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탄 맞고 귀순한 북한병사 보니…

북한 주민 생활상
이토록 참담하다니
총탄 맞고 귀순한 북한병사 보니…

난달 13일 오후 북한군인 1명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귀순했다. 그냥 귀순한 게 아니라 총탄을 뚫고 뛰어들었다. 아주대학교병원 이국종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 센터장의 집도로 진행된 1차 수술에서 총탄 5발, 2차 수술에서 1발이 제거됐다. 그러니까 최소 6발의 총탄을 맞은 셈이다. 40여발을 쏘아댔다니 벌집을 만들기로 작정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 유엔사가 공개한 북한병사 귀순 CCTV 장면.

[이진곤 칼럼(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주필, 현논설고문)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눈앞에 탈출자를 목격한 이상 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너무 잔인하다. JSA구역 내에서는 소지할 수 없게 돼 있는 소총(AK-47)까지 사용됐던 모양이다.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느냐고 북측에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원래 그런 집단이기 때문이다. 수십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이면서도 눈 하나 깜빡 않는 자들에게 탈주자의 목숨이 안중에 있었을 리 없다.

귀순병사 몸에 무수한 기생충

그렇지만 그 문제를 말하자고 쓰는 글이 아니다. 집도의 이 교수의 브리핑에서 받은 충격을 옮겨 놓자는 것이다. 귀순 병사의 내장에는 총탄으로 관통된 부위가 아주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부위들에서 무수히 많은 기생충들이 뚫고 나오더라고 했다. 가장 큰 기생충은 길이가 27cm에 달했다며 “20년 이상 외과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큰 기생충이 몸속에서 나오는 것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그런 몸 상태로 군대 근무를 했다니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JSA구역의 근무여건은 상대적으로 근무자는, 아마도 특별히 선발됐을 것이다. 당연히 대우도 다른 병사들과 달랐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기생충 감염이 심각해서 외과 의사를 놀라게 했다. 그렇다면 일반 부대에 근무하는 병사들이나 일반 주민들의 몸 상태는 알아보나 마나다.
짐작컨대 북한의 인분 농사가 사람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기실 우리도 70년대 이전까지는 그렇게 농사를 지었다. 특히 농촌에는 기생충이 만연했다. 70년대 중반 이후 화학비료가 충분해 지면서 이 같은 상황은 크게 개선됐다. 물론 지금도 기생충 감염자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인분 농사로 인한 감염은 사라졌다. 대신 애완동물, 민물고기 등이 주요 감염원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한반도는 1945년 8월 15일 일왕(日王)이 무조건 항복 선언을 하는 것과 동시에 분단됐다. 그 이전 8월 8일 소련은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북한을 향해 밀고 내려왔다. 12일 소련군은 청진에 상륙했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탄 투하로 기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한반도에서 소련군의 진군을 막을 세력이 있을 리 없었다. 
반면 미군은 600마일이나 떨어진 오키나와에 겨우 도달한 참이었다. 소련이 이미 한반도에 진입한 이상 미소 간에 항복접수지역 획정이 불가피했다. 미군으로서는 가능한 한 획정선을 북쪽으로 밀어올리고 싶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소련과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속도였다. 미군은 너무 멀리 있었다. 빨라야 9월 중순에나 한반도에 도착할 것이었다. 

전쟁성의 맥클로이(John J. McCloy) 차관보는 8월 10일과 11일 밤에 본스틸(Charles A. Bonesteel) 대령과 딘 러스크(Dean Rusk) 대령을 펜타곤의 자기 사무실 이웃 방에 불러 구획선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가능한 한 북쪽으로 올라간 선을 찾아야 할 것이었다. 두 사람은 미군의 진군 속도 등을 감안, 북위 38도선을 일본군 항복 접수선으로 획정했다. 한국의 수도를 미군 책임지역에 포함시키는 것도 중요 고려사항이었다. 당시로서 그 선은 과한 욕심이었다. 

주민을 굶기면서 전쟁 놀음만

맥클로이는 이 안을 11일 스팀슨(Henry L. Stimson) 전쟁성 장관에게 보고했다. 스팀슨은 즉시 일반행정명령 제1호의 초안을 작성,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트루먼은 13일 영국, 소련 및 중화민국에 이를 전달했다. 어느 나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딘 러스크는 47년 제81차 미 하원 외교분과위원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나는 당시 소련이 38도선을 수락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한반도에서의 우리의 군사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더욱 남쪽으로 내려온 선을 주장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이덕규, 미국의 대한정책과 한반도 분단의 배경).

