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001년 9월 11일(화) @워싱턴 뉴욕 세계무역센터

▲ WTC 2번 타워에 부짇치기 직전의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의 모습. <사진갈무리@유튜브>

[안경하 기자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e톡뉴스)] 17년 전인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오전 9시부터 영화 속 장면으로 착각할 만큼의 대 테러사건이 터져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화들짝 놀랐다.

'제2의 진주만'으로 불리고 있는 '미국 대폭발 테러사건(2001년, 美國大爆發─事件)'이다.

美 2001년 9월 11일(화) @워싱턴 뉴욕 세계무역센터
총 사망자: 2,996명, 부상자: 최소 6,261명

TV 뉴스 방송 화면에 비쳐진 자살테러 사건은 가히 충격적으로, 화요일 오전 미국 현지 워싱턴에서 출근하는 뉴요커인들과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는 전 세계 시청자들은 경각을 금치 못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0분 사이에 납치된 여러 대의 항공기가 동시 다발적으로 미국 뉴욕시 소재 110층 세계무역센터(WTC)와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PENTAGON)'도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자살 테러사건의 주동자는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과 알 카에다(al-qāʿidah)로 밝혀졌다. 

911테러 사건으로 총 사망자는 2,996명, 부상자는 최소 6,261명으로 집계돼 세계 역사상 최악의 테러사건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현장에서 사건을 수습하려면 뉴욕시 소방관 343명, 뉴욕시 경찰관 23명, 항만경찰관 37명, 경찰견 1마리, 응급구조사 8명, 화재순찰관 1명 등이 현장에서 사망하는 안타까움이 남아있다.

오전 8시 46분, 북쪽에 위치한 1번 타워에 아메리칸 항공 11편이 40명의 승객과 승무원 3명을 태운 채 충돌했다. 그 이전에 미 공군은 레이다에서 사라진 AA11편을 찾기 위해 전투기를 발진했으나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17분 후인 9시 3분,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관제소와의 교신이 끊겨진 상태에서 뉴욕 상공에 진입한 후 급강하하기 시작해 2번 타워에 충돌했다. 납치범 2명, 승객 26명과 승무원 5명을 태운 항공기는 건물 속 잔재 속으로 사라졌다. 

2번 빌딩 중간에 갇힌 사람들은 그때까지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사상자는 1번 빌딩보다 2번 빌딩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 이때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부시대통령이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 수업을 참관하던 중 보좌관을 통해 뉴욕시의 테러사건을 보고받았다.

▲ 911테러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서계무역센터의 모습. <사진@911remembrance Instagram>

두 번째 충돌이 일어난 후 56분 후인 오전 9시 59분 남쪽 타워인 2번 타워가 무너졌다. 10시 28분에는 첫 번째 충돌이 있었던 북쪽 타워도 마저 무너져버렸다. 세계무역센터의 2개 빌딩이 모두 무너진 후, 맞은편에서 파편을 받은 7번 세계무역센터에 화재가 발상했고, 오후 5시 21분에 7번 세계무역센터도 무너졌다.

사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교신이 안 된 납치된 항공기는 또 있었다. 워싱턴 펜타곤 서쪽 편으로 아메리카 항공 77편이 오전 9시 37분 46초에 돌진해 충돌했다. 미국 워싱턴은 아비규환 상태였다. 이후 미국의 모든 영공은 폐쇄되고 국내선 항공기는 무조건 착륙해야 했고, 국제선 비행기는 모두 회항해야했다고 전해진다.

승객 37명과 승무원 7명이 탑승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도 납치돼 테러 대상에 돌진하기 전에 기내에서 승객들에 의해 제지당해 펜실베니아 주 평야에서 추락됐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영화 '플라이트 93'으로 개봉되기도 했다.

납치당한 총 4대의 항공기들은 모두 캘리포니아에서 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로 밝혀졌다.

▲ 백악관에서 공개한 넵튠 스피어 작전 모니터링 사진. 왼쪽부터 조 바이든 부통령, 버락 오바마 대통령, 공군준장 마셜 웹 장군[31], 데니스 맥도너 국가안보 부보좌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웹 장군 뒤에서 안경을 쓰고 검은색 넥타이에 대장 계급장 달린 카키 셔츠(미 해군 근무복)를 입고 뒷짐지고 있는 사람은 합동참모의장인 마이크 멀린 제독이다. <사진@美백악관, 저작권=퍼블릭도메인>

911테러사건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1957년생)의 본명은 오사마 빈 무함마드 빈 아와드 빈 라덴(أسَامَة بِنْ مُحَمَّدْ بِنْ عَوَدْ بِنْ لَادِنْ)으로 역사상 가장 높은 현상금이 걸린 테러리스트로 21세기 이슬람 극단주의의 상징으로 불려왔다. 2001년 911테러사건이 일어나고 10년 후인 2011년  5월 2일 미군에 의해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북동쪽 50km 지점에 위치한 아보타바드 호화 주택의 안전가옥의 침실에서 사살되었다. 함께 있었던 세 번째 아내인 27살의 아내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제압당했다.

▲ 911테러사건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1957년생)

당시 대통령은 버락 오마바 대통령의 승인하에 암호명 '제로니모(Geronimo)'로 오사마 빈 라덴을 생포하는 미합중국 해군특수전개발단인 데브그루(DEVelopment GRoUp의 줄임말) 주도의 넵튠 스피어 작전이 실행되었다. 결국에는 생포에는 실패했고 제거되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은 페르시아 만에 전개된 미 해군 항공모함 CVN-70 USS 칼 빈슨 함으로 옮겨져 9시간 만에 미 해군 이슬람 군종관이 간단히 의식을 치러준 후 추를 달아 아라비아 만에 수장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자료참고 :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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