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안기는 또 다른 걱정

번엔 포항에서 지진 소식이다. 지난달 15일 오후 2시 29분께 경북 포항시 북쪽 9km 지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난해 9월 12일의 경주 강진에 이은 두 번째 규모다. 2시간 20분 후에는 4.6의 여진이 일기도 했다. 경주의 예로 미루어 아마 한동안 여진은 계속될 듯하다. 그간 지진에 관한 한 안전지대라며 안심했는데 경주지진으로 큰 충격을 받은 데 이어 다시 강진을 겪게 됨으로써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 한국수력원자력은 15일 오후 2시29분께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6㎞ 지점에서 발생한 규모 5.5 지진과 관련해 월성원전 등 모든 원전은 정상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신고리 5호기와 6호기 조감도.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주필, 전논설고문)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현재 가동 중인 우리나라 원전은 모두 24기다. 이 가운데 전남 영광군 6기를 제외한 18기가 부산(기장군 5기)·산(울주군 1기, 3기는 건설 중)·경주(6기)·울진(6기) 등 동남해안지역에 몰려 있다. 경주·포항의 잇따른 강진은 이 때문에 더 큰 걱정을 안긴다. 언론보도로 우리나라 원전의 내진설계는 대략 규모 6.5~6.9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지진의 최대 규모는 7.5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5, 6호기만이 규모 7.4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내진 설계가 강화되었다고 한다. 일찍이 경험한 바가 없기는 하지만 정말 대형지진이 닥칠 경우 말 그대로 재앙이 된다. 

탈원전의 핑계로 삼지 말아야

이 때문에 원전을 반대하는 단체나 개인들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게 되었다. ‘탈원전’을 에너지 정책 방향으로 제시한 문재인 정부도 원군을 만난 듯 밀어붙이려 할 개연성이 높아졌다. 지진에 놀란 국민들은 원전사고의 위험성에 과거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원전이 우리나라에서는 영영 추방당할지도 모른다. 

사실 한반도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 실제로는 다발지역이다. 다만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했을 뿐이다. 국내 지진 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후 지진이 계속 잦아지고 그 규모도 커지고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앞으로 재난 급의 지진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미 경주와 포항의 지진이 그 전조를 보인 만큼 걱정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당연히 원전사고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탈원전의 명분과 이유로 삼아 정책을 강행하려 해서는 곤란하다. 그건 현명한 대처방법이 못된다. 인류문명은 위험한 것을 피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이뤄졌다. 지진이 두렵다고 해서 집을 짓지 않을 수가 없다. 자연재해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진 지대를 피해서 삶의 근거지를 마련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른바 환태평양 지진대에도 인간은 살고 있다. 그저 살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대도시들이 형성돼 있기도 하다. 미국의 서부해안, 일본의 동부해안이 그 대표적 예다. 지진의 위험보다 지리적 이점이 훨씬 크기 때문일 것이다. 

원전사고가 공포스러운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사고(1979년 3월),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년 4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2011년 3월) 등이 산 증거다. 사람들은 원전사고가 우려의 차원을 넘어 실제로 일어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엄청날 수 있다. 특히 후쿠시마의 경우가 세계적인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과학기술 선진국의 원전도 사고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은 우리의 가장 중요하고 유망한 전력원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발생한 세계 3대 원전사고의 피해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주장과 분석도 있다. 필요이상으로 공포감을 주입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사고를 예방하고 유사시 피해를 극소화할 기술적 방법을 연구할 생각은 않고 무조건 피할 생각만 해서는 원전이든 뭐든 발전의 여지가 있을 리 없다.  

과장된 공포감 조성은 더 위험

특히 우리의 경우, 원자력 발전이 다른 어떤 수단보다 확보가 용이하고 공급이 안정적이며 품질이 좋고 비용이 저렴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렇다면 포기하기보다는 확실한 사고 예방책을 찾는 것이 훨씬 낫다. 그게 바로 인간의 지혜다. 벌에 쏘일 것이 겁나서 채취를 마다하면 꿀은 결코 얻지 못한다. 물에 빠질 것이 두려워 물을 멀리하면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 새로운 세상을 찾기는 불가능해진다. 

