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의 허가로 삼척시청(시장 김양호)과 (재)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제정스님)가 조사하고 있는 ‘삼척 흥전리사지’(三陟興田里寺址)‘ 발굴조사지역에서 통일신라 시대 승단 조직에서 사용한 청동 승관인(僧官印)이 확인됐다.

▲ '흥전리사지에서 발굴한 청동인장'.(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은 2014년부터 ‘중요 폐사지 발굴조사 사업’의 하나로 삼척시청과 (재)불교문화재연구소와 함께 삼척 흥전리사지 발굴조사를 시행 중이다.

삼척시청이 시행 중인 올해 발굴조사에서는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인장 2과가 출토되었으며, 12점의 대호(大壺, 항아리)를 묻었던 장고(醬庫, 장·독 보관시설)가 확인됐다.

출토된 청동인장 2과는 모두 완전한 형태이며, 이 중 하나는 청동인주함에 인장이 담긴 채 출토됐다. 보존처리 중인 청동인장은 2과 모두 정사각형(5.1㎝)으로 윗면에 끈을 매달 수 있는 손잡이가 있는 주문방인(朱文方印, 글자를 양각으로 새겨 글자 부분에 인주가 묻어 도장을 찍었을 때 글자가 붉게 보이는 것)의 형태로 제작됐다. 2과의 청동인장에는 6자의 전서체(篆書體)와 기하문(幾何文)이 각각 새겨져 있다.

2과 중 한 점의 인문(印文)이 ‘범웅관아지인(梵雄官衙之印)’으로 판독되며, 서체는 당나라 관인(官印, 관청에서 공적으로 사용한 인장)과 유사한 구첩전(九疊篆, 글자 획을 여러 번 구부려서 쓴 전서체)의 초기형태이다. 이 인장은 통일신라 시대 승단에서 사용한 승관인으로 판단하고 있다.

‘범웅관아지인(梵雄官衙之印)’ 청동인장은 경주 황룡사지 출토품과 손잡이와 명문 서체 등에서 전체적인 형태와 크기가 매우 흡사하다.

청동인장은 한국 인장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범웅관아(梵雄官衙)’라는 명문은 통일신라 시대 승단 조직과 국가와의 관계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사료로 판단된다.

또 다른 인장에는 ‘만(卍)’자상으로 선을 연결한 문양이 확인되었다. ‘삼국사기’ 권7(신라본기 제7, 문무왕 하)에는 통일신라 시대 문무왕이 모든 관인은 국가가 주조(鑄造)하게 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고려사' 권 6(세가(世家) 6, 정종 원년 10월)에도 고려 정종 때에 ‘식목도감(式目都監)’에서 지방 주군(州郡)이 사용하는 승관인을 거둘 것을 주청하는 기사가 있어 국가에 의해 관인이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발굴현장에서 나온 청동인장의 모습'.(사진=문화재청)

또한, 이번 조사에서 강원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장고(醬庫) 터가 확인됐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지 내부에 대호 12점을 정연하게 묻어 사찰음식 재료를 보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형태의 통일신라 시대 건물지는 남원 실상사를 비롯해 경주 황룡사지와 성건동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으며 선종사찰 고원(庫院)시설의 장고였음이 밝혀졌다.

삼척 흥전리사지는 통일신라 시대 영동지역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찰로  그간 금당지(金堂址), 탑지(塔址) 등 주요 가람시설이 확인됐다.

 특히, 신라 시대에 왕이 임명하는 승단의 최고 통솔자인 ‘國統’(국통)이 새겨진 비조각(碑片)을 비롯해 청동정병(靑銅淨甁), 금동번(金銅幡, 깃발) 등 중요 유물이 출토되어 위세 높은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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