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용문동 38번지' 생각

[김숙 칼럼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고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고향은 단순히 아름다운 곳일 뿐 아니라 평온을 주고 그리움을 주는 아련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고향... 고향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어머니를 오래오래 기억하겠다는 다짐이고 어머니와 고향, 고향과 어머니를 따로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은 고향과 어머니가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라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배불리 먹은 바둑이가 졸고 있는 앞마당에는 복숭아꽃, 살구꽃이 바람결에 흩날리고, 뒤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끼리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고, 접시꽃, 백일홍, 채송화가 피어있는 나트막한 담벼락 사이를 햇살이 가로지르는 그림 같은 고향...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필자의 고향은 위의 풍경이 주는 아늑함과는 거리가 먼, 서울 용산구 용문동 38번지이다. 고향집은, 설계에서 감리에 이르기까지 아버지께서 도맡아 지으신 걸작으로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그 때에는 보기 드문, 상당히 멋진 2층 양옥(洋屋)이었다. 시대적인, 사회적인 격변기라는 소용돌이 후의 불가피한 상황을 온 몸으로 끌어안았던 아버지의 가계도(家系圖)아래, 평범치 않게 펼쳐졌던 고향집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상채기 위에 소금을 뿌리는 것만큼의 아픔을 기억하자는 말과 다를 바 없다. 
허나 지난 시절의 달콤함만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이 고향은 아닐 것이기에, 고향은 우리 가족들이 겪었던 애환을 오롯이 품고 있을 것이기에, 지금은 소중한 자산이 되어주는 [아버지의 땅, 어머니와 고향]을 한데 뭉뚱그려 되새겨 보고 싶은 것이다.   

세상은 천국이었다, 지옥이었다의 한계점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농담 삼아 말하자면 하물며 커피 한 잔에도 천국과 지옥은 있다. 천사의 향기에 악마의 빛깔이라고 하니 말이다. 꼭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천국과 지옥을 포함한 다종다양함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즐거움이나 행복, 고독이나 외로움도 한 뿌리에 자라고 있다. 
간혹 절대고독이 주는 가혹함을 견디다 못 해 생을 마감하는 가슴 아픈 사람들의 소식도 접하게 된다. 특히나 이맘때가 되면 한 해의 끝자락이 주는 쓸쓸함과 맞물려 그런 소식들이 평소보다 몇 갑절이나 더 허망하고 야속하게 다가온다. 그들도 분명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기에 그렇다.
누구를 막론하고 출생 이후, 가정이든 사회든 간에 어느 만큼의 자기 몫을 다 하기 까지에는 등 뒤에 부모가 서 있었다. 벌거벗은 산이 황량한 벌판을 지나 비로소 울긋불긋한 빛깔로 치장된 골짜기를 이루듯, 그 세월 안에는 척박했던 부모의 삶이 녹아있다. 

굽이굽이 넘어가는 능선마다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꽃 피고, 새 울고, 초록이 변해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고, 급기야 그 자리에 소복소복 흰 눈이 쌓이고, 그 안에 어머니의 얼굴이 가려져있다.  
인생이란 저마다의 우주이고 개인만의 행성이다. 또한 삶이란 이 지구상에 철저히 하나뿐인 협곡에, 분지에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심어보자는 고단하고도 지난한 자기작업이다. 
살아갈수록 고향이 그리운 것은 부모님이 심어준 한 그루의 나무가 가슴에서 자라고 있다는 소중함이 깨달아지는 까닭이다. 그 나무, 세상사의 비바람을 막아주고 어려움에도 꿋꿋하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어머니의 나무... 우리의 어머니가 그랬듯 우리는 우리 자식들의 어머니가 되어 그들의 언덕에 든든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굵고 실한 나무를 심어주어야 한다.  

몇 해 전 덴마크에 갔었다. 필자를 사로잡았던 것은 코펜하겐 부근에 세워져 있는 고독한 영혼, 키에르케골의 동상이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결국 고독이라는 실존철학의 선구자였던 그에게 매료되었던 필자는 젊은 시절 키에르케골과 늘 함께 고뇌했었고 그의 사상과 친구였었다. 그랬음에도 청소년기에 접했던 고독이나 외로움은 기실 밑도 끝도 없는 허구였을 뿐 그다지 실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나이 들어, 그 거처가 한 철학자의 사상에 머물지 않고 고향으로 귀결됨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수순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 가식 없는 생활인의 방향일수도 있겠다 싶다. 
왜냐하면 어떤 일로 어떻게 아파해도, 설령 삶이라는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기가 버거워 나약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해도, 고향은, 어머니는 말없이 품어줄 것이라는 종교적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면 삶의 구체성이라 대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 김숙 편집위원(자유기고가)

이제 한 해가 간다. 한 해가 감은 새 해가 온다는 말이고, 새 해가 옴은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저만치 멀어진 친구가 있다면 서슴없이 불러 내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그 눈동자를 가슴에 담아 보라고 당부하고 싶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면 다시 꺼내 들여다보고 손질해가며 실현가능한 청사진을 더 찬찬히 그려보라고도 부탁하고 싶다.
남은 2017년을 잘 갈무리하자.
그리하여 모두모두 희망찬 새 해! 2018년을 기쁨으로 맞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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