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작가, 윤형근 사후 11년 만에 첫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일기를 쓰듯이 그날그날 기록해 보는 것이 내 그림이요 흔적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전시된 윤형근의 작품 설명을 듣고 있는 취재진들'.(사진=왕진오 기자)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비로소 붓을 잡고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한 작가 윤형근(1928~2007)이 생전에 입버릇처럼 말한 대목이다.

한국 단색화의 거목으로 불리는 그의 사후11년 만에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회고전이 8월 4일부터 12월 16일까지 개최된다.

윤형근은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한국 근대사의 광풍이 몰아쳤던 시기를 보냈다.

그래서일까, 1947년 미군정이 주도한 '국대안(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 반대 시위로 구류 조치 후 제적을 당한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는 '보도연맹'에 연루돼 학살당할 위기에 처했다.

전쟁 중 피란 가지 않고 북한에 부역했고 서울대학교 재학 시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6개월 정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다.

▲ 윤형근, '청다색(Burnt Umber&Ultramarine)'. 마포에 유채, 33.5x45.5cm, 1998.(사진=국립현대미술관)

1973년 숙명여고 미술교사 재직 중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원으로 부정 입학생이 있다는 비리를 알렸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한 달 뒤 석방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작품에서 색이 없어졌다고 회상했다.

극도의 분노와 울분을 경험한 이후 1973년 본격적인 작품을 완성하기 시작한다. 그 작품이 바로 스스로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했던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작품들은 면포나 마포 그대로의 표면 위에 하늘을 뜻하는 청색(Blue)과 땅의 색인 암갈색(Umber)을 섞어 만든 ‘오묘한 검정색’을 큰 붓으로 푹 찍어 내려 그은 것들이다.

윤형근은 "블루(Blue)는 하늘이요, 엄버(Umber)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天地)라 했고, 구성은 문(門)이다"라고 설명했다.

▲ 윤형근, '청다색'. 면포에 유채, 162.3x130.6cm, 1976-1977.(사진=국립현대미술관)

그의 작품이 변화를 갖게 된 것은 수화 김환기와 장인과 사위 관계로 한 가족이 됐고, 그가 평생 김환기를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서로 가장 신뢰하는 관계로 남았다.

하지만 1974년 10월 김환기의 작고 소식을 듣고 나서, 스스로 김환기의 작품을 "잔소리가 많고 하늘에서 노는 그림"이라고. 

윤형근은 김환기가 흡수한 시공간적 유산을 받아들이면서도 잔소리가 없고, 하늘에서 노닐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 세계를 찾고 싶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윤형근 작가'.(사진=국립현대미술관)

"잔소리를 싹 뺀 외마디 소리를 그린다"

그의 작품은 더할 나위 없이 간결하다. 색채는 엄버와 불루 두 가지 뿐. 거기에 오일을 타서 한 번에 천위에 내려 긋는다.

천조차도 평범한 마포나 면포일 뿐이며, 불투명한 백색 도료를 더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표면에 아교만 슬쩍 바른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일생의 깊은 영감을 주었던 장면 중 하나는 오대산 깊은 산속에서 마주친 검은 나무둥치의 기억이다.

수십 년이 흘러 거의 뿌리가 흙으로 변해 버린 나무둥치를 보고, 자리를 뜰 수 없었던 깊은 감명에 대해 "모든 것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를 마음 속 깊이 새기게 된다.

▲ 윤형근이 1980년 5월 광주를 접한 후 그린 '다색' 설치 모습.(사진=왕진오 기자)

이 시기 작품에 대해서 작가는 스스로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했다. 하늘의 색인 블루(Blue)와 땅의 색인 엄버(Umber)를 섞어 검정에 가까운 색채가 탄생하는데, 거기에 오일을 타서 면포나 마포에 내려 그으면‘문(門)’과 같은 형태의 작품이 나오게 된다. 이 작품들은 검정색의 우뚝 선 구조들 사이로 무언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는 '서정'을 대신해서, 그의 흙 빛깔 작품들은 훨씬 더 인간의 '피'와 '땀'을 기록한 것이다. 이번 회고전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광주항쟁을 접한 그의 작품은 서툰 듯 하면서도 수수하고 듬직한 멋을 풍긴다.

1980년 5월 광주, 잊을 만하면 터지는 한국의 비극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도,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채 마당에 나가 커다란 천위에 비스듬히 미끄러지는 검은 기둥들을 내려 그었다.

▲ 윤형근, '다색'. 마포에 유채, 205x333.5cm, 1988-1989.(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 검은 행렬은, 땅 위에 똑바로 서 있으려 안간힘을 써 보아도 도저히 그러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은, 피 흘리며 기대어 쓰러지는 인간 군상인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제작된 윤형근의 작품은 한마디로 한층 더 간결해진다. 색채는 검은색의 미묘한 변주가 사라진 채 ‘순수한 검정’에 더욱 가깝고, 물감과 함께 섞었던 오일의 비율도 줄어들면서 화면은 한층 건조해진다.

형태와 색채, 과정과 결과가 더욱 엄격해지고 간결해지지만, 그 거대하고 순수한 검정색 앞에 서면 관객은 왠지 모를 ‘심연(深淵)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 윤형근, '청다색', 마포에 유채, 1975-76.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사진=왕진오 기자)

"이 땅 위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시간의 문제이다. 나와 나의 그림도 그와 같이 될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8전시실에는 윤형근의 세계관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공간이 구성됐다. 그가 1983년부터 2007년 작고할 때까지 거주한 서교동 집과 작업실을 전시장으로 옮겨 온 것이다.

▲ 왼쪽부터 서교동 윤형근 아틀리에의 모습(사진=국립현대미술관, 벽 가운데 도널드 저드의 낙품이 걸려 있으며, 조선의 고가구와 도자기 등이 작가의 작품과 함께 놓여 있음), 우측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8전시실 모습.(사진=왕진오 기자)

이곳에는 그가 24년간 사랑했던 목가구와 목기, 도자기와 토기 등 조선의 공예품들과 추사 김정희의 글씨, 김환기의 그림, 최종태의 조각, 그리고 도널드 저드의 작품 등이 함께한다.

또한 윤형근 자신의 일기, 노트, 사진, 드로잉 등 각종 아카이브를 통해 윤형근이 추구했던 정신세계, 그리고 그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다.

통상 윤형근을 '침묵'의 화가로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그의 작품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의 작품은 섬뜩한 기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엄숙한 진리를 향해, 때로 너무나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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