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머나먼 타지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곽덕준(81) 작가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인해 국적이 박탈되어 한국과 일본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삶을 살아왔다.

▲ '작가 곽덕준'.(사진=왕진오 기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3세에 결핵으로 인해 한 쪽 폐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고, 3년간의 긴 투병생활을 겪었던 작가가 택한 것은 붓을 잡고 자신의 에너지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가 작가로서 세상에 첫 발을 디디게 된 1960년대 초기 작품의 봉인을 해제하고 처음으로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회를 1월 10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전관에서 꾸린다.

▲ 곽덕준, '심연 I'. 판넬에 석고, 호분, 수지, 수채, 아크릴, 151 x 112 cm, 1966.(사진=갤러리현대)

'1960년대 회화-살을 에는 듯한 시선'이란 타이틀을 내건 전시에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회화 20점과 소묘 34점 등 작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 함께한다.

곽덕준 작가는 "65년부터 시작한 작업을 선보이게 됐다. 당시 투병 중이었는데, 초기 작품은 색감이 어두웠다. 건강이 회복한 후 밝은 색채를 사용하게 된 것 같다"며 "이 작업을 공개하게 된 것은 최근에 작업하고 있는 작품들과 60년대 작업을 보여주는 것이 오해를 살 것 같았는데, 내 작업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이 작품을 세상에 드러내어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곽 작가가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오해라는 것이다. 70년대 만든 작업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시도였다. 그런 작가의 작품 세계에 이러한 깊은 세계가 감추어진 작품이 있다는 것을 쉽사리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 곽덕준, '살을 에는 듯한 시선'. 판넬에 석고, 호분, 수지, 수채, 아크릴, 162 x 132 cm, 1968.(사진=갤러리현대)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3년의 투병 기간 동안 병실의 침대 위에서 바라본 근처의 집들과 자연의 풍경을 스케치하게 된다.

작가는 합판 위 석고와 호분으로 두꺼운 층의 요철을 만들어 채색하고, 공업용 본드로 코팅한 후 못으로 선을 긁어내기를 반복한다. 마치 동굴 벽화와 같은 느낌의 표면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곽 작가가 즉흥적으로 그려낸 선묘는 자유로운 곡선이 되어 유기적인 형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한 발 짝 뒷걸음친 후 바라본 화면은 섬세한 선묘와 기괴한 이미지들이 서로 연결되고 뭉쳐서 사람의 얼굴이나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곽덕준, '소묘 No.38'.종이에 잉크, 35 x 25 cm, 1966.(사진=갤러리현대)

곽 작가는 "학교에서 일본화를 배웠죠. 서양화를 배운 적이 없기에, 독자적 오브제를 사용해 회화를 구현할 방법을 찾다가 세라믹 같은 질감을 따라해 본 것이 작업으로 완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투병 중에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내 몸의 모든 에너지가 작품에 담긴 것 같다"며 "내 작품의 기본은 보편성이다. 작가 명을 밝히지 않고 걸어도 작가의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곽덕준 작품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 '1960년대 회화-살을 에는 듯한 시선'은 평생토록 일본과 한국 모두에서 이방인과 같은 존재로 살아온 곽덕준만의 분노와 체념이 뒤섞인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표현이자 삶의 성찰이 드러난 결과물이다.

▲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 설치된 곽덕준 작가의 '1960년대 회화 -살을 에는 듯한 시선' 설치 모습.(사진=왕진오 기자)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과 무수히 등장하는 눈, 방향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가득 찬 작품들은 마치 사회로부터 쫓기듯 살아온 작가 자신을 반영하는 듯하다.

작가 곽덕준의 60년대 그림은 젊은 날 격투의 흔적이자, 우울함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해야 했던 어두운 청춘의 상징으로 본격적인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작가의 궤적을 살펴 볼 수 있다. 전시는 2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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