그간 우리는 지속적인 연구와 기술개발로 세계에서도 가장 앞서는 원전 기술과 안전성을 확보했다. 원전사고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대체할 만한 다른 전력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은 세계인의 공통된 인식이다. 물론 독일이나 스위스 같이 탈원전을 실천한 국가도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국민들은 높은 에너지 비용을 각오한 다음에 이 정책을 선택했다. 이들은 또 부족한 전기를 끌어다 쓸 이웃 국가를 가졌다. 그 이웃, 예컨대 프랑스는 대표적인 원전 국가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국부를 가진 나라들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이들 나라는 수십 년간의 탈원전 논의를 거친 후에야 결정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새 대통령의 정책적 단안과 진보좌파 쪽 환경론자들의 지지를 동력으로 강행하려는 분위기다. ‘제왕적 대통령’의 행태를 격렬하게 성토해 오던 세력들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 제왕적 통치방식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민주정치는 합목적성의 정치가 아니다. 절차의 정당성을 더 중히 여기는 정치, 말하자면 합절차성의 정치라는 사실을 왜 경시하는 지 답답하다. 

지진의 직접적인 피해만큼이나 2차 피해 혹은 간접피해도 주의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책 없는 공포감 조성이다. 작년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자 정부는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16년 9월 23일)하고 각종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역설적 현상이 벌어졌다. 정부의 지원은 미미했던데 비해 엉뚱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관광객이 크게 줄어버린 것이다. 경주시민들은 지진으로 놀라고, 관광객 격감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런 현상을 심화시키는 데는 언론도 크게 한몫했다.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지, 경주가 얼마나 지진빈발지역인지를 연일 보도함으로써 관광객들의 발을 묶어 버린 것이다. 비단 관광객들뿐만 아니었다. 만년에 귀향해서 살겠다고 계획을 세우던 출향인들까지 생각을 돌리게 만들었다.
포항의 경우 관광객 감소로 인한 피해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경북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진에도 불구하고 산업시설이나 생산에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것도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차제에 산업시설, 도시기반시설 등과 주택 학교 공공시설 등의 안전 확보 대책을 적극 마련,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큰 소는 잃지 않은듯하지만 이 기회에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큰 소, 작은 소 가릴 것 없이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북핵보다 원전이 더 무섭다?

정말로 심각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1년 여 사이로 강진을 겪어서 그렇겠지만 정부는 수능시험을 한주일 연기할 정도로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언론들도 몇 며칠 지진피해상황, 지진의 무서움, 원전사고의 우려를 보도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지진 사태에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을 연상하는 정부 책임자나 언론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지진이 원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은 말하면서도 북한의 핵 장난이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들 일관한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그러는 것일까? 우리나라에 원전사고를 초래할만한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보다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핵실험이 재앙을 초래할 위험성을 더 낮게 본다는 뜻인가. 우리의 원자력 관련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핵 관리 수준보다 북한 핵무기 개발·실험자들의 수준을 더 높게 본다는 의미인가. 원전을 다루는 우리 측 책임자와 과학·기술자의 도덕성 및 책임감보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실험하는 북한체제의 책임자와 과학·기술자들의 그것을 더 신뢰한다는 말인가.

지진의 경우 그 규모에 따른 예상 피해정도를 설명하고 보도하는 데는 아주 열심이면서 북한의 핵 장난이 초래할 수 있는 파국적 위험에 대한 예측은 회피하는 행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원전은 수많은 전문가들의 과학적 관리와 감시로 사고 예방, 유사시 대응 등이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의 핵 장난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 특히 김정은의 감정 변화로 인해 순간적으로 엄청난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도 언론도 둔감하다. 그러면서 지진에 대해서는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 과장된 공포감을 드러내고 있다. 

▲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 주필, 전 논설고문)

하긴 김정은에 대해서는 대화를 구걸하듯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국내의 정적들에 대해서는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징벌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정부다. 상식적 판단으로는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신 집권세력의 정치방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하면서도 두렵다. 임기 5년의 정부가 ‘혁명’을 운위하는 것은 스스로를 강박감 속에 몰아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과 정의는 독점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그 욕심을 못 버리면 자승자박의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그게 인간 사회의 경험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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