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끝난지 하루 이틀 지나면서 양 정상이 서명한 공동선언문을 읽기 고통스럽고 착잡하다. 누가 ‘세기의 핵 담판’이라고 규정했는지 실망천만이다. 북핵에 시달려온 한국인 눈으로 보면 죽도 밥도 아닌 문서다. 앞으로 후속 회담이 예정되어 있다지만 “김정은 살려주고 대한민국 안보 희생시킬 작정인지 의심스럽다”는 심정이다.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솔직히 우리네 소감으로 세계 최강의 대통령, ‘협상의 달인’이란 ‘트럼프 모델’이란 허상으로 비친다. 트럼프는 수시로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누구도 해내지 못할 새 역사를 만든다”고 자부해 왔는데 김일성왕조 3대 세습 독재자를 평화 이미지로 꾸며 세계무대를 장식할 수 있도록 판을 벌려준 꼴 아닌가.

특히 공동선언문 속에 미국이 그토록 강조해온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CVID 비핵화는 어디로 간 곳 없고 갑자기 한미동맹 기반 위의 ‘한미합동 군사훈련 중단’이란 말이 왜 트럼프 입에서 튀어 나오는가.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북한체제 보장을 약속했으니 반인륜 인권말살 폭정을 어떻게 보장해 주겠다는 말인지 우리네는 알 수 없다. 반면에 김정은은 ‘완전한 비핵화 노력’을 약속했을 뿐 언제, 어떻게 핵무기 일체를 폐기하겠다는 말인지 드러난 것이 없으니 ‘핵보유국’ 지위로 미국과 핵군축 해나가자는 뜻이란 말인가.

그날 싱가포르 카펠라호텔, 성조기와 인공기로 장식한 요란한 무대 위에 트럼프와 김정은이 책상에 앉아 선언문에 서명할 때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여정 북 노동당 제1 부부장이 배석한 장면이 유난히 각별하게 비쳤다.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가 통치하는 김씨 왕조의 체제 안전을 미국 대통령이 보장해 주겠다는 기록사진으로 남을 장면이기 때문이다.

공동합의문 요지는 △새로운 미․북관계 수립 △지속적․안정적 평화체제 구축 노력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6.25 전사자 유해 수습․송환 등이다. 이를 통해 미국이 대북제재를 주도하고 CVID 방식을 강조해온 궁극적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회담 장면을 TV로 지켜본 소감으로 김정은은 기대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어낸 반면 트럼프는 그를 국제무대 중앙으로 끌어낸 역할 외에 무엇을 얻었는가. 단지 이번 회담으로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ICBM 파괴를 약속받았노라고 주장할런가.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숨 막히는 지경에서 미국과 정상회담 간청했다가 살아난 꼴이다. 그는 평창올림픽 참가 결단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손길을 잡아 ‘판문점 선언’에 합의한 후 문 대통령의 중재로 미국과 정상회담을 제안, 트럼프로부터 즉석 수용 회답을 얻어냈다. 그로부터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김정은이 세기적 ‘불량국가’ 악동에서 갑자기 ‘세계평화 스타’처럼 부상했으니 참으로 요상한 현상 아닌가.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된다”고 말하고 자신은 “한국전쟁의 종식을 원한다”고도 말했다. 바로 북한 왕조가 대를 이어 가며 꿈에도 소원이던 말이 트럼프 입에서 나왔으니 일종의 기적 아닌가. 반면에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공동선언문에 대해 “과거를 딛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서명”이라 말하고 “세상은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니 그가 바로 새 역사의 주인임을 자부한 말 아닌가.

트럼프는 김정을 향해 26세 때 (권력을) 물려받아 ‘강력통치’한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지만 우리네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가 철부지 나이에 권력을 세습 받아 고모부 총살하고 이복형 독살하고 수많은 인민 공개처형 하고도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하고 있는 폭정을 어찌 ‘강력통치’라고 말할 수 있는가.

김정은이 트럼프와 대좌한 좌석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자 트럼프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오케이 사인을 보낸 모습도 과잉 제스추어 아닐까. 또 오찬 뒤 호텔 내 정원을 산책하면서 실제이상의 친밀감․우호감을 과시한 몸짓도 지나치지 않았을까.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한 이 장면을 북측에서는 트럼프가 ‘최고존엄’의 권위를 존중했노라고 오용할 것이 너무나 뻔하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이번 회담으로 11월 중간선거 승리와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대할는지 모른다. 또한 지난 대선캠프에 러시아 정부가 개입했었다는 의혹으로 탄핵공세를 받고 있는 상황도 회피할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김정은은 미국 대통령을 제압하고 평양으로 귀환한 다음에는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로 미국과 핵 군축에 나서게 됐노라고 자부하지 않을까.

또 트럼프는 북핵 폐기 확인시까지 대북제재는 해제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중국이 슬금슬금 해제하면 유명무실화 되지 않겠는가. 중국은 미․북 회담에 앞서 김정은 불러 두 차례 회담 갖고 싱가포르행 보잉 747기까지 빌려주며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나섰다. 반면에 미국은 한미 혈맹관계를 주한미군 주둔비 부담으로 계산하며 오늘은 아니지만 내일은 “주한미군 철수를 원한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는가. 아마도 트럼프의 거래와 흥정의 달인이란 말은 문재인과 대한민국은 미․북 정상회담 후속조치로 대북 경제개발 지원 부담이나 떠안으라는 말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