새로운 투자를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꼽아보는 것은 정책과 법의 일관성이다. 이 두 가지가 조령모개식으로 자주 바뀌면 어느 누구도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는다. 

▲ 魯元祚(노원조) 편집위원(경제평론가)

이는 누구나 위험한 밤길을 걷지 않겠다는 이치와 같은 맥락이다. 백배의 이로움이 없으면 법을 바꾸어서는 안되고 10배의 편리함이 없이는 도구를 바꾸지 말라는 성현들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할 필요가 절실할 때다. 총체적으로 기업인 두들리기 정책 속에서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은 경제장관도 아닌 김성호 법무장관께서 친기업 방침을 밝혀 경영자들은 온갖 탁수 속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과 청량함을 느끼게 해주는 언행이라고 반기고 있다. 
그분의 높은 고견이 경영하는 자들에게 실제로 얼마나 힘이 되어 줄지는 모르지만 오늘의 경영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 속에서 한번 기대해 볼 수밖에 없다. 김성호 법무장관님께 좀 더 구체적으로 분발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90호(2007년 3월호) 기사입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