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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권 칼럼] "미투(Me Too)"시대 유감
  • 최수권 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 승인 2018.02.1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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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권 칼럼(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이코노미톡뉴스] 연초, 아내가 소음방지용 귀마개를 선물해주면서, 이렇게 주문했다.

“소음에 민감한 반응도 문제지만, 주변의 이런, 저런 소리에도 귀 좀 닫고 살아가라”고. 이를테면 이순(耳順)도 훨씬 지난 나이에, 이제 귀(耳)가 순(順)해질 때도 되질 않았느냐는 죠크다. 그러겠다고 아내에게 약속했지만, 연초에 나는 다시 폭발해 버렸다.

가족들과 과천의 어느 갈비집을 찾았다. 음식 맛이 좋고, 실내가 조용하여 오래전부터 이용하고 있었다.

실내는 그렇게 붐비지 않았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한 식사시간이어서 좋았다. 옆 테이블엔 남녀 일행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식사들과 맥주와 소주를 시키는 듯하였다. 일행 중 60대 중반의 덩치 큰 이가 숟가락을 이용해 맥주병을 땄다. 요란한 소음이 나면서 내 얼굴로 맥주가 튀었다.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노인은 일행들에게 술을 따르면서, 나한테는 실례의 인사도 없었다. 가족들은 내 눈치를 살피는 듯 했다. 화가 치밀었지만 아내의 선물, 귀마개를 떠올리며 침묵으로 참아내고 있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기 마련이다. 옆 테이블의 일행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주제들이었다. 젊은 날 잘나가던 얘기, 여자에게 인기 있었다는 얘기, 그리고 발전하더니, 와이담(음담패설)의 얘기로 신나 있었다. 일행의 여자들도 거들고 있었다.

나는 “너희들, 지금 꼴을 보니 젊은 날은 더 한심하고 별 볼일 없는 족속이었을 것이다”고 속으로 경멸하고, 그렇게라도 분을 삭이고 있었다. 애써 그들의 대화를 멀리하면서, 평정심을 찾아 나섰다. 소란한 시간들이 이어지고, 또 병 따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우리 테이블로 이물질이 튕겨 왔다. 나도 모르게 소리가 튀어 나왔다.

“아저씨들(속으로는 개저씨) 무슨 그런 매너가 있어, 지금이 두 번째잖어!”

일순간 조용해졌고, 인근 테이블에서도 약간의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들이 대꾸만 하면 혼을 내줄 심상이었다. 장성한 아들이 두 명이나 있어서였는지, 그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들을 향해 엄중한 경고를 무언으로 행사했다. 나잇값을 못하는 그들이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큰아이가 “아버지는 그 성질 아직도 여전하시네요” 하면서 또 나를 타박하고 나섰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는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고 그래서 사회의 룰이 있다. 법은 그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질서(선)이고, 법 이외의 것들은 사람으로 지녀야할 규범(예의)이 있다. 사소한 배려의 예의들은 우리를 살만한 세상으로 변화시키고, 우리를 신나게 한다.

근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이 화제다.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 등 과거의 사건을 들추고, 사회에 고발하는 게 추세이다.

추한 언행들이 얼마나 엄청난 후한을 몰고 오는지, 국외자(局外者)의 입장에서 보면 신나기도 한다. 그리고 답답하기도 하고....

60년대 말 나는 군대 병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어찌 어찌하여, 보직이 변경됐다. 문화선전대에 차출되었다.

전출을 간 날, 또래의 병사들이 나에게 물었다.

“문선대는 왜 왔느냐?”고 군기가 세고, 빳다 맞는 게 일상인데 알고 왔느냐고, 바지에 주름이 흐릿해도, 공연장의 매너가 부족해도, 연습부족 등의 이유, 공연이 잘못됐다는 이유, 고참병들의 기분에 따라 빳다 맞는 강도와 이유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남보다 3년 늦게 입대했고, 프로밴드 경험이 많았다. 특히 전공한 음악만은 자신하고 있었다.

첫 번째 공연이 끝난 늦은 밤에, C병장이 대원 전체를 집합시켰다.

음악을 리더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이유 없이 “음악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럼, 음악이 어떻게 잘못됐고, 누가 실수했는지 지적하라”고 대들었다. 그리고 엎드려 받쳐 자세를 나 혼자만 취하지 않았다. 구타하려고 하는데 대원 전체가 일어서서 C병장의 팔을 잡고 말리는 듯 하는 행동으로 나와의 다툼을 적극 말렸다.

-사실 대원들의 그 행동은 내가 짠 시나리오였다-

그 사건이후, 정훈참모가 C병장을 다른 곳으로 전출 시켰다. 그리고 대원들은 3년 동안 정말 신나는 군대생활을 했다.

나는 그 사건 이후, 살아가는 자세와 태도를 바꾸었다.

모든 문제는 현장에서 해결해야하고, 사건의 빌미가 생성되지 않게 사전에 나를 점검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나를 함부로 할 수 없도록 자아를 키워가는 것이 삶의 기술이라고 신념으로 간직하고 있다. 모든 문제의 시발은 자신에게 있다. 살아가면서 우린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함께 한다. 그리고 서로가 배려하여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주변을 살펴보면, 무색무취한 사람이 많다. 그런 이들은 매력이 없다. 살아있는 정물이다.

단호하게 NO(아니요)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YES(예)의 의미를 산뜻하게 설명할 수 있고, 자신만의 철학과 또렷한 주관을 지니고 있다. 일상으로 지닌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의도적인 노력으로 형성된 자신만의 개성일 수도 있다.

나의 나됨을 스스로 창조해 내고 나만의 무늬로, 소리로, 내 삶의 색깔을 생성해 내는 삶은 그래서 아름답다.

인생의 마디마다 그 전환점에서 자신의 색깔을 채색해 내어 고운 무늬로 자신의 소리를, 향기로 피워내는 것이 인생일지 모른다.

소란한 시대, 이 극단의 시대에, 소음방지용 귀마개를 일상으로 착용한 일이 합당한 행동인지 아직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미투”의 가해자들은 인격에 문제가 있는 장애자들이다. 그리고 공․사 조직이든 그런 일탈의 행위가 만연한 것은, “시간이 남아도는 조직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병적인 조직의 현상이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사내 연애, 결혼”을 죄악시 했던 때도 있었다. 연애질은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하여, 소문만으로도 인사에 불이익을 주었다. 사표를 받기도 했다.

▲ 최수권(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정상인이면 누구나 살아가는 일도 벅차고, 숨 가쁘다.

마음의 눈이 맑고 밝으면, 그 눈으로 인생의 길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도 선연히 드러난다.

근래의 대기업 임직원 교육이, 명상 수련교육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해진다.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인 듯싶다.

최수권 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econotalki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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