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은 증거의 왕'

사를 경영하다 보면, 은근히 경찰서, 검찰청에 들락날락할 일이 생긴다. 고소를 하는 경우도 있고, 고소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대표이사가 잘못한 경우도 있지만, 직원이 잘못하거나, 회사의 업무상 문제가 생겼을 경우도 있다. 억울하고 짜증나도, 대표이사니까 짊어져야 할 업보이다.

[고윤기 고윤기 칼럼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대표이사에게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한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자 담당 수사관이 “그냥 와보시면 압니다.”라고 한다. 경찰서에 가서 수사관 앞에 앉으니, 수사관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수사관은 앞에 앉은 대표이사를 어르고, 달래고, 어떤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한다. 조사받는 대표이사는 수사가 진행될수록,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라온다. 요즘 말로 ‘딥빡(매우 화가 난다는 뜻)’이다. 수사관에게 쌍욕을 날리고 싶은 순간이 있지만 일단 참는다. 참고 참다가 결국 수사관한테 묻는다. “제가 뭘 인정하면, 조사를 끝낼 건가요?” 이 시점에서 수사관은 속으로 만세를 부른다. 조사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자백이 증거의 왕’

수사관은 도대체 왜 그럴까? 간단하다. 아직도 ‘자백이 증거의 왕’이다. 앞에 앉은 사람이 사실을 인정하고 자백하면, 자백을 뒷받침 해주는 증거(자백 보강 증거)를 몇 개 찾아 수사기록에 편철하면 된다. 복잡한 대질신문, 사실조회, 금융사실조회, 통신조회 등 귀찮은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수사가 끝난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대표이사를 그렇게 압박하던 수사관은 급격히 친절해 진다. 그리고 조사는 빠른 시간에 마무리 된다. 수사관이 조사를 하며 작성한 문답 서류를 조서(調書)라고 하는데, 수사관은 작성된 조서를 출력하여, 대표이사에게 열람을 시키며 말한다. “혹시 틀린 부분 있으면, 수정하세요.” 대표이사는 이미 지쳤다. 조서를 보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리고 수사관의 지시에 따라 열람을 마친 시간을 조서에 적고, 지문을 찍는다. 이제 조서에 기재된 내용을 뒤집기는 힘들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수사관이 대표이사의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결과 통보가 곧 갈 겁니다.” 며칠 후 문자가 온다. “서울OO경찰서에서 귀하의 사건(송치번호 2017-0000)을 서울동부지방검찰청으로 송치하였습니다.” 대표이사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든다.

대표이사는 이 시점부터 불안해 진다. ‘변호사를 찾아가 볼까?’하는 생각도 들고, 왜 그때 그렇게 진술했을까 하는 후회도 든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변호사도 조서의 내용을 바꿀 수는 없다. 이미 늦었다.

정보공개청구 요구하기

여기서 대표이사가 잘못한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처음 조사를 받을 때부터,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다. 상습적인 범죄자가 아니라면, 보통 사람들이 수사기관에 가는 것은 큰 스트레스를 준다. 그러다 보니 조사받는 사람은 상당히 공격적이 되고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사를 받기 전의 준비이다. 수사관에게 무엇으로 고소가 되었는지를 물어보기도 하고, 잘 알려주지 않으면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방법도 있다. 어쨌든 처음에 조사를 받기 전에, 기본적으로 나에게 무슨 혐의가 있는지는 파악하고 들어가야 한다. 필요하면 자료를 챙기고, 변호사의 조언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다음으로 대표이사가 잘못한 점은, 완성된 조서를 제대로 읽어 보지 않은 것이다. 우리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내가 한말이 문서에 기록될 때, 한 두 단어가 첨가되거나 빠지면 그 문맥이 크게 달라진다. 수사관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말이 글로 바뀌는 과정에서 ‘뉘앙스’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 조서를 고쳐야 한다. 일단 조서에 지장을 찍고 나면 고칠 수가 없다. 수사과정에서 본인이 다 인정해 놓고 나중에 “나는 억울하다.” 따위의 말을 해 봤자. 수사기관 또는 법정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는 것은 정말 어렵다.

경찰 조사 전, 변호사 상담

결론은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조사받을 때부터 충분한 자료를 준비하고, 제대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 물론 대표이사가 잘못한 점이 있으면 그만큼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자기가 잘못한 만큼만 책임지는 것이 맞다. 경찰 조사를 받기 전에 필요하면 변호사와 상담하고, 조사할 때 변호사를 대동하는 것도 필요하다. 평소에 똑똑하고 말을 잘하던 사람들도 수사관 앞에서는 말을 더듬고 어눌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자기가 수사관 앞에서 한 말을 기억 못하고 있다가, 본인의 지문이 찍혀 있는 조서를 보고 놀라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변호사를 통해 미리 고소장을 열람하고, 수사 단계에서부터 모든 것을 상의해서 대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필자소개> 고윤기 -고윤기 변호사는 사법시험(사법연수원 39기)을 합격한 연세대 출신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 기획, 인권이사를 역임했다. 서울동부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회 위원과 서울시 소비자정책위원 등 다양한 공적 활동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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