한반도에 이 같은 구획선이 설정되기 전까지 한반도는 한반도였을 뿐 남·북한의 개념은 없었다. 일본이 항복하는 것과 동시에 이 구획선은 효력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 선은 결국 분단선으로 고착되고 말았다. 분단되는 순간 남북에는 다른 체제가 들어서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 후 7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이 기간 동안 대한민국의 경제규모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45배에 이를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지난달 14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은 북한 주민 과반수가 식량과 의료 지원 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적시했다. 그리고 전체 주민의 약 4분의 1이 만성 영양실조 상태라고 밝혔다. 판문점 귀순 병사의 몸에서 기생충이 무수히 나왔다는 게 특정인의 경우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로써도 확인된다. 

이처럼 주민들을 기아상태에 몰아넣고 있으면서도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에는 엄청난 돈을 퍼붓고 있다. 우리 국방부는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2011년 말부터 지난해 7월까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최소 10억 달러에서 최대 30억 달러를 쏟아 부었을 것으로 추산했다. 30억 달러라면 국제평균시세로 약 790만 톤의 쌀을 살 수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올해 북한의 쌀 생산량을 170만 톤으로 전망한 것을 감안하면 4.6년 치의 생산량에 해당하는 금액이다(VOA 11.15. 인터넷판). 김정은 일당이 자신들의 심리적 안정과 자신감을 위해 주민의 삶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8일 한국 국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북한을 ‘지옥’으로 명명했다. 지옥이란 ‘영구적인 고통’을 말한다. 북한은 대다수 주민들에게 영구적 고통을 주는 곳이라는 뜻이다. 
원래 하나였던 남북한이 둘로 나뉘어 70여년을 지내는 사이에 이처럼 엄청난 빈부 차이를 보이게 된 요인은 뭘까? 주민들끼리는 전혀 차이가 없다. 자연적 여건에서는 서로 일장일단을 나눠 가졌다. 남쪽은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경작면적도 넓다. 그렇지만 북쪽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자랑한다. 경제적 발전의 바탕이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북한이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춘 것이다. 

그런데도 여기가 ‘헬조선’인가

그런데도 경제력이 천양지차로 벌어진 이유는 한 가지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국가 경영능력, 그러니까 통치자의 리더십이다. 
46년 2월 9일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소련에 의해 수립됐다. 이 위원회는 사실상의 정부였다. 김일성 자신이 그해 8월 15일 ‘전체 인민 의사와 리익을 진정으로 대표하는 중앙주권기관’이라고 선언했었다. 48년 4월 29일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헌법’이 인민회의 특별회의에서 승인됐다. 명실상부한 정부로 성립된 것이다(대한민국은 그해 8월 15일에야 건국됐다). 

이후 북한은 김씨 일가의 왕조적 통치 하에 놓였다. 그들의 최우선 목적은 왕조의 유지 강화다. 국력은 우선적으로 이 목적에 투입된다. 민생의 안정, 복리의 증진 같은 것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린다. 가장 원시적인 통치방식, 심지어 종교를 흉내 내기까지 하는 수법으로 전체 인민을 김씨 일가와 체제의 노예로 전락시켰다. 
대한민국에는 자유민주주의 정체가 성립됐다. 그리고 박정희가 등장했다. 집권 과정에는, 합법성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집권 기간 동안 독재적 통치행태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 국민을 가난으로부터 구해내겠다는 염원이 있었다. 그 가난은 수천 년 동안 이어진 한민족의 천형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마침내 가난을 극복했다.

지난달 14일은 박정희 탄생 100주년 되는 날이었다. 온통 축제 분위기로 전국이 뒤덮일 법도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경북 구미의 생가에서 행해진 추모제에도 반대세력이 들이닥쳐 몸싸움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 기념도서관에서는 그 전날 동상 기증 증서 전달식이 열렸지만 역시 반대자들의 방해로 분위기가 아주 어수선하고 살벌하기 까지 했다고 들린다. 우리의 심성이 너무 메말라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 주필, 전 논설고문)

북쪽에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탈출해 오려는 주민들이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이게 나라냐?”, “헬 조선!” 이라는 호통소리가 드높다. 그 사람들의 몸에는 아마도 기생충이 없을 것이다. 국가 경영자의 가장 큰 책무는 예나 지금이나 백성 혹은 국민을 제대로 먹이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위나라에 갔을 때 염유(冉有)가 마차를 몰며 따랐다. 공자가 말했다. “나라와 인민이 번성하구나.” 염유가 물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무엇을 더해야 할까요?” 공자가 답했다. “부유하게 하라.” 염유가 또 물었다. “그런 다음엔 무엇을 더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가르쳐야 하리라.”
우리는 배불리 먹게 됐고, 국민 교육수준도 세계 최고에 이르렀다. 이만하면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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