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울릉도 앞바다에 잠겨있는 '150조원 보물선 돈스코이호'가 장안의 화제를 모으며, 투자사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이토록 열광하게 된 이유는 1905년 5월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 제정러시사 발틱함대 소속의 수송이기 때문이었다.

▲ '국립중앙박물관 '황금문명 엘도라도' 전시 유물.(사진=왕진오 기자)

침몰당시 배 안에는 금화와 금괴 5000상장 등 지금 가치로 150조원 규모의 보물이 실려있다는 풍문으로 세간을 발칵 뒤집었다.

전 세계적으로 황금을 찾아 헤매고, 황금을 위해 싸우고, 황금을 위해 죽은 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한 말이 있다. 바로 16세기 콜롬비아에 존재했었다고 전해지는 '엘도라도'다.

국립중앙박물관이 6년 만에 개최하는 중남미 문명 특별전 '황금문명 엘도라도-신비의 보물을 찾아서'를 8월 4일부터 10월 28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한다.

전시는 콜롬비아 황금박물관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황금유물 등 322점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자리이다.

▲ 전시장에 설치된 퉁호와 유물들.(사진=왕진오 기자)

엘도라도는 탐험과 모험을 상상하게 만든다. 아마존강을 지나 안데스 산맥을 넘어 잃어버린 황금문명을 찾아가는 생생한 탐험의 길을 떠올릴 수 있도록 4부로 나누어 전시를 구성했다.

'엘도라도'의 주인공 콜롬비아 원주민들에게 황금은 신을 만나기 위해, 신에게 바쳐야 할 소중한 것이었다. 황금으로 장식함으로써 새처럼 하늘을 날고, 악어처럼 물속을 헤엄치며, 재규어처럼 달릴 수 도 있었다. 이들에게 황금은 원주민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켜주는 도구였다.

14세기 스페인 사람들의 탐욕으로 변질된 '엘도라도'는 1969년 '무이스카 뗏목'이 발견되면서, 그 화려한 실체가 세상에 알려졌다.

뗏목의 중앙에 족장이 있고 그를 둘러싼 사제들,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 등 '스페인 연대기'에 기록된 내용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를 통해 '엘도라도'가 무이스카 사람들이 호수에서 행한 의식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 '황금문명 엘도라도'전 설치 모습.(사진=왕진오 기자)

1898년 과타비타 호수의 물을 모두 빼내는 일이 벌어진다. 호수 바닥을 샅샅이 뒤졌지만, 진흙에 뒤엉킨 황금장신구 몇 개만 겨우 발견하게 된다.

20세기 초, 황금뗏목이 발견됐지만, 유럽으로 옮겨지는 도중, 독일 브레멘 항구 근처 창고의 화재로 불타 없어지고 만다. 이후 고고학자와 여러 전문가들로 구성된 다양한 조사단이 꾸려졌지만 어느 누구도 '엘도라도'의 실체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콜롬비아 원주민들은 산과 강, 하늘을 신성하게 여겼고, 다양한 동물들은 하늘과 땅과 물을 연결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했다.

악기와 생활용품, 황금 장신구속에는 그들의 생각이 잘 반영되었다. 이들이 바라본 주변의 동물은 지혜와 용맹을 구현하는 토템이었다. 또한 샤먼은 동물로 변해 우주를 여행하는 신적인 존재로 등장했다. 황금으로 만든 새, 재규어, 도마뱀 등이 대표적이다.

콜롬비아 원주민 사회에서 샤먼은 많은 영혼을 가질 수 있었고, 그 힘으로 위험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악령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믿었다.

▲ '황금문명 엘도라도' 전시 유물.(사진=왕진오 기자)

샤먼은 변신하고자 하는 동물 모양의 가면을 쓰고 모습을 바꾸어 병을 치료하고 날씨를 관장했다. 이러한 의식을 치를 때 사용했던 화려하고 다양한 황긍 장신구들을 통해 원주민들을 꿈과 이상으로 인도하고자 했던 샤먼의 역할도 소개된다.

샤먼은 영혼의 세계를 자유로이 오가고 족장과 원주민을 신에게 인도하는 중개자였다. 가면을 쓰고, 온 몸에 문신을 새겨 넣고, 코카 잎과 석회 가루로 무아지경에 빠져 신을 만났다.

그들이 사용했던 포포로와 함께 다양한 황금 장신구와 몸에 문신을 새겨 넣는 도구도 볼 수 있다. 또한 신에게 바쳤던 봉헌용 황금 인형과 장례용품도 함께한다.

▲ '황금문명 엘도라도' 전시 유물.(사진=왕진오 기자)

황금은 콜롬비아 원주민들에게 탐욕의 대상이 아니라, 변신을 통해 만난 신에게 바칠 영혼의 도구였던 것이다.

이번 특별전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황금박물관은 콜롬비아 중앙은행 소속 기관으로 1939년부터 문화재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천 전시는 1940년 중앙은행 이사회실에서 열렸고, 1959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지금까지 200회 넘게 전세계 박물관에서 관람